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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 앞을 내다본 김경문-정민태의 예리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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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숙기자] "누가 알아? 오재원이 첫 홈런을 때려낼지…"

무심코 던진 우스갯소리같았던 말이 현실이 됐다. 김경문 두산 감독과 정민태 넥센 코치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선수들의 활약을 미리 내다봐 놀라움을 안겼다.

김경문 감독은 5일 목동 넥센전을 앞두고 왼쪽 대퇴부 타박상으로 인한 김현수의 결장 소식을 전하며 3번 타순에 오재원을 투입했다고 말했다. 중량감 대신 빠른 발을 이용해 점수를 쌓겠다는 전략이었다. 김 감독은 "중심타자가 빠졌으니 선수들이 더 집중해 경기를 끌어나가겠지"라며 "누가 알아? 오재원이 생애 첫 홈런을 때려낼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가볍게 웃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김 감독의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없었다. 말을 내뱉은 김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김 감독의 농담같았던 바람은 현실이 돼 눈 앞에 나타났다.

오재원은 팀이 0-2로 뒤진 3회초 2사 후 넥센 선발 김성태의 초구를 노려쳐 우측 담장을 넘기는 비거리 110m짜리 솔로 아치를 그려냈다. 2007년 프로 입단 후 터뜨린 자신의 첫 홈런포였다. 앞서 정수빈이 때린 타구가 우측 담장 바로 앞에서 잡히며 가라앉던 팀 분위기가 오재원의 홈런 한 방으로 순식간에 살아났다.

반대편 넥센 쪽에서도 믿기 힘든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넥센 선발투수로 나선 김성태는 긴장된 상황에서 피칭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5회초 2사서 정수빈에게 볼넷을 내준 뒤 오재원을 삼진으로 잡고 이닝을 마무리한 김성태는 6회초 첫 타석에서 김동주에게 또 다시 볼넷을 허용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재환을 중견수 뜬공으로 잡아냈으나 뒤이어 고영민에게 좌전 안타를 허용했다. 임재철을 낙차 큰 커브로 삼진 처리해 투아웃 1, 2루가 됐고, 용덕한 타석이 되자 곧바로 정민태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갔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정민태 코치는 경기 후 이 때의 상황에 대해 "아차 싶었다. 나도 모르게 뛰어 올라갔다. (김성태의) 슬라이더가 좋지 않아 보였다. 잘못하면 크게 맞을 것 같아 절대 슬라이더는 던지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돌아봤다. 김시진 감독 역시 정 코치의 돌발 행동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짧지 않았던 둘의 대화가 끝났고, 정 코치는 김성태의 어깨를 다독여준 뒤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절대 슬라이더는 던지지 말아라." 정 코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지만 김성태는 자신의 공을 믿었다. 그리고 1구에 이어 2구 모두 슬라이더를 던졌다. 빈틈을 눈치챈 용덕한이 힘차게 방망이를 휘둘렀고, 좌익수 왼쪽으로 빠지는 2타점 적시 2루타를 만들어냈다. 넥센의 3-1 리드에서 스코어는 순식간에 3-3 동점이 됐다.

정민태 코치는 경기 후 김성태에게 "내가 신기(神氣)가 있는 것 같다.(웃음) 맞을 게 훤히 보이더라. 그래서 슬라이더를 던지지 말라고 했는데…"라며 "내가 네 첫 승 챙겨주려고 경기 도중에 마운드까지 뛰어 올라갔는데 어쩜 그렇게 고집대로 던지냐"라고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식을 걱정하는 안타까운 부정과도 같았다.

김성태도 정 코치의 이런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김성태는 "피하지 않고 자신있는 공으로 승부해 맞았으니 후회는 없다. 다음에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며 멋쩍은 웃음으로 사과를 대신했다.

감독이나 코치들은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경험으로 체득한 이들의 관록은 어깨너머로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팀의 승리와 선수의 발전을 늘 생각하며 아낌없는 조언을 전하는 코칭스태프의 예지력이 돋보이는 장면들이었다.

조이뉴스24 한상숙기자 sk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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