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K리그 클럽이다.
시작은 산뜻했다. 1983년 럭키 금성 황소 프로축구단으로 창단됐다. K리그 다섯번째 클럽으로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고, 1985년 '1985 축구대제전 슈퍼리그'에서 우승을 거두며 첫 번째 별을 달았다.
럭키 금성의 황소는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린 지 5년이 흐른 1990년 한국프로축구대회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두 번째 별을 가슴에 단 후 럭키 금성이라는 이름은 K리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91년 럭키 금성은 LG치타스로 구단 명칭을 변경했다. LG치타스가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K리그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름을 변경한 지 9년이 흐른 2000년. 당시 조광래 감독이 지휘하고 '슈퍼스타' 최용수가 이끈 LG치타스는 '2000 삼성 디지털 K리그'에서 우승을 일궈냈다. 럭키금성 시절까지 더하면 세 번째 별이었다.
K리그의 강호로 인정받으며 K리그 속으로 스며든 LG치타스. 문제는 2004년 터졌다. LG치타스는 연고를 안양에서 서울로 바꾸며 FC서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연고 이전이 문제였다. 당시 안양의 팬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FC서울은 비난의 중심에 섰고 배신자라는 이름을 꼬리에 붙였다.
이후 FC서울은 젊은 피들을 발굴하고 전력을 보강하며 매년 우승 후보에 들었다. 연고 이전이라는 죄책감 때문일까. 안양 팬들, K리그 팬들의 분노 때문일까. FC서울은 매년 마지막에 고꾸라졌다. 특히 2008년도에는 우승 문턱까지 갔지만 마지막에 무릎을 꿇었다.
2010년. 여전히 FC서울은 연고 이전에 대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배신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하지만 서울로 연고 이전한 후 새로운 팬들이 FC서울을 지탱하고 있다. 새로운 열정이 FC서울을 이끌고 있다. K리그 역대 최다 관중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사상 최초의 50만 관중 돌파. FC서울이 비난과 비판을 감수하면서 만들어낸 결실이다.
그리고 FC서울은 'FC서울'이라는 이름을 달고 첫 챔피언에 올랐다.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FC서울과 제주 유나이티드의 챔피언 결정 2차전. FC서울은 2-1 승리를 거뒀다. 1차전 2-2 무승부에 이은 2차전 승리. FC서울은 그토록 바라던 K리그 정상에 올랐다.
럭키 금성 시절부터 따지면 총 4번의 우승이다. 2000년 LG치타스 우승 이후 10년 만이다. 하지만 지난 3번의 우승과는 의미가 다르다. 10년 만의 우승, 통산 4번째 우승이라기 보다는 FC서울의 이름을 걸고 이룩한 첫 번째 우승이다. 온갖 비난과 조롱을 견뎌내고 극복하며 만들어낸 영광이다. 지난 3번의 우승보다 더욱 값지고 의미가 깊은 우승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우승으로 FC서울은 명실상부한 K리그 최고의 클럽으로 떠올랐다. 성적과 팬심 모두 잡았다. '수도' 서울의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이제 FC서울은 럭키 금성과 LG치타스의 그늘에서 벗어나 FC서울이라는 새로운 영광의 발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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