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제 모습을 찾은 거 같아요."
오랜만에 윤지웅(동의대4. 좌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올 시즌 초반 극심한 컨트롤 난조를 보이며 아마야구계 화제의 중심에 섰던 윤지웅은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하계리그에서 4경기에 등판, 14.2이닝을 던지며 3승에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해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부산공고 시절 외야수에서 투수로 전향한 이후 줄곧 성공가도를 달려왔던 윤지웅에게 올 시즌은 최대의 위기이자 시련 그 자체였다. 그러나 하계리그를 통해 1년 전 완벽했던 그 때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치욕의 2010 춘계리그
윤지웅은 지난해 7승1패 평균자책점 0.15(61이닝 1자책점)로 대학 넘버1 좌완투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제대회에도 연거푸 출전해 빼어난 실력을 자랑, 드래프트 전체 1번 후보로 거론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올 봄 전체적인 투구밸런스가 무너지면서 구속도 급감, 깊은 슬럼프를 맞았다. 스스로는 체력고갈에서 오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며 장밋빛 기대감을 품고 시즌을 맞았지만 결과는 예상을 넘어 참담했다.
동아대와의 시즌 첫 경기에 구원으로 등판, 2.1이닝 동안 피안타 3개, 볼넷 3개, 몸에 맞는 볼 2개 등을 묶어 6실점(6자책)이나 했다. 불과 6개월 전까지 48이닝 연속 무자책점 행진을 벌이던 투수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성적표였다.
이후에도 한양대전에 선발로 출전, 28명의 타자를 상대로 홈런 2개 포함 6개의 안타로 6실점(5자책)하고 또 고개를 숙였다. 부진의 정도가 한마디로 심각했다.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다
윤지웅의 예상치 못한 부진은 프로팀 스카우트들에게도 큰 혼돈을 던졌다. 평균자책점 7점대(13.2이닝 12자책)의 평범하다 못해 형편 없는 기록은 덮어두더라도, 그의 최대 장점인 칼같은 제구력과 예리한 변화구, 거기에 빠른 구속(140km대 초반)의 3박자 중 단 한 개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묻혀 있던 투수로서 왜소한 체격(180cm, 72kg)에 대해 상위 지명의 걸림돌이라는 회의적인 반응도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방팔방으로 제 투구 폼에 뭐가 문제인지를 알아보고 다녔죠. 섀도우 피칭도 숱하게 했고 비디오도 분석했어요. 팔이 자꾸 아래로 처진다는 얘기를 듣고는 의식하고 고치려고 하다보니 제구가 잡히지 않았어요.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하나가 또 튀어 나왔죠."
혹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만한 것이 빚어낸 결과가 아닌가 싶어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어떻게든 초심을 찾기 위해 애썼지만 문제해결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 번 집을 나간(?) 밸런스는 제 자리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절반의 성공, 희망을 보다
KBO총재기 대회에서 윤지웅은 2승에 평균자책점 2.25(16이닝 4자책)로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했다. 동국대와의 8강전에서는 사사구 6개와 피홈런 1개 포함 총 8개의 피안타로 6실점(4자책)을 했다.
"그래도 이전 두 게임은 괜찮았다는 점에 위안을 삼고 있어요. 한 번에 확 좋아질 순 없잖아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죠."
드래프트 전체 1순위에 대한 욕심과 기대를 접고 나니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졌다는 윤지웅은 대학 시절의 마지막 시즌을 잘 마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그저 오랫동안 야구할 수 있기만을 바라면서 다음엔 더 나아진 모습을 보이겠노라 다짐했다.
▶뜻밖의 태극마크
오는 7월 14일부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개최되는 한·미 선수권대회 출전 명단에 당초 윤지웅은 없었다. 그러나 정태승(성균관대4. 좌완)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그 자리를 대신하는 기회를 얻었다.
갑자기 대표팀 추가 합류 지시를 전해들은 윤지웅은 믿겨지지 않았다. 시즌 평균자책점 4점대 후반에 머문 투수에게 돌아올 몫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야구협회측은 현재보다는 전년도 성적을 근거로 했다며 특히 국제대회에서 맹활약을 펼친 경력을 참작해 윤지웅을 발탁하게 되었다는 배경을 전했다.
"솔직히 올해 성적만 놓고 보면 다른 투수에게 기가 죽네요.(웃음)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할까 그게 걱정입니다."
2년 연속 태극마크를 다는 영광을 얻었지만 기쁨보다는 책임감과 걱정이 앞섰다. 오히려 하루빨리 '예전의 윤지웅'을 되찾아야 하는 또 하나의 명확한 이유가 추가된 셈이다.
▶다시 찾은 밸런스, 1년 전으로 돌아가다
하계리그를 앞두고 윤지웅의 구위가 올라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동의대 타자들과 연습게임을 치른 다른 학교 선수들에거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첫 경기 성균관대전에서 사실로 확인되었다.
"볼을 손에서 놓는 순간 작년의 그 느낌이 확 왔어요. 이거다 싶었죠. '감을 잃지 말아야 할텐데...' 하며 잠시 좋아지는게 아닌가 싶어 불안했죠. 그런데 상대 타자들이 저를 도와줄 작정이었는지 혼자 휘두르며 아웃카운트를 보태줬어요.(웃음)"
성균관대 타자들을 상대로 4.2이닝 동안 6개의 삼진을 잡으며 단 3개의 안타만 허용, 1실점(자책점0)으로 첫 승을 신고하며 기분좋게 하계리그를 시작했다. 이후 중간계투로 3경기에 나서 3승을 챙기는 동안 평균자책점 0 행진을 이어갔다.
더욱이 14.2이닝을 던지며 내준 볼넷이 2개 뿐이고 탈삼진 20개로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전체적인 투구 밸런스도 나무랄 것이 없었다.
"성균관대전 이후 자신감이 생겼어요. 계명대전에서 가장 구위가 좋았어요. 144km까지 나왔다고 하던데, 슬라이더만 던진 게 아니라 서클체인지업이랑 싱커도 잘 들어갔어요. 최고 좋았던 때와 비슷해졌어요."
프로팀 스카우트들도 윤지웅의 처졌던 왼쪽 팔이 정상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투구 폼도 한결 부드러워졌다며 예전의 구위를 되찾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시기상으로 늦은 감이 있다며 아쉬움을 피력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몇 천만원을 까먹었다며 안타까워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요, 그것보다는 제 야구가 잘된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어요. 금전적인 것을 따질 여유는 없잖아요.(웃음)"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야구인생을 경험한 그는 소중한 진리를 하나 터득했다.
"제가 느끼기에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폼으로 공을 던져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배웠어요. 욕심을 버리고 나니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봐야죠.(웃음)"
화려한 출발을 꿈꾸던 윤지웅에게 예기치 못한 가운데 닥친 슬럼프는 길고 험난했다.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넘어 다시 일어서고 있다.
윤지웅은 타고난 재능이 아닌, 100% 후천적인 노력과 땀으로 지금의 입지를 굳힌 좋은 투수다. 슬럼프를 계기로 단순히 좋은 공을 던지는 투수가 아닌, 시련과 슬럼프를 슬기롭게 이겨낸 훌륭한 투수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겪은 시련의 시간들은 진화의 한 단계를 거친 것처럼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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