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2010 남아공월드컵 B조 조별예선 2차전이 열린 사커 시티 스타디움.
전반 17분 한국이 자책골을 넣고 말았다. 아크 왼쪽에서 메시가 올린 프리킥이 박주영의 오른쪽 무릎 부위를 맞고 공이 한국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박주영의 자책골이었다.
한국의 최전방 공격수가 수비에 적극 가담하다 자책골을 넣었다. 공격수 박주영의 월드컵 첫 골이 자책골이라 충격과 아픔은 더욱 컸다.
자책골을 넣은 그 후, 박주영은 달라졌다. 박주영은 정성룡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진영으로 향하며 긴 킥을 자랑하는 정성룡에게 직접 손짓으로 말했다. 자신에게 공을 달라는 제스처였다. 골을 넣겠다는 의지, 자책골을 만회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반드시 무언가 해보이겠다는 열정의 손짓이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박주영은 정성룡이 공을 잡을 때마다 대부분 손짓을 보냈다. 정성룡은 박주영의 손짓에 바로 응답했다. 공을 잡으면 대부분 박주영을 향해 킥을 했다. 박주영은 정성룡의 정확한 킥을 놓치지 않으려 몸을 던졌다. 투지 넘치는 몸싸움을 벌이며 어떻게 해서든지 볼에 몸을 갖다 대려고 애썼다.
박주영과 정성룡의 눈빛은 전반 44분 그 결실을 만들어냈다. 정성룡이 박주영을 향해 롱킥을 했고 박주영은 혼신의 힘을 다하며 점프를 해 헤딩을 했다. 공은 아르헨티나 수비수 마르틴 데미첼리스로 향했다. 그 때 이청용이 쏜살같이 달려와 공을 가로챈 뒤 오른발로 가볍게 슈팅해 골망을 흔들었다.
박주영의 포기하지 않은 투혼과 정성룡의 정확한 킥, 그리고 이청용의 센스가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박주영의 헤딩이 없었다면, 투혼이 없었다면 이청용의 골도 없었다.
경기 후 만난 이청용은 "(박)주영이 형이 헤딩할 거라 믿었다. 그리고 수비가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이 보였고 내 예상과 맞아 떨어졌다"며 박주영을 믿었기에 가능한 골이라 설명했다.
이청용이 골을 넣자 박주영은 골문에 들어가 있던 공을 빼들어 직접 들고 중앙선까지 왔다. 박주영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1-2로 점수 차를 좁힌 이청용의 골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자신이 직접 해내지 못했어도 상관없었다. 팀이 승리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후반에도 마찬가지였다. 박주영은 정성룡을 바라봤다. 그리고 손짓을 했다. 정성룡은 계속해서 박주영 쪽으로 킥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결실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박주영은 쓰러지고 점프하고 또 슈팅을 했지만 이변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한국은 1-4로 대패하고 말았다. 박주영은 마음의 짐을 모두 떨쳐버리지 못한 채로 후반 35분 이동국과 교체돼 그라운드를 벗어났다.
그라운드에 있던 11명의 선수들, 허정무 감독 및 코칭스태프, 4천8백만 붉은 악마들. 모두가 한국의 승리를 바랐다. 그 중에서도 박주영의 바람이 그 누구보다 간절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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