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5일, 2일차
남아공으로 오기까지 하루를 꼬박 비행기에서 보냈다. 세 끼를 모두 비행기 기내식으로 때웠다. 맛은...
이날 남아공에 입성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과 보조를 맞춰 베이스캠프이자 기자단의 베이스캠프인 러스텐버그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당당하게 월드컵 본선에 오른 한국을 환영하기 위한 태극기를 곳곳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며 다시 한 번 애국심을 느꼈고, 약 2시간30분간의 차량 이동 후 숙소에 도착했다. 무엇보다 기내식이 아닌 다른 음식을 먹고 싶었다.
숙소에서 레스토랑이 있는 몰까지 걸어서 약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걸어가지 않았다. 숙소에서 몰까지는 멀지 않지만 걸어가다 어떤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역시나 소문대로 남아공은 위험한 나라였다.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 뒤에 가시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기자단이 모두 함께, 버스로 가기에는 미안한 거리인 몰로 가서 밥도 먹고 쇼핑도 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축구대표팀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남아공의 아름다운 경관과 주문하면 1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내오는 정성 가득한 요리를 즐기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남아공에 입성한 대표팀의 첫 번째 공식 훈련이 열리는 올림피아 파크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약 15분 거리다.
올림피아 파크 스타디움에 도착하니 이색적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이었다. 그곳의 정문에는 이미 경찰들이 잔뜩 깔려 있었다. 월드컵의 중요성과 월드컵만의 신중함을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경찰들은 매서운 눈초리로 기자단을 훑어봤다.
그러고 보니 공항에서부터 태극전사들은 볼 수 없었다. 통상적으로 해외원정을 나가면 공항에서 나오는 장면을 사진 취재하고, 인터뷰도 하고 인사도 나누고 헤어지곤 한다. 하지만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는 대표팀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안전과 보안상의 이유로 대표팀은 다른 출구로 빠져나간 것이다.
한국 대표팀이 공항에서 베이스캠프인 숙소까지 향할 때 경찰차 5대, 사복 경찰차 2대, 헬기 1대가 따라 붙었다. 대표팀 숙소 주변에는 경찰차 20대, 장갑차 3대, 앰뷸런스 1대가 항시 대기 중이다.
올림피아 파크 스타디움으로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승리의 함성, 하나 된 한국'이란 글귀가 적힌 버스가 들어왔다. 정문에 있던 경찰들은 버스를 호위했고 기자단조차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훈련이 시작됐다. 긴장감은 멈추지 않았다. 35명 정도의 경찰과 안전요원들이 경기장을 뺑 둘러쌌다. 대표팀 관계자 외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대표팀 훈련이 열리는 파주NFC의 경우 아주 가까이서, 자유롭게 훈련을 보고 선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공은 달랐다.
기자단은 관중석으로 밀려났다. 그래도 멀리서나마 우리의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덩치가 크고 무섭게 생긴 경찰들이 째려보고 있어 관중석을 박차고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1시간 가량의 훈련이 끝났고 대표팀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경기장을 떠났다.
우리는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이 곳 남아공까지 취재하러 온 기자단인데...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니 안타까웠다. 그저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해야만 했다. 태극전사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더 멀리서 지켜봐도 좋을 것이다.
스스로 이런 위안을 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날은 어두워졌고 주위를 둘러봤다. 을씨년스러웠다. 모 선배가 그랬다. "우리 숙소 주변에는 경찰차 한 대가 없냐?" 순간 코앞에 있는 몰에도 걸어갈 수 없는 현실을 다시 직시하며 빠른 걸음으로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③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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