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만이 쌓이지 않겠느냐. 다만, 그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지난 7일 잠실 한화전을 앞두고 김경문 두산 감독은 양의지의 주전 포수 출전과 관련해 선수 기용법에 대해 입을 열었다. 시범경기서 본 양의지의 화력에 긴가민가 하던 찰나 홈런 2방(3월 30일 넥센전)을 쏘아올리며 스스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는 것이다.
이런 '기회 주기'의 일환으로 이날 한화전에 김 감독은 톱타자(중견수)로 민병헌, 2번타자(2루수)로 오재원을 선발 출전시키며 이종욱과 고영민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이종욱은 후반에 교체 투입됐다)했다. 최근 부진한 이종욱(타율 2할1푼4리)에 대해서는 조바심도 식힐 겸 '밖에서 그라운드를 지켜보라'는 뜻이었고, 고영민은 왼쪽 등 근육이 뭉쳐 일단 1군 등록에서 제외하고 휴식을 명령했다.
문제는 호시탐탐 주전입성 기회를 노리던 민병헌과 오재원도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존재감을 100% 과시했다는 점이다. 민병헌은 4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 1볼넷을 기록했고, 오재원은 4타수 3안타 2타점 1득점 1볼넷으로 그 동안 쌓인 교체출전의 한을 모조리 풀어냈다. 이종욱과 고영민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두산이 강팀으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두터운 선수층이다. 투수, 야수 가릴 것 없이 전 포지션에서 치열한 내부경쟁을 펼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김경문 감독은 일단 기회 부여 면에서는 공평하다. 그 결과 그 어느 선수도 방심할 수 없는 잔인한(?) 팀이 됐다.
무한경쟁 속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인식됐던 이종욱과 고영민 역시 이제는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이들은 지난 시즌 부상과 부진으로 제 활약을 못했지만 두산은 정수빈 등 신예들의 가세와 기존 백업멤버들의 분투로 그 공백을 잘 메워냈다. 때문에 올해는 단단히 각오하고 시즌을 맞이했지만, 출발이 순탄치 않다.
김경문 감독은 평소 이종욱과 고영민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꼭 말미에 다는 사족이 있다. "잘 해주고 있지만, 최소한 몇 년은 해줘야 인정할 수 있다"고 칭찬 속에서도 채찍을 가한다. 바꿔말하면 꾸준하지 못하면 언제든 주전 자리를 위협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국가대표 테이블세터 이종욱과 고영민조차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는 팀내 상황이야말로 두산의 최대 장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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