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제'의 대관식은 너무나도 화려했다. 김연아(20, 고려대)는 26일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 콜리세움에서 열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228.56점을 얻으며 세계 최고점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김연아 스스로 도전하지 않는 이상 어느 누구도 당분간은 228.56점을 깨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아사다 마오(일본)와 조애니 로셰트(캐나다)가 각각 205.50점과 202.64점을 받으며 200점대를 돌파하면서 은-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김연아의 고득점에 따른 반사 이익을 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일부 점프를 실수하는 등 감점 요인이 충분한 연기를 보이고도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한국 최초의 피겨 금메달이라는 기록을 세운 김연아는 기량만 잘 유지하면 2014 소치 올림픽에서도 또 한 번 위대한 도전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올림픽 외에도 국제빙상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 4대륙 선수권대회, 그랑프리 파이널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쓴 흐름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사상 첫 피겨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김연아는 다음달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지금 상태라면 충분히 2연패를 이룰 수 있다.
그동안 김연아는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려왔다. 2008년 12월 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김연아는 한국 팬들의 엄청난 환호에 큰 부담을 느꼈다. 비교적 조용하게 지켜본 뒤 환호해주는 해외 팬들과는 달리 한국팬들은 자신에게 '올인'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점프 등 집중력이 필요한 동작에 영향을 미쳤다.
자서전 '김연아의 7분 드라마'에서 김연아는 '사람들은 내가 잘했을 때만 내 편이고 내가 실수를 하고 경기를 잘 못하면 금방 돌아서겠구나. 김연아는 항상 잘해야 하고 일등이 아니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 그 무언가가 너무 원망스럽고 섭섭했다'라며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리 체험한 관중의 열광적인 환호는 오히려 큰 무대에서 도움이 됐다. 힘든 상황에서 치른 경기가 다양한 상황을 극복하는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고 올림픽에서 중요한 순간 집중력으로 발휘됐다. 물론 집중적인 기술 연마로 외부의 압박을 이겨낸 김연아의 근성도 대단했다.
김연아의 이런 시련 극복 과정과 방법은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 함께 출전했던 후배 곽민정(16, 군포 수리고)에게 좋은 참고서다. '연아 장학생'이기도 한 곽민정은 지난 1월말 전주 4대륙 선수권대회를 통해 시니어 무대에 데뷔해 차기 올림픽이 기대되는 선수다.
곽민정의 기량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53.16점으로 시니어 무대 최고점을 기록했고 올림픽 최종 13위의 훌륭한 성적표를 받았다. 트리플 5종 세트(러츠, 플립, 루프, 토루프, 살코) 중 루프까지 완벽하게 해내 앞으로 세부 연기를 다듬고 점프에 대한 완성도를 높이기만 하면 '포스트 김연아'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연아 언니의 연기를 현장에서 직접 바라본 곽민정의 머리와 가슴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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