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그래요? 저 형이랑 안 친한데...(웃음)"
강민국(광주일고3, 유격수)은 1년 선배 허경민(19, 두산)이 '올해 청소년대표 가운데 최고의 수비맨은 강민국'이라고 지목했다고 전하자 배시시 웃으며 처음엔 꽁무니를 뺐다. "같은 고향이고 학교 후배니까 그렇게 봐주는 거죠. 형이 훨씬 낫죠. 전 아직 멀었어요."
"(강)민국이는 생활 자체가 가식이에요. 선배한테 대놓고 반말하는 후배인 걸요? 한 마디로 건방진 녀석이죠.(웃음)"
허경민에게 강민국 이름 석자만을 꺼냈을 뿐인데 봇물 터지듯 말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험담(?)인 듯 했지만 그 속엔 진한 애정이 가득차다 못해 넘쳐나고 있었다.
◑ 붕어빵
이종범(KIA)의 모교이기도 한 광주제일고 1년 선후배 사이인 허경민-강민국의 첫 만남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정동초등학교 4학년 시절 강민국은 야구부에 입단하면서 다른 야구부 선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허경민과 처음 대면했다.
"그 때도 저희는 키가 큰 편이 아니었는데 쭉 같이 안컸어요.(웃음) 승부근성 만큼은 누구보다 강했던 선배였죠. 글러브질이나 게임을 보는 안목도 좋았지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가장 닮았데요, 남들이 그러는데..."
충장중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나란히 함께한 이들은 각각 유격수와 2루수를 맡았다. 신상명세에 의하면 허경민은 178cm, 강민국은 175cm로 소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둘 다 신장 수치를 올려 적은 듯하다.
일단 둘은 여러 면에서 '붕어빵' 같다. 호리호리하면서 민첩한 몸놀림과 매서운 눈매도 그렇다. 거기에 우투우타라는 점과 나란히 청소년대표에 발탁되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태극마크 이후의 갈림길
2008년 7월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개최된 제23회 세계청소년대회에 출전했던 허경민은 우승의 주역이 되어 돌아왔다. 이후 열린 신인드래프트에서 그는 2차 1순위로 지명돼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물론 유격수로서 수비력만큼은 동년 경쟁자들에게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당시 대표팀 멤버 중에는 안치홍(KIA) 김상수(삼성) 오지환(LG) 등 좋은 유격수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었지만 이들을 물리치고 대표팀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찼던 것이 좋은 순번을 얻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물론 우승 프리미엄 덕도 컸다고 볼 수 있다.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은 대부분 프로의 부름을 받았다.
반면 올해는 드래프트가 끝난 직후 제8회 아시아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물론 대표팀 명단은 드래프트 이전에 발표가 되었지만 명단은 명단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드래프트에서 희비가 엇갈린 후 대표팀에 소집되어 훈련에 참가했던 선수들은 한동안 어수선한 가운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프로 지명을 받은 선수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는데 강민국은 후자에 속하고 말았다.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기에 낙심은 컸다.
"자존심이 강한 애라 표시내진 않았겠지만 무척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게임 보셨죠? 정말 잘했죠? 원래 저때문에 2루수를 2학년 때까지 봤어요. 그래서 유격수, 2루수 다 잘 봐요. 수비만큼은 완벽하죠. 그런데 타격까지 완전 끝내줬죠. 국내에서 열려서 관심 집중에 TV 중계까지 해줘 완전 떴잖아요."
당사자가 없는 자리니까 하는 소리라면서 정말 자신보다 더 나은 것 같다며 허경민은 후배 강민국에 대한 칭찬을 끝없이 되풀이했다.
2009 8월 29일, 한국 청소년야구대표팀은 아시아선수권 결승전에서 대만을 9-2로 따돌리고 6년 만에 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강민국은 2-1로 앞서던 6회말 우익수 키를 훌쩍 넘기는 우중월 3루타를 터트려 2타점을 올리는 등 3타수 2안타 3타점의 맹타를 휘둘렀고, 개인적으로는 올스타 2루수 부문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누렸다.
강민국은 동국대 진학으로 진로를 결정했다. 만약 아시아선수권 대회가 조금만 일찍 열렸더라도 그의 운명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 한국야구 최고 '황금 키스톤 콤비'를 꿈꾸다
지난 5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만난 허경민은 제38회 야구월드컵 대회에 나서는 각오를 밝히는 자리에서 황당하게도 후배 이야기, 모교 이야기만을 하다가 비행기에 올랐다. 물론 내년을 위한 도약의 기회로 삼고 많은 걸 배우고 돌아오겠노라 짧은 다짐을 겨우 내비치고 떠나긴 했지만 말이다.
"4년 후에 프로에서 보자고 약속했어요. 대학에서 많이 배우고 열심히 하라고 했죠. 그래서 다시 함께 내야에서 뛰자고 했어요. 그 때는 같은 유니폼 뿐만 아니라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말이죠. (강)민국이가 서울에 있는 학교에 와서 정말 좋아요. 그나마 자주 볼 수 있잖아요.(웃음) 자주 볼 수 있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웃음)"
선배의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강민국은 입을 다물지 못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속내를 드러내보이기 시작했다.
"경민 형이 올해 1군에 가지 못해 많이 속상해 했어요. 그래도 월드컵에 출전하잖아요. 그게 아무나 나가는 게 아니잖아요. 이번 월드컵에서 형이 꼭 유격수 주전 꿰차고 전경기에 나가서 잘 하고 올 겁니다. 약속했어요. 내년엔 '당근' 1군에 진입할 거구요. 형에 대한 마음이요? 음... 그게...사랑보다는 한 단계 아래 정도인데,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요?"
사나이간 사랑보다 한 단계 아래가 무엇인지, 선후배간 끈끈한 우정으론 좀 부족한 듯하고, 과연 그게 무엇일지 골똘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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