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속상하다. 내가 이거 밖에 되지 않았나... 하지만 LG를 위해 열심히 할 것이다. 두고 봐라 우승한다.』
2005년 이후 만 5년만에 다시 LG에 5라운드(전체 순위 33번)로 지명을 받은 이태원(23, 충암고-동국대, 포수)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적어 놓은 문구다.
충암고 시절이던 2004년 이태원은 2005 신인드래프트에서 이미 LG로부터 2차 7번으로 지명받아 프로 진출이 가능했다. 비록 낮은 순번이라 실망스러운 감도 없지 않았지만 뚜렷한 팀 성적도 없었고 고졸포수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괜찮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함께 진로를 고민해주었던 이영복 감독(충암고)과 어머니의 만류가 거셌다. 결국 유급을 했고 이후 동국대학교로 진로를 틀었다.
"정말 (프로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반대를 하셨어요. 저로선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어렸을 때부터 집안형편이 어려워 하루라도 빨리 홀로 계신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리겠다고 다짐했던 아들의 마음을 뒤로 한 채 어머니는 대학 졸업 후에도 늦지 않다며 아들을 설득했다. 효자 아들은 어머니 뜻을 따라 남보다 1년 더 긴 5년의 세월을 기다렸다.
올 시즌 프로야구는 중반기를 넘기면서 각 팀 포수들의 예기치 못한 부상소식이 줄을 이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국가대표로 국제무대에 세 번이나 나서며 경력을 쌓았고 대졸 최고의 포수로 평가받던 이태원의 프로행은 거의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구단에 지명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만약 다른 팀이 저를 지목하면 어떡하죠? 전 정말 LG 가고 싶어요." 스무살도 되지 않은 고졸 선수들도 섣불리 자신이 선호하는 팀을 입에 올리지 않는 신중함을 보이는데 반해 이태원은 너무도 솔직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스스럼없이 밝혔다.
'그렇다면 타구단이 높은 순번에서 부르는 게 좋아요? 아니면 순번이 낮아도 LG로 가는 게 좋아요?' 다소 유치하지만 기자는 그의 일편단심의 깊이를 확인코자 질문을 다시 던졌다. 이태원은 "무조건 LG"라고 소리쳤다.
17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2010 프로야구 신인지명회의는 사상 처음 TV로 생중계되면서 지명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을 행사장에 불러 모았다. 양복을 차려입고 참석한 이태원은 안절부절이었다. "혹시 민망하게 그냥 가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쩌죠? 저보고 오라고 한 KBO 관계자에게 따질 거에요. 왜 오라고 했냐고요."
행사 직전 전화상으로 자신의 심정을 밝힌 이태원은 "만약 다른 팀으로 가게 되면 어떡하죠? 그렇게 되면 트레이드 시켜 달라고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초조함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에서도 그의 'LG 사랑'은 여전했다.
지명회의는 4라운드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TV를 통해 선수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얼굴 표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일그러진 이태원의 얼굴도 볼 수 있었다.
LG의 네 번째이자 전체 32번째 지명선수를 호명한 LG 스카우트 김진철 팀장은 다시 역순으로 지명 기회를 얻었고 거기서 '타임'을 요청했다. 2분이 채 되지 않는 그 순간 이태원은 지난 5년의 세월이 떠올랐다. 지금이 아니라면 어렵다는 생각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충암고-동국대 포수 이태원 선수를 지명합니다'라는 발표가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왔다.
"생각보다 늦게 지명을 받은 건 너무 서운하고 속상해요. 하지만 저보다 더 필요한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기쁘고 감사하고 너무 좋아요."
불현듯 그의 이메일 아이디가 떠올랐다. ' f5love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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