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만들면서 아시아의 단골손님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첫 도전에서 한국은 세계 강호에 쓴맛을 봤다. 이후 암흑기를 거쳐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진출하며 32년 만에 세계무대에 다시 등장했다. 1990, 1994, 1998 등 네 차례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아픔을 겪었던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쓰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일본에 지면 현해탄에 빠져 죽겠다"
한국의 첫 월드컵 본선진출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한국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한국은 그해 3월 일본과 극동 지역 예선을 치렀다.
홈&원정 방식의 경기라 일본이 한국에 와야 했지만 절대로 한국 땅을 밟게 할 수 없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뜻에 따라 두 경기 모두 도쿄에서 열리게 됐다. 당시 이유형 감독은 출국 전 이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만약 일본에 승리하지 못하면 선수단 모두 현해탄에 빠져 죽겠다"고 비장한 약속을 했다.
눈비가 섞여 내리는 가운데 치러진 1차전에서 한국은 최정민의 두 골을 시작으로 성낙운, 정남식, 최광석 등의 릴레이 득점으로 5-1 대승을 거둔 뒤 2차전에서도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1승1무로 본선 출전권을 얻어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32년 만의 월드컵 진출
1983년 멕시코에서 열린 제4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4강 신화는 성인 대표팀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청소년대표팀에서 활약했던 김종부는 대표팀에서 선발되는 등 자양분이 됐다.
1985년 예선이 시작됐다. 두 장의 본선 티켓을 놓고 한국은 A조에 속해 네팔 말레이시아와 1차 예선을 치렀다. 네팔을 2-0으로 손쉽게 잡았지만 말레이시아 원정에서 0-1로 패했고 대한축구협회는 문정식 감독을 해임하고 김정남 코치를 사령탑에 선임했다.
홈에서 네팔에 4-0으로 승리한 한국은 말레이시아를 2-0으로 꺾으며 B조 1위 인도네시아와 만나 2-0, 4-1로 승리하며 최종예선에 올랐다.
하필 상대는 영원한 라이벌 일본. 도쿄에서 열린 1차전에서 정용환의 시원한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은 뒤 최순호의 도움을 받은 이태호가 일본 수비수를 따돌리고 골을 터뜨리며 2-1로 승리해 월드컵 본선에 한 걸음 다가섰다.
2차전, 한국은 후반 16분 박창선의 가로지르기를 받은 최순호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시도한 슈팅이 골포스트에 맞고 나오자 허정무가 달려들어 오른발로 골을 결승골을 터뜨리며 월드컵 진출을 확정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무패행진...아시아-아프리카 최초 2회 연속 진출
6개조로 나뉘어 1차 예선을 거쳐 각 조 1위가 특정 지역에서 풀리그로 최종예선을 갖는 방식. 중동팀과 일전을 피할 수 없어 한국으로선 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예상과 달리 네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한 조에 속해 6전 전승(25득점 무실점)을 거두며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활약을 했다.
최종예선은 1989년 10월 12일부터 28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한국과 함께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중국, 카타르가 자웅을 겨루게 됐다.
수월할 것 같던 경기는 카타르와의 1차전에서 0-0으로 비겨 불안함을 조성하게 했지만 이후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각각 황선홍, 김주성의 결승골로 1-0의 승리를 거두며 1위에 올랐고 사우디마저 2-0으로 물리치고 3승1무로 남은 경기에 상관없이 이탈리아행 티켓을 확보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기적'에 희비 엇갈린 한국과 일본
1992년 전임 감독제가 도입되고 김호(현 대전시티즌 감독)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대표팀은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으며 예선에 나섰다. 1차 예선에서 레바논, 바레인, 인도, 홍콩을 상대로 7승1무로 무난히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최종예선은 한국을 비롯해 북한, 사우디, 일본, 이라크, 이란 등이 나섰다. 중동의 약진과 일본의 추격으로 본선행은 불확실했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풀리그에서 한국은 단 두 장의 진출권을 얻기 위해 첫 상대 이란을 잡는데 주력했다. 3-0으로 승리하며 순탄할 듯했던 경기는 이라크와 2-2, 사우디에 1-1로 비겨 위태위태했다.
급기야 일본과의 4차전에서 미우라 가즈요시에 결승골을 내주며 0-1로 패해 자력진출은 힘들어졌다. 마지막 한 경기를 남기고 일본이 2승1무1패(승점 5점 골득실 +3), 사우디가 1승3무(5점, +1), 한국이 1승2무1패(4점, +2)였다.
일본이 가장 유리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지면 탈락할 수도 있었다. 한국은 두 골 차 이상으로 북한을 이기고 일본과 사우디 중 한 팀이 비기거나 패하기를 기도해야 했다.
동시에 경기가 시작됐고 사우디가 이란을 4-3으로 이기며 본선을 확정한 가운데 한국도 북한을 3-0으로 경기를 마무리했지만 분위기는 침울했다.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이라크-일본의 경기에서 종료 30초 전 움란 자파르가 헤딩으로 동점골을 넣으며 2-2 무승부로 끝난 것. 한국 선수단은 믿기 힘든 '도하의 기적'에 그라운드에서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고 일본 선수단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1998 프랑스 월드컵, 키워드 '도쿄 대첩'
1997년 1월 갈색 폭격기로 이름을 날렸던 차범근 감독이 대표팀 감독에 선임됐다. 본선 참가국이 32개국으로 확대되고 아시아에 배정되는 출전권도 3.5장으로 늘어나면서 한국의 본선진출 확률도 높아졌다.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일본, 우즈베키스탄, UAE, 카자흐스탄과 B조에 속했다. 카자흐스탄과의 1차전에서 최용수의 해트트릭으로 3-0, 2차전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2-1로 승리하며 2연승을 거뒀다.
3차전은 숙적 일본. 선제골을 뺏겨 어려움을 겪던 한국은 후반 38분 서정원이 최용수의 헤딩 연결을 받아 머리로 골을 넣으며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41분 이민성이 미드필드 중앙에서 환상적인 왼발 슈팅으로 역전골을 터뜨리며 일본 열도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분위기를 탄 한국은 6차전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5-1로 승리하고 조 1위로 4회 연속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다만, 일본과의 홈 경기에서 0-2로 패해 '고의 패배' 논란을 겪기도 했다.
2006 독일 월드컵...쇼크·비극…험난했던 본선행
2002 한일월드컵 주최국으로 한국은 각종 평가전을 치르며 새로운 팀으로 변모해 4강 신화를 창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2003년 2월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한국은 2002년 4강 신화에 취해 아시안안컵 예선에서 베트남(0-1), 오만(1-3)에 패하며 '쇼크'를 받았다. 몰디브 원정에서도 0-0 무승부를 기록해 코엘류 감독은 14개월 만에 중도 하차하는 운명을 맞이했다.
후임 사령탑으로 조 본프레레 감독을 영입한 한국은 사우디, 쿠웨이트, 우즈베키스탄과 겨뤄 우여곡절끝에 6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했다. 그러나 전술 부재와 팬들의 비난에 시달리며 사퇴 압력에 시달렸고 그 역시 '독이 든 성배'를 소화하지 못하고 한국을 떠났다.
후임으로는 UAE 감독직을 수행하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본선에서 태극호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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