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꽃 드라마의 대표적인 순기능으로 오락적, 교육적 기능이 있다. 드라마를 통해 즐거움을 얻기도 하고, 뭔가 배울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기능이 조화롭게 병존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극이다. 사극은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배경과 인물을 기반으로 하고, 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참신한 소재를 찾아 기둥 줄거리에 적절하게 골고루 배합한다. 이를 시청하면서 우리는 인물의 삶에 울고 웃으면서, 동시에 그때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시대상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사극을 통해 역사를 배운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은 어떤 대하사극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방대한 이야기를 극화했고, 우리는 이 드라마를 통해 조선시대의 시대상을 비롯해 많은 부분을 보고 배웠다. 지금까지도 조선시대와 관련된 작품을 기획할 경우 가장 먼저 거론하고 참고하는 것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한국의 사극은 최근 조선시대에서 고려시대로, 나아가 삼국시대에까지 그 시간적 배경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밀레니엄 전 대부분의 사극이 조선시대와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했다면, 근래 사극은 삼국시대 전후의 각 나라별로 주제를 정하고 주요 인물을 다루고 있다.
또 소재의 측면에서도 왕조 중심에서 역사적 인물 중심으로 바뀌고, 역사적 사실을 설명적으로 풀어나가기보다 주요 인물의 일대기에 드라마틱한 픽션을 가미해 재미를 더해가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우리는 '주몽'을 통해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일대기와 고구려 건국과정은 물론, 전신 부여에서부터 주변 열국의 상황과 중국과의 관계 등을 접했다. 또 '서동요'를 통해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라는 문학적 향수뿐 아니라 백제의 건국 과정과 주변 정세를 알 수 있었다. 한편 '대조영'을 통해 고구려의 멸망과 발해의 건국 과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배워 나가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사극을 통해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현전하는 역사적 기록 가운데 삼국시대에 관련된 자료는 조선시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이를 데 없다. 교과서에서 다루는 역사 역시 수박 겉핥기 수준이다.
따라서 요즘 아이들은 그동안 생경했던 위인 주몽과 대조영을 책에서보다 드라마를 통해 훨씬 구체적으로 접하고, 이순신이나 김유신 등 여느 위인과 마찬가지로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됐다. 이것이 사극이 가지고 있는 교육적 기능의 핵심이다.
이제 더 이상의 소재가 없을 것처럼 보일 만큼 사극은 엄청난 편수로 제작돼 왔지만, 아직도 수많은 사극이 제작되거나 기획 중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극은 방송만 하면 이상하리만치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는다. 이유는 뭘까?
우선 드라마의 주요 시청자층이 40대 이상의 성인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급속도로 변화하는 트렌드에 발을 맞추기보다 사극 같은 긴 호흡의 드라마에 푹 빠지는 편이다. 특히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끝까지 봐야 하는 사극이 지닌 묘한 마력에 휩쓸려 자연스럽게 열혈 시청자가 되고 만다.
하지만 이는 시청률의 관점에서 본 것. 내용적 측면에서 보면 사극은 우리의 정서와 가장 가까운 이야기고, 재미있으며, 교육적이기 때문이다. 오락적, 교육적 기능이 함께 발휘되는 사극의 매력은 높은 시청률로 이어지고, 그래서 방송사 및 외주제작사는 요즘 앞 다투어 사극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올 가을 현재 방송중이거나 방송될 사극은 사상 최다 편수를 자랑하고 있다. KBS는 '대조영'과 '사육신', MBC는 '이산'과 '태왕사신기', SBS는 '왕과 나', 이렇게 지상파 3사만 해도 5편이다. 여기에 KBS2의 '홍길동'(가제)과 케이블TV 채널CGV에서 제작 중인 '정조암살미스테리-8일', MBC드라마넷의 '별순검'까지 곧 방송될 예정이어서 요즘은 그야말로 '사극천하'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사극도 역시 드라마이기에 픽션과 논픽션이 병존한다는 사실. 따라서 제작과 방송을 하는 쪽은 철저한 고증을 통해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시청자들은 극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인 사실과 드라마틱한 구성을 위한 허구를 구분해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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