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고시생 현우(유지태 분)는 옆에서 늘 함께 웃어주는 여자친구 민주(김지수 분)가 고맙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그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아낌없이 애정을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현우는 결국 사업고시에 합격하고 민주와 미래를 약속한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5년 6월29일 민주는 서울 서초동의 삼풍백화점에 있었다.
민주는 그날 희생된 사람 중에 한 명이 됐다. 10여년이 흐른 뒤 현우는 삶에 대한 별다른 희망 없이 살아가는 검사가 됐다. 정치권이 연루된 분양비리 사건을 담당하던 현우는 상부에 의해 좌천되고 만다.
앞만보며 살아왔던 현우에게 10년 전 민주가 썼던 여행일기가 전해진다. 민주가 미리 만들어놓은 신혼 여행길이었다. 현우는 민주가 그려놓은 대로 전국을 여행한다. 그 길에서 우연치 않게 세진(엄지원 분)과 계속 마주치게 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김대승 감독의 '가을로'는 그의 데뷔작이었던 '번지점프를 하다' 이후 5년 만에 만든 멜로영화다. 임권택 감독의 휘하에서 오랫동안 조감독을 했던 김대승 감독은 데뷔작 '번지점프를 하다'를 통해 단번에 한국 멜로영화의 중요한 감독의 자리에 올랐다.
'가을로'는 전작 '혈의 누' 이후 다시 멜로영화로 돌아온 김대승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우선 주목을 받았다. 또한 유지태와 김지수, 엄지원 등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들의 출연으로 높은 기대감 속에서 촬영에 돌입할 수 있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이 계절에 맞게 가을빛으로 물든 전국의 비경들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다. 통상 3개월 정도면 끝나는 충무로의 촬영일정을 감안했을 때 10개월에 이르는 촬영 기간동안 만들어낸 화면은 분명 '가을로'의 경쟁력이 된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주인공들은 자연 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을로'는 최근의 멜로영화들이 보여주는 남녀간 '쿨한 연애'보다 지고지순한 연인들이 펼치는 연애의 고운 순간들과 이별의 안타까움을 서정적인 대사로 풀어낸다. 문어체로도 들릴 수 있는 배우들의 대사는 다소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유치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영화는 죽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보다 산 사람들 간의 애틋한 관계를 결말로 제시하며 상처와 치유로서 여행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가을로'를 단층적으로 해석했을 때의 경우다. 김대승 감독은 분명 '삼풍사건'에 대한 자신만의 비판의식을 영화의 밑면에 배치했다.
때문에 멜로영화로서 흡입력은 약하지만 세진 역을 맡은 엄지원의 풍부한 표정과 유지태의 편안한 연기는 멜로 영화의 주인공들로서 손색이 없다. 김지수가 맡은 민주는 아쉽게도 산 사람의 추억 속에만 있어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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