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베테랑', '모가디슈' 등 수많은 히트작을 완성한 류승완 감독이 '밀수'로 또 한번 흥행을 성공시키며 자신의 명성을 제대로 입증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해녀들의 밀수판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내 관객들의 선택을 받았다.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등 출연한 배우들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합이 잘 맞는 스태프들에 대한 애정을 바탕에 깔고 '밀수'를 환상적으로 이끈 류승완 감독의 저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범죄활극으로, 김혜수와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 등이 출연했다.
70년대를 배경으로 해녀들의 밀수판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유쾌하면서도 쫄깃하게 담아낸 '밀수'는 지난달 26일 개봉 이후 관객들의 뜨거운 호평 속 흥행을 이어왔고, 8월 25일 기준 4,863,334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손익분기점 400만 관객을 훌쩍 넘어선 '밀수'는 여전히 식지 않는 인기 속 500만 돌파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동시에 해외 영화제 러브콜도 계속되고 있어 앞으로의 기록에 대한 기대를 끌어올리고 있다.
다음은 류승완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밀수'의 출발점이 궁금하다.
"처음 기획의 출발은 조성민 부사장이 '시동' 촬영을 하러 군산에 갔다가 지역 박물관에서 70년대 밀수에 가담했던 해녀의 사료를 발견했다. 그 이전에 잡지에서 박재식 작가가 썼던 70년대 부산 지역 밀수단 이야기를 흥미로워했다. 그 두 가지가 섞였다. 연출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초기 각본을 보고 못 봤던 것이고 한번 해보면 새로운 시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을 하게 됐다. 해상 밀수는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데 직업군 자체가 해녀는 우리나라 외엔 전 세계적으로 없다. 여성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활극을 펼친다는 것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올여름 유일한 여성 투톱 영화인데, 부담감은 없었나?
"그냥 여배우가 아니라 김혜수, 염정아다. 부담감보다는 흥분됐다. 그리고 이 영화는 김혜수, 염정아의 아우라가 세지만 두 봉오리만 있는 영화가 아니다. 조인성, 박정민 등이 큰 산맥의 코어를 지탱하고 있다. 신구, 남녀 조화도 있다. 단순히 여성 서사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 나를 놀라게 한 배우들의 연기를 꼽아본다면?
"놀라는 장면은 너무 많다. 지금 배우들이 왜 재미있게 찍었는지 생각해보면 현장에서 기싸움이 1도 없었다. 경쟁 구도가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목표를 향해 가는 최소한의 긴장은 다 유지가 되는데, 배우들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경쟁 구도가 있지 않나. 그건 카메라와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신기하게도 '이 수많은 사람이 호흡이 잘 맞는다'를 떠나 배우들의 인품이 좋았다. 김혜수, 염정아가 코어를 너무 잘 이끌어주니까 연출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편하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편하게 할 수 있었다. 계속 배우들은 제 디렉션을 따라서 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겸손한 사람들이다. 자기들이 다 해놓은 거다. 욕 먹을까 봐 제 핑계 대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제 지시대로만 하면 제가 깜짝 놀랄 일이 없을 거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한 번에 오케이가 된 것이 정말 많다. 염정아가 오열하던 장면은 바로 전까지 점심 메뉴 뭐냐고 하다가 앉아서 그렇게 연기를 하는데 '이 여인은 과연 무엇인가' 했다. 권상사(조인성 분)가 첫 등장에서 미소를 짓고 춘자(김혜수 분) 얼굴을 닦아주면서 '그쪽이 나보다 누님이야' 할 때도 그랬다. 박정민이 혀 날름거리는 건 충격과 공포였다. 조인성이 '이렇게까지 한다고?'라고 했다, 고민시가 한약 다리듯 커피양 줄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제일 좋은 건 배우들의 그런 연기를 제일 먼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종수 선배가 총 쏘고 놀라는 것도 무성 영화 시절 코미디언을 보는 느낌이라 현장에서 진짜 깔깔거렸다. 우리 배우들은 창조적인 예술가들이다."
- 김혜수 배우의 연기엔 다소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배우와도 얘기를 많이 했는데, 호불호는 모든 영화에 다 있을 수밖에 없다. 춘자의 진심이 보이는 장면이 두 개 있다. 그 장면이 없으면 명백한 오버 액팅이다. 반전을 보면 춘자가 한 건 다 살아남기 위한 연기다. 더 짠하다. 시장 사람들이 좌판에서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상대하는 모습과 실제는 너무 다르다. 무대 위에서 웃음을 주는 코미디언이 무대 뒤에선 달라지듯, 춘자도 사람들을 상대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취향에 따라 좋고 나쁠 수는 있겠지만, 그 지점에서 배우는 최선을 다해서 해줬다고 생각한다."
- 수중 액션 연출할 때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인가?
"테스트하는데 물속에서 너무 아름답게 움직이더라. 카메라로 찍었는데 '와! 됐다' 했다. 그런데 반 이상이 수영을 못하던 사람들인데 훈련을 한 거였다. 염정아야 수영을 못하는 건 알았는데 박경혜도 그렇더라. 제가 연락했을 때 해야겠다는 마음에 '저야 물개죠'라고 했었는데, 알고보니 수영을 못했다. 물개처럼 움직이는 걸 보고 완전 깜짝 놀랐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나서 감격스러웠다. 김재화만 잘했다. 김혜수는 공황이 있었다. 이런 배우들이 진짜 기가 막히게 해서 됐다고 했는데 카메라도 물에 들어가야 했다. 배우들이 들어오기 전에 앵글을 잡고 동선을 어렵게 맞추면 배우들이 입수한다. 그러면 물이 움직이고 카메라도 계속 움직인다. 그럼 또 그걸 맞추느라 시간이 걸리고 배우가 숨을 참을 수 없어서 물 위로 올라온다. 그 과정이 있다 보니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했다. 그러다 오케이가 나면 '이게 된다고?' 싶었다. 공황이 있던 사람이 표정을 짓고 염정아가 액션을 해주고, 현장이 아무리 힘들어도 스태프까지 모두가 헌신을 해주니까 감동이 있었다."
- 춘자와 진숙(염정아 분)이 물속에서 크로스 되는 장면이 수미상관으로 담기면서 뭉클함을 안긴다. 그 장면의 비하인드가 궁금하고 이렇게 액션을 수중으로 확장하면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막연하게 제가 해보지 않았고 남들도 안 하던 것이라 시도를 한 것이다. 중력의 작용이 덜할 때 나오는 움직임이라면 동선이 자유로울 수 있겠다 싶었다. 물의 저항을 받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이 대결할 때, 물에 익숙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현실적이라면서도 판타지다. 무술 감독님과 얘기를 하고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을 테스트했다. 사실 대본에서 크로스 하는 건 하이파이브였다. 서로 손을 맞잡고 내려가고 올려주고 하는 걸 테스트하면서 해낸 거다. 그게 너무 멋있어서 대본 자체를 바꿨다. 배우들도 테스트를 보고 '저거다' 하더라. 처음 하는 시도라서 무모한 것도 있었지만 게을리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 캐릭터 무비이다 보니 캐릭터의 배치와 균형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애초에 외관상 김혜수, 염정아라는 거대한 두 배우가 있기에 여성 투톱 영화라고 쉽게 읽힐 수 있지만, 만드는 내내 두 사람이 리드를 하지만 등장하는 모두가 중요한 작용을 한다고 생각했다. 굳이 따지자면 투톱도 아니고, 중력을 가지고 있는 진숙이라는 인물이 변하는 이야기다. 인물의 분량을 수학적으로 배치해야겠다는 생각은 영화를 만들 땐 하지 않았다. 흐름이 자연스러운지를 생각했고, 배우들이 밀도 높게 표현을 해줬다. 빈도에 비해 밀도가 높으니까 균형이 잘 잡힌 것 같다. 영화 막판에 진숙과 춘자가 모든 것을 알고 다방에서 대화하는 신에서 별다른 스토리에 대한 얘기를 안 한다. 원래 대본엔 많은 것을 담았다. 그 장면이 핵심이라, 숙소에서도 노트북 켜놓고 시연하는 걸 옮겨 쓰면서 같이 만들었다. 그리고 제가 설득됐다. 실제 친구 사이엔 주절주절 얘기를 안 한다. 그 장면이 가지고 있는 진심엔 많은 말이 필요 없다. 그 여백은 관객들이 각자의 취향, 삶의 궤적으로 따라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김혜수, 염정아 두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버디 영화를 볼 때 조화가 중요하다. 이 영화에서 친구 관계의 두 사람이라고 했을 때 본능적으로 두 사람이 떠올랐다. 두 사람의 오랜 팬인데, 둘이 동시에 나오는 작품이 없었다. '한 번도 안 했다고? 그럼 내가 해야지' 하는 거였다. 연기 조화가 잘 맞았다. 김혜수가 불이면 염정아는 물이다. 김혜수가 용광로 같은 뜨거움을 가지고 있다면, 염정아는 쿨톤이다. 춘자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진숙이 쿨톤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원톱에서는 연기 경연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데, 염정아가 쿨톤을 연기해줘서 춘자뿐만 아니라 장도리(박정민 분)도 막 갈 수 있었다."
"두 분의 태도 역시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정말 '사람들이 이래서 김혜수, 염정아 하는구나' 싶었다. 염정아는 수조 세트를 찍을 때 촬영 다 해서 집에 가도 되는데도 분장도 안 고치고 모니터 앞에 있다. 눈이 마주쳤는데 '우리 집에 갔으면 좋겠죠?'라고 하면서 안 간다. 김혜수도 안 가고 스태프들이 뒷정리하는 걸 보면서 울더라. 갑자기 날 잡아서 큰일 난 줄 알았더니 짐 정리하는 스태프들을 보며 '저렇게 열심히 한다'라고 하며 운다. 스태프들이 늘 하는 일이라고 해도 '우리 팀은 다르다'라고 하더라. 무슨 날만 되면 선물을 하는데, 제가 지금 신고 있는 신발도 추석인가 모든 스태프에게 선물한 것이다. 현장에서 신는 것이 아까워서 공개된 날부터 신겠다고 했다. 기자간담회 때 처음 신었는데 남의 속도 모르고 새 신발 신고 왔다고 하더라.(웃음) 염정아는 실제로도 진숙 같은 느낌이 있다. 촬영 때 '발신제한' 개봉을 했는데 마스크 쓰고 해녀들 다 데리고 개봉날 가서 보고 오더라. 대장이 되어 그렇게 다 잘 챙긴다. 김혜수는 '소년심판'으로 인해 합류가 늦었는데, 자신이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마음이 심해서 어떻게든 빨리 합류를 하려고 했다. 현장에서 마치 주부 가요 교실처럼 손뼉을 치고 놀고, 영화 전체 현장 분위기를 두 사람이 다 이끌었다. 오락부장이었다."
- 오랜 시간 영화를 만들어왔는데 연출자만의 철칙이 있나? 그리고 '밀수'만의 특별함은 무엇이었나.
"특이한 것이 '이 영화가 안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것은 '밀수'가 처음이다. 저는 현장이 힘든 사람이다. 숙소로 돌아오면 '왜 이렇게밖에 못했을까', '빠진 게 뭐지?'라는 생각에 수면 장애에 시달린다. 그런데 '밀수'는 현장에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즐거웠다. 내가 관객보다 즐거우면 안 되는데도, 오랜 세월 같이한 동료,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팀워크를 잘 이끌어준 공이 크다. 현장에선 내가 틀린 선택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급적 준비를 잘하자는 것이 저의 기본적인 연출 태도다. 그리고 현장에서 잘 웃고 어려운 장면을 해내면 박수를 치면서 반응을 잘 해주려고 한다.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노동 강도가 세기 때문에 현장에서 보상받을 수 있게 하자라고 생각하면서 즐거운 장면을 보면 크게 웃으려고 노력한다."
- 춘자와 권상사의 관계를 멜로로 보는 시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매력 넘치고 강력하고 멋진 액션 장면이 많은데도 기억에 남는 특별한 장면은 그것을 넘어서는 감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배우 자체가 가진 매력도 있겠지만 어떤 감정에 이르게 하는 전후 상황의 배치가 중요하다. 영화를 특별하게 해주는 건 의외성, 그리고 한 스푼의 유머다. 예상치 못한 위기, 액션이 발생하는 동안 또 다른 서스펜스를 발생시키는 제3의 요소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춘자가 문이 열렸을 때 같이 싸운다. 권상사가 춘자를 보호하는 대상으로만 가면 무너진다는 얘기를 했다. 살벌한 상황이 벌어져도 춘자가 끝까지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영화의 기조가 유지된다. 가방을 던지는데 김혜수가 힘이 좋지 않나. 깡패들이 밀리겠다고 했다. 뒤에 가서 생기는 감정적인 춘자와 권상사의 케미를 풍부하게 만들어준 건 배우의 힘이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많이 찍었지만 만족도가 높았다. 예상을 벗어나는 마무리에 서스펜스가 유지되는데 배우들이 너무 매력적으로 표현을 해줘서 나름 자부한다."
- 이번 '밀수'에서 조인성 배우가 '잘생겼다', '멋지다'라는 반응을 많이 얻었다. 의도적으로 멋짐을 표현하려 한 것은 아닌가.
"'모가디슈'를 하면서 사람을 너무 망가뜨려서 이번 영화를 하면서 부채의 이자를 갚다가 원금 상환하는 느낌으로 했다. 조인성과 같이 일을 하고 나면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너무 멋진 배우고 멋진 사람이다. 이 사람의 멋을 찍어주는 촬영 조명팀이 좋았다. 권상사의 첫 등장에서 카메라가 길게 움직인다. 테스트하는데 신기하게 조명 실수처럼 권상사를 따라간다. 가까이 가는데 김혜수의 얼굴이 밝아진다. 왜 이러나 했는데 권상사의 바지가 흰색이라 반사판 역할을 해줬다. 조명 역할까지 해주더라.(웃음) 조인성은 말과 행동이 예쁜 사람이다. 저는 조인성이 앞으로도 더 사랑받는 멋진 스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 관리 잘하고 사람 고마운 줄 안다. 진심으로 대중에게 고마워한다. 대중이 자신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이들이라는 고마움이 있다. 참 멋있다."
- 장도리 역 박정민 배우도 등장할 때마다 신을 잡아먹는데 어떻게 제안을 하게 됐나.
"박정민은 아무도 모르는 '유령'이라는 단편 프로젝트를 같이 했다. 제가 '파수꾼'을 워낙 좋아했고 박정민의 행적을 보면서 응원했다. 몇 회차 안 되는 시간 동안 '정말 깊은 사람이구나', '허투루 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사바하', '시동'에서 계속 보면서 좋은 배우고 좀 더 길게 영화에서 만나고 싶다던 차에 제안했다. 정말 너무 잘해줬다. 동생인 류승범이 '밀수' 박정민 헤어스타일이 너무 탐난다는 얘기를 하더라. '나도 저런 거 하고 싶다'라고. 둘이 '타짜3'를 같이 해서 박정민을 아는데 그런 외모를 예상 못 했던 것 같다. 승범이가 남의 영화를 보고 부러워하거나 질투하는 애가 아닌데 '저거 진짜 하고 싶다'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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