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해운대'와 '국제시장'으로 '쌍천만'을 이뤄낸 윤제균 감독은 '영웅'으로 또 한번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며 '명장'으로서의 저력을 입증했다. 모두가 '될까?'라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 확신을 가지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그다. 그의 끝없는 노력과 뜨거운 열정으로 탄생한 '영웅'은 그야말로 한국 영화계에 보석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1일 개봉된 국내 최초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 '영웅'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정성화 분)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다.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며, 국내 최초 '쌍천만'을 이룬 윤제균 감독의 8년 만 신작이다.
동명의 뮤지컬에서 14년째 안중근을 연기한 정성화가 영화에서도 안중근 역을 맡아 진정성 넘치는 열연을 펼쳤다. 또 김고은은 조선의 마지막 궁녀이자 독립군의 정보원인 설희 역로 분해 놀라운 가창력과 깊이 있는 감정 연기를 뽐냈다. 이들 외 조재윤, 배정남, 박진주, 이현우, 나문희, 조우진, 장영남 등이 완벽한 앙상블을 형성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뜨거워질 수밖에 없는 안중근 의사의 묵직한 서사와 깊은 울림을 전하는 넘버, 배우들의 호연은 관객들의 심장을 강하게 두드리며 눈물샘을 자극한다. 진정성을 가득 담아 만든 '영웅'은 현재 23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한국 영화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윤제균 감독은 최근 진행된 조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영웅'을 만들기까지 노력한 바와 함께 앞으로의 목표 지점을 전했다.
- 영화를 보고 감탄한 점은 각색이 굉장히 잘 됐다는 점이다. 뮤지컬에서 아쉬웠던 점이 보완이 다 됐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어떤 과정이 있었나.
"원작이 있는 작품인데, 시나리오 수정만 6개월이 걸렸다. 공연을 보신 관객 입장에서 부족하거나 영화로 옮겼을 때 문제가 있는 부분을 다 고쳤다. 제일 크게 수정이 된 건 설희의 서사다. 뮤지컬은 안중근 중심으로 전개가 되다 보니 설희에게 미션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제일 쉬운 위치인데 왜 그러지 못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장관과 하는 얘기를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는 미션이 부여가 됐고, 그걸 알아내기 전까지 설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개연성이 확보가 됐다. 안중근 의사 같은 경우 회령전투에서 풀어준 일본군 포로가 밀고를 해서 일본군이 쳐들어온다. 그 때 수백명의 전우들이 전멸을 했다. 거기에 대한 자책감, 죄의식이 안중근 의사의 인생 후반부를 결정짓는 터닝포인트였다. 이후 단지 동맹을 하고 이토 히토부미를 처단하기 위해 러시아로 숨어든다. 이것을 명확하게 표현했다."
- 뮤지컬의 중국인 남매도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공연에서는 이토 히로부미나 일본인 캐릭터가 한국말로 대사하고 노래한다. 하지만 영화로 오면 일본말을 해야 한다. 그런데 독립군 진영에 중국인 남매까지 있으면 3개국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헷갈린다. 그래서 바뀌게 됐다. 또 링링 같은 경우엔 안중근을 짝사랑하는 인물이었는데 유동하와의 풋풋한 첫사랑으로 바꿨다."
- 안중근 역의 정성화 배우와는 촬영부터 개봉한 지금까지 오랜 시간 함께 하다 보니 전우애 같은 것이 생겼을 것 같다.
"말 그대로 생사를 넘나들었던 동지다. 지금은 말을 안해도 눈빛으로 안다."
- 정성화 배우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에서 고민이 되는 부분도 있었나.
"나는 고민이 안 됐지만,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이 영화를 정말 잘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최고의 배우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1번이었다. 이 안중근 역할은 정성화가 최고의 배우라고 생각했다. 정성화는 나에게 고맙다고 하는데 그 반대다. 나는 확신이 있었지만, 주변의 수많은 의심의 시선들을 영화 오픈하고 한 방에 다 날려줬다. 감독의 믿음에 보답을 해준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더 고맙다."
-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뮤지컬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도전하기까지, 걱정은 없었나.
"도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내가 뭘 한다고 했을 때 될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결과적으로는 잘 됐지만, '해운대'는 우리나라에서 재난 영화가 되겠냐 하는 의심의 시선이 있었고, '국제시장'도 기성세대의 진부한 이야기를 젊은 애들이 좋아하겠냐는 의심의 시선이 있었다. 결국 도전을 해서 성과를 냈다. 그렇기에 잘 만들면 된다는 생각만 했다."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영화가 나오면 소위 말해 '국뽕'(맹목적으로 자국을 찬양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 그리고 '신파'에 대한 우려도 함께 생겨난다. 하지만 '영웅'은 과한 신파, 국뽕이 없었다. 오히려 담담하게 그려내 더욱 눈물샘을 자극한다. 이 부분에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우려했던 것이 '국뽕'과 '신파'였다. 난 둘 다 걱정을 안 했는데 주변에서 걱정을 했다. 국뽕으로 가려면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플롯을 극대화시키면 된다. 하얼빈에서 이토를 저격하는 장면을 절정으로 만들어 분노와 카타르시스를 끌어올리면 국뽕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토를 악인으로 그리고 안중근은 핍박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영웅'에서 하얼빈 저격 장면은 절정이 아니다. 담백하게 나온다. 어머니에게 답가처럼 부르는 장부가가 절정이다. 대결을 그리는 영화가 아니기에 국뽕은 안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뮤지컬을 봤을 때 어머니의 노래와 장부가를 신파라고 느끼지 않았다. 만약 어머니와 아들이 만났다면 신파처럼 갈 수 있지만, 못 만났다. 아들은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답가처럼 담담하게 '이 세상을 하직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장부가를 부른다. 그 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그래서 신파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보신 관객들도 다행히 의도한 대로 국뽕, 신파는 아니지만 가슴을 울리는 묵직한 한 방이 있다고 하셨다. 나의 진심이 제대로 전달이 됐다 생각이 든다."
- '누가 죄인인가' 법정 장면은 뮤지컬과는 다른 연출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떻게 구현을 했나.
"법정 장면은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철저하게 고증에 따르자였다. 판사, 검사, 변호사, 방청객까지 조선 사람은 단 한 명도 법정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다 일본 사람이었고 대사에도 나온다. 두 번째는 죄수복이 아니라 평상복을 입혔다. 이토 살해 사건의 공판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재판이다. 그래서 전 세계 외신 기자들이 엄청 왔다. 인권을 유린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 안중근에게 죄수복을 입히지 않았다. 세 번째는 판사모를 쓰지 않았다. 의상도 그대로 따라하면서 고증에 충실했다. 그리고 역동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공연에서는 배우들이 무대 장치를 움직여 배우들이 움직인다. 영화에서는 카메라를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프리 비주얼 작업을 통해 카메마를 역동적으로 움직였고 피와 땀이 많이 들어갔다."
- 김고은 배우가 이렇게 노래를 잘한다는 걸 명확하게 알리게 됐다.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였는데, 김고은 배우는 처음으로 촬영할 때 연습 삼아 다 불렀다가 음이탈이 많이 났다고 하더라. 그 때 감독님과 마주 보며 박장대소를 했다고 하던데 그 때 어떤 마음이었나.
"큰일났다 싶었다.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명감을 나도, 김고은도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김고은에게 미안한 게 있다. 촬영 스케줄 상 김고은을 먼저 촬영했다. 그 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초소형 무선 인이어를 사용했더니 반주가 제대로 안 들렸더라. 그 상황에서 김고은이 시험적으로 촬영을 하게 됐다. 우리도 몰랐고, 김고은은 '다 이렇게 하나보다' 했다. 나중에 정성화가 와서 똑같이 그 인이어를 끼고 촬영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안 된다고 하더라. 반주가 들려야 노래가 제대로 나온다는 거였다. 그래서 공연할 때 쓰는 제대로 된 인이어를 사용했다. 김고은은 촬영 끝날 때쯤 알았다. 사전 녹음, 현장 라이브 녹음, 후기 녹음을 다 했는데 김고은은 사전 녹음 때 더 잘 불렀다. 시해 장면 연기도 너무 잘했다. 김고은이었기에 가능했다."
- 나문희 배우 신은 그 자체로 눈물 버튼이 됐다. 뛰어난 가창력이나 기교가 아니라도 충분히 관객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다.
"나문희 선생님의 힘이다. 정성화, 김고은, 박진주 등 우리나라에서 노래 잘한다 하는 배우들이 그 장면을 보고 울기도 울었지만 한숨을 쉬더라. 노래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뒤지지 않을거라 생각하는데 목소리가 갈라지고 흐느낌도 다 들어가는 노래를 듣고 감정 이입이 되는 걸 보고 과연 잘 부르는 노래가 무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하더라. 노래는 기술, 기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진심되게 내 감정을 전달하는지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진심이 담긴 목소리인 라이브를 최종 선택한 것이 좋았다."
-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을 울린 장면, 넘버는 무엇인가.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다. 찍으면서도 울었다. 냉철한 판단을 가지고 NG와 OK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잘 안 울지만 그 넘버는 누가 감독이라도 다 울었을거다. 노래가 있기 때문에 테이크를 많이 가긴 했다. 형무소 담벼락을 걸어가면서 우는 버전도 있었고 찍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렇듯, 배냇저고리를 안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훨씬 더 좋겠다는 생각으로 재촬영을 했다."
- 여러 호평들이 많은데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아이들 데리고 다시 한 번 더 봐야겠다'고 하시더라. 영화계가 가족 관객이 많이 줄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보겠다는 말이 희망이 됐다. 어린 학생,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정확하게 몰랐던 우리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반응이 제일 기분 좋다."
- 감독으로 제작자로, 또 대표로 많은 역할을 수행 중이라 굉장히 바쁠 것 같다. 그 중에서 가장 만족감이 큰 일은 무엇인가.
"남들이 100을 기대할 때 200을 보여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작품이든, 제작자든, 경영인이든 처해진 상황에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영웅'도 뮤지컬이 되겠어? 라고 하는데 200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만족감 보다는, 무엇으로 불러주는 것이 좋으냐라고 한다면 감독이다. 내가 평생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다작 감독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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