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정지원 기자] '조선구마사'가 방영 2회 만에 폐지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역사왜곡, 더 나아가 동북공정 논란에 휩싸였고, 시청자들은 광고주와 드라마 협찬사까지 움직였다. '중국 자본' 경계령까지 내려지며 향후 제작될 드라마들은 비상이 걸렸다. '조선구마사' 사태를 통해 한국 드라마가 마주한 현실을 짚고, 글로벌 시장에서 K콘텐츠는 어떠한 방향성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업계의 고민을 들었다. [편집자주]
◆ '조선구마사' 첫방송부터 폐지까지 단 5일…초유의 사태
역사 왜곡 논란으로 한 드라마가 방송 취소 및 폐지가 되기까지 정확히 닷새가 걸렸다. 다른 의미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드라마가 된 SBS '조선구마사'는 한국 콘텐츠 사업 업계 전반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또 이번 사태는 드라마와 콘텐츠 제작업계가 지녀야 할 역사적 덕목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조선구마사'는 지난달 22일 첫 방송 직후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다. 태종이 악귀와 손을 잡고 조선을 건국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그가 환시에 시달려 무고한 백성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인물로 그려진 게 그 시작이었다. 여기에 조선의 기방과 먹거리가 이렇다 할 고증 없이 중국식으로 꾸며지면서 시청자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역사 근간으로 불리는 조선의 탄생 배경이 악귀와 연관이 돼 있고, 조선 성왕으로 일컬어지는 태종과 세종이 악귀에게 혼이 팔린 인물로 표현되자 여론은 들끓었다. 특히 박계옥 작가가 '조선구마사' 전작 '철인왕후'에서도 역사왜곡 논란에 휘말렸고, 박 작가가 집필에 참여했던 영화 '천군'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밀수꾼으로 그려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노는 들불 붙듯 퍼져나갔다.
지난 달 24일 청와대 국민청원홈페이지에 게재된 '조선구마사' 방영 중지 및 폐지 청원글은 29일 21만명의 동의를 이끌어냈고, '조선구마사'를 협찬 및 지원하는 기업들은 여론의 분노를 직접 접하며 잇따라 '손절'했다. 지자체 역시 촬영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나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는 5천 건이 넘는 민원이 접수됐다.
결국 '조선구마사'는 2회 방송 이후 제작 중단 및 폐지를 알렸다. SBS는 "심각성을 깊이 인식해 '조선구마사' 방영권 구매 계약을 해지하고 방송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고, 제작사 역시 "제작은 중단됐다. 해외 판권은 계약해지 수순을 밟고 있다"고 밝혔다. 신경수 PD, 박계옥 작가, 감우성 장동윤 박성훈 등 제작진과 배우들도 잇따라 사과문을 발표했다.
박계옥 작가는 "역사 속 큰 족적을 남기셨던 조선의 건국 영웅 분들에 대해 충분한 존경심을 드러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판타지물이라는 장르에 기대어 안이한 판단을 했다. 의도적인 역사왜곡은 추호도 의도한 적이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여러분께 깊은 상처를 남긴 점 역시 뼈에 새기는 심정으로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며 사과했지만 여론의 질타는 여전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5천년 역사는 늘 주변국에 의해 생채기가 났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악행을 100년 넘는 시간동안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중국은 한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이 한국의 김치와 한복을 제 것이라 주장하며 파장을 일으켰다.
이렇게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이 자행되고 그 수위와 빈도가 높아지면서 대중의 반감도 커져갔다. 그 과정에서 K-콘텐츠에 중국 자본의 물결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국 대기업의 투자야 콘텐츠 발전을 위해 이해한다지만, '여신강림', '빈센조'의 중국 기업 PPL과 '철인왕후'의 미묘한 역사 왜곡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면서 공분은 극에 달했다.
역사 왜곡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 업계의 변화가 대중에게 큰 상처와 분노로 작용하는 과정에서 '조선구마사'가 첫 방송을 한 것이다. 대중이 더 직접적으로,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문화 콘텐츠에서 역사 왜곡이 발생하자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모두가 위축"·"안일한 선택"…업계가 바라본 '조선구마사'
이번 '조선구마사' 사태로 인해 연예계 관계자들의 시선도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다. 대중의 적극적인 개입이 한 드라마의 폐지까지 이끌어내는 초유의 사태 속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되돌아보는 모양새다. 현직 드라마 작가 A씨, 방송 작가 B씨 역시 이번 사태를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무기명을 요구한 드라마 작가 A씨는 조이뉴스24에 "('조선구마사' 사태로 인해) 모두가 위축돼 있다. 실존인물을 쓰는 사극은 집필을 접는 분위기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역사 왜곡이 될 수 있으니, 모든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가려는 움직임이 만연한 상황"이라 현 업계를 진단했다.
그러면서 "드라마를 안 보거나 불매하는 형식으로 의견을 내고 경각심을 가지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드라마의 폐지는 물론 방송도 전에 폐지를 주장하는 경우는 위험하다고 본다"며 "실존인물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지만, 어디까지 조심해야 하는건지도 정확하지 않다. 업계가 옴짝달싹 할 수 없다"고 의견을 더했다.
무기명을 요구한 방송 작가 B씨 역시 "역사는 예민하게 다뤄야 하는 주제다. 사료가 방대할수록 전문가의 '설'을 확인하고 고증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 때문에 드라마, 예능, 영화, 라디오 등 모든 매체가 역사를 다루는 데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방송계에서는 '벌거벗은 세계사'의 설민석 사태가 이번 사건과 유사했다"고 역사를 주제로 한 콘텐츠 제작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대가 바뀌면서 매체가 잘못된 정보를 내보냈을 때, 시청자는 실시간으로 이를 찾아내고 항의한다. 때문에 모든 팩트를 다루는 데 있어 조심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역사왜곡 및 중국의 동북공정 사태로 예민해진 현 시점에선 더욱 그렇다"며 "'조선구마사'가 실존인물로 이같은 스토리를 내보낸 건 다소 안일한 선택"이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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