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양수 기자]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내년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데 대해 "잘 되면야 경사지만 아니어도 괜찮다"고 입장을 밝혔다.
29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봉준호 감독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기생충'(감독 봉준호, 제작 바른손이앤에이)은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장편 영화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 분)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이하 봉준호 감독 인터뷰 일문일답
-황금종려상 수상 당시 격한 반응을 보였는데. 저보다는 송강호 선배가 많이 흥분하셨다. 선배가 제 몸을 흔들다보니까 함께 흔들렸다. 발표 당시엔 멍해졌고, 자동으로 소감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수상 발표 당시 타란티노 감독과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는데.
시상식에서 작은 상부터 큰 상을 향해 발표하니까 허들을 넘는 기분이었다. 만약에 타란티노 부부가 오지 않았더라면 서스펜스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심사위원 대상을 발표하고 나면 우리만 남는 거니까. 그럼 자동적으로 알게 되는건데. 타란티노 덕분에 마지막에 두 팀이 남는 상황이 됐다. 타란티노는 최후의 서스펜스였다.
-어제(28일) 첫 언론시사가 있었는데 소감은.
칸과 한국의 리액션 차이는 모르겠다. 대신 시사회 끝나고 몇분이나 나갔는지 물었는데 다행히 없다고 하더라. 그것은 감독들의 가장 근원적인 공포다.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리셉션 현장 분위기가 화제였다. 들어서자마자 심사위원들이 에워싸고 질문공세를 펼쳤다던데.
경쟁부문 초청 감독들은 심사위원들과 접촉할 수 없게 돼 있다. 영화제 기간동안 자연스럽게 격리 된다. 시상식이 끝나면 마침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 자신들이 상을 준 감독을 만나면 궁금한 게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심사위원장은 부잣집은 어디냐. 어떻게 그렇게 완벽한 집을 골랐냐고 묻더라. 내가 '만든거죠. 형 왜이래. 알잖아' 했다.
엘르 패닝은 배우들 찬사를 늘어놨다. 비록 언어를 모르고 자막으로 봤지만 모든 여배우들의 대사나 표정에 대해 찬사를 하면서 물어보더라. 표정이나 리듬감이 탄복스러웠다고 했다. 심사위원장은 송강호가 강력한 남우주연상 중 하나였는데 만장일치로 작품상이 되는 바람에 아쉽게 됐다고 하더라. 칸에서는 중복수상 불가 규정이 있다. 그 이야기를 송강호 선배에게 해드렸더니 '물론 남우주연상도 영광이지만 '기생충'이란 영화를 그 카테고리로 가두기엔 아깝지 않느냐.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살인의 추억'부터 '괴물' '설국열차' '기생충'까지, 배우 송강호와 네 작품을 함께 했다. 송강호의 매력과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송강호는 작품 자체의 성격이나 느낌을 규정짓는 힘이 있다. 내 영화에 나오는 상황이나 스토리들은 기이하고 독특한 게 많다. 흔히 봐온 전개가 아니다. 범인을 못잡고 영화가 끝나고, 한강에 괴물이 미쳐 날뛰게 한다. '기생충'도 후반에 우리가 흔히 보지 못하는 전개의 굴곡이 있고 클라이맥스에 폭발하는 감정도 있다. 그런데 모든 관객들로 하여금 그런 것을 믿게 만든다. 설득력이 있다. 공격적으로 표현하면 관객을 제압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나의 시나리오 작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송강호를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쓰면 운신의 폭이 넓어지고, 과감해진다.
-영화에 어떤 포인트를 주고자 했나.
익숙함이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익숙함이 가진 함정이 있다. 예를 들어 착하고 정의롭고, 명분이 있는, 서로 연대하는 약자나 빈자가 나오고. 그 반대편에는 탐욕적이고 폭력적인, 갑질을 노골적으로 하거나, 또는 권모술수로 똘똘 뭉친 부자가 나온다. 물론 현실에도 그런 대립구조가 있고 드라마, 영화도 있다. 하지만 익숙하게 흘러갈 때 과연 우리가 살면서 느끼며 봐온 강자와 약자, 빈자와 부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좀더 현대적이고 요즘스럽고 사실적인 모습을 만들려고 했다.
부자 캐릭터인 이선균 조여정의 느낌을 좀 더 결이 섬세하게 표현했다. 나름 순진한 구석도 있고 세련되고 매너가 있고. 그렇지만 카메라가 미세하게 다가갈수록 히스테릭한게 있다. 그런 식의 접근을 하고 싶었다. 가난한 송강호 가족도 흔한 서민의 모습으로 정감이 가지만 냉철하게 바라보면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나쁜 모습이 뒤범벅돼 있다. 그런 결이 있어야 영화가 가진 인물들의 사실적인 느낌이 살아나리라 생각했다. 또한 관객 입장에선 선과 악이 쉽게 갈라지는 게 아니니까 처음엔 관찰력과 주의력을 요하지만 결국 영화 전체의 사실성의 진폭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적극적인 악당은 없다. 적당한 비릿하고, 나쁜 마음만 갖고 있다. 그럼에도 비극이 생긴다는 게 중요하다. 그게 원초적인 두려움이자 불안감이다. TV에 나오는 우발적인 사건사고들, 그 폭발 밑을 들어다보면 그걸 가능케 하는 에너지가 있다. 그 부분을 송강호가 설득해 낸 것 같다.
-내년에 있을 미국 아카데미상의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오스카는 한국과 시상식 구조가 다르다. 투표권자가 5천에서 7천명에 이른다. 일종의 지자체 선거운동 같은 구조다. 가을부터 각 스튜디오 전담 부서가 예산을 책정해서 일종의 선거운동 하듯이 자료 만들어서 뿌리고, 투표권자들에게 DVD를 보낸다.
하지만 SRB(설레발)는 하지 않으려한다. 희망의 표현을 너무 과하게 표현 하다보면 네티즌들은 'SRB 하지마라'고 우리를 냉정하게 채찍질한다. 외신에서 이렇게 말하더라 정도까지만 생각하고 있다. 잘되면야 경사지만 안되도 어쩔 수 없다.
-'설국열차' 이후 6년만에 스크린 개봉인데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옥자'도 자동차극장 포함해서 100여개 극장에서 개봉했다. 개봉할 때 재밌었다. 사람들이 나를 위로하는데 나는 박스오피스 성적을 안받으니 좋았다. 심지어 넷플릭스는 조회수도 공개하지 않는다. 그 엄청난 해방감을 아마 모를거다.
'옥자' 덕분에 잊고 살았던 극장 리스트도 알게 됐다. 인천 애관극장 아시나. 신성일. 엄앵란이 약혼식한 유서깊은 극장이다. 변희봉 선생님과 무대인사 하고 오는데 얼마나 재밌었는지 모른다. 변 선생님과 '우리가 언제 또 이런데 무대 인사 해보겠어'라고 하면서 웃었다. 속 편하고 재밌었다.
-차기작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
금액을 떠나서 '마더'나 '기생충'이 나의 몸에 맞는 사이즈다. '옥자'나 '설국열차'는 감독이 감당해야 하는 에너지가 크다. 난 '마더'와 '기생충'의 스케일의 느낌이 좋게 느껴졌다. 그것이 미국 프로젝트건 한국 프로젝트건 그런 사이즈로 작업을 하고 싶다.
차기작으로 '서울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사건'을 다룬 영화를 생각하고 있다. 2000년 중반부터 구상해온 것으로, 꼭 찍고 싶다. 이것을 포함해 두 가지를 준비하고 있다.
한편, '기생충'은 오는 30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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