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 기자] '축구의 나라' 스페인, 그것도 FC바르셀로나라는 세계 최고 명문 구단을 보유한 도시 바르셀로나는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의 연고지 마드리드와 더불어 축구팬들이 한 번은 꼭 여행하고 싶은 도시로 꼽힌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여행객들도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프누'에는 여행 코스처럼 들린다. 팬샵에도 들려 유니폼 등 각종 기념품을 구매한다. 홈경기와 겹치는 날이면 캄프누 인근은 축구팬과 여행객이 뒤섞여 인산인해다.
축구의 도시에서 K리그 수비수 출신인 박병주(33)는 '별루이 하우스'라는 한인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딸 '한별' 양과 아들 '루이'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2015년 5월 시작한 별루이 하우스 운영도 어느새 3년 6개월이 지났다. 두 번이나 '축구 선수 출신'인 박 사장의 이야기가 보도되면서 축구팬들 사이에 입소문을 탔다. 박주영(33, FC서울)의 '절친'이라는 사연까지 덧붙여지면서 더 주목받았다.
글쓴이와도 인연이 있었다. 박병주는 K리그 성남 일화, 광주FC, 제주 유나이티드를 거쳤다. 광주 시절 글쓴이와 인터뷰를 했었는데 서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글쓴이가 2016년 5월 2주의 휴가로 유럽 4개국 여행 중 바르셀로나에서 급하게 숙소를 잡아야 했었는데 검색을 하니 별루이 하우스가 나왔고 어렵게 예약이 됐다.
'아마추어'였던 민박집 사장님 어느새 '프로' 경영자로
숙소에 오니 이상한 기운이 감지됐다. 광주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진이 보였고 얼굴도 익숙했다. 대화(조이뉴스24=사실상 취재)를 나눠보니 오래전 인터뷰 장면이 머릿속에서 나왔다. 신기한 인연이었다. 그렇게 2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났고 유럽 출장 중이던 지난달 10일 어렵게 재회할 수 있었다.
2016년의 별루이 하우스에는 '프로' 출신 사장이지만 '아마추어' 운영 냄새가 났다. 박 사장 부부와 아이들이 거주하는 공간과 손님들의 공간이 다소 분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다시 온 별루이 하우스는 프로처럼 운영됐다. 손님들의 자율성을 더 보장하고 박 사장 가족의 사생활도 보장됐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다. 처음에는 정말 해도 되는가 의심하면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문의가 왔다.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축구 공부를 할 여유도 조금 생겼다."
100% 만족이 있기는 어렵지만, 박 사장의 최선을 다하는 운영에 손님들도 상당한 만족을 느끼고 돌아갔다. 조식을 먹는 부엌 벽에는 '고맙다'는 메시지가 많았다. 처음에는 한식으로 아침 식사를 제공했다가 여행이 더 중요한 손님 기호에 맞춰 스스로 해 먹는 유럽식도 추가해 제공하고 있다.
진실한 운영을 위해 소위 광고성 홍보를 하지 않는다. 직접 블로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만들어 운영하며 별루이 하우스를 소개하고 바르셀로나 날씨에 따른 옷차림 등을 알려준다. 2층 침대를 놓고 4~6명씩 지내는 방은 없다. 1인실, 2인실, 3인실로 번잡하지 않도록 했다. 청소도 외부 업체에 맡기지 않고 여전히 직접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료지만 공항 차량 배송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별루이 하우스의 위치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에스파냐 광장과 까탈루냐 광장 중간 위치다. 바르셀로나 공항으로 떠나는 공항버스 타는 것도 편하고 지하철역도 근처에 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UBER)에 한글로 '별루이 하우스'가 검색된다는 점이다. 새벽 2시 반에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바르셀로나에 지연 도착해 우버를 이용했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박 사장에게 "정말 유명한 민박집이 된 것 같다"며 웃었다.
열심히 별루이 하우스를 운영하니 약간의 수익이 생기고 기존 2호점을 폐점하는 대신 카탈루냐 광장과 가까운 곳에 새로운 숙소를 인수, 운영에 들어갔다. 이 역시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프로 선수로 키웠던 근성에 경영 감각이 가미되면서 내린 승부였다. 최근에는 국내 한 잡지에 직접 글을 써서 기고도 했다. 라디오에 그의 사연이 나오기도 했다.
"바르셀로나 물가가 2년 사이에 정말 많이 올랐다. 집값도 당연히 올랐다. 상상 이상이다. 그래도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2호점을 새로 개점했다. 이제는 축구팬들과 더불어 도시 자체를 여행하러 온 손님들이 더 많아졌다. 연령대도 조금은 높아졌다. 모두 와서 만족하고 돌아가면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깊은 뜻도 있었다. 축구 유망주들에게 조금이나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축구 꿈나무들이 스페인으로 축구 관전을 많이 오지 않는가. 실제 지도자분들께 '우리 아이들과 축구를 할 수 있는 팀을 구해 달라'는 문의도 종종 온다. 그래서 숙소에 아이들을 머무르게 하면서 스페인 지인들을 통해 좋은 상대와 2~3경기 정도 잡아주고 싶다. 축구 발전에 작지만 도움이 되고 싶다."
유럽축구연맹 지도자 자격증 취득, 스페인 축구협회 자격증에도 도전
결국, 축구를 놓을 수 없는 박 사장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고교 시절 박주영과 함께 브라질 유학을 다녀왔고 대학 선발팀으로도 활약했다. 성남에서는 2군 신세였지만, 광주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뛸 정도의 실력이었다.
유럽축구연맹(UEFA) 지도자 자격증도 땄다. 일단 C라이선스를 취득했다. 6개월이나 걸렸다. 영국 웨일스 카디프에 넘어가서 직접 몸으로 보여줬다. 바르셀로나에서 직항이 없어서 브리스톨로 가서 환승해 카디프로 가는 고생을 마다치 않았다. 유일한 선수 출신이라 시범 조교 역할도 했다.
"처음에는 나를 중국인으로 알더라. 그래서 한국에서 왔고 프로 선수 출신이라고 했더니 다들 놀라더라. 그렇게 하나씩 배웠고 C라이선스를 땄다. B에도 도전해야 하는 데 생계 문제도 있고 해서 일단 멈췄다. 대신 스페인 축구협회 라이선스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1, 2, 3으로 나뉘는데 1이 UEFA의 B라이선스와 같다. 스페인은 자국 라이선스를 더 우대하고 인정한다. 자부심이 있는 것 같다. 250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생리학, 운동 역학 등 많은 것을 알아야 하더라."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 지도자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박병주가 축구를 배우던 시절은 수비에서 공격을 전개하는 빌드업 개념조차 없었다. 시행착오를 겪어봤기에 더 제대로 가르쳐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작은 구단을 직접 창단해 감독이 되고 싶은 계획도 있다. 유소년 육성의 천국인 스페인 축구협회 라이선스를 따로 취득하고 싶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8월에 한국에 들어가서 선배 지도자들을 만났는데 모두 부러워하더라. 다들 UEFA 라이선스를 꼭 따고 한국에 돌아오라고 하더라.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민박집을 운영한다는 것이 이상적인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손님맞이를 하고 청소, 정리하고 스페인 축구 시스템 공부도 하고 할 것이 너무 많은데…하루가 정말 빨리 간다.(웃음)"
축구에 대한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스페인 아버지들과 어우러지는 '동네 리그'도 뛰고 있다. 아버지들 사이에서 박 사장은 '신계'에 가깝다. 박 사장이 골도 넣고 경기도 조율해주니 말이다. 선수 출신이라는 것을 안 상대팀 아버지들이 거칠게 압박해부상도 당했다. 수술 대신 자가 회복 중이라 뛰지 못하고 있지만, 아버지들의 우상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축구를 하면 참 기분이 좋더라. '아! 이래서 축구와 인연을 끊기 어렵구나' 싶더라. 브라질에 유학 갔었던 1년이 지금의 스페인 생활에 정말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스페인에서 많은 사람과 마주했고 다양한 인생도 알게 됐다. 아내가 가장 고생 많이 했는데 별말 하지 않고 도와주니 정말 고맙더라. 그래서 뭐든지 더 열심히 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한국에서 꼭 지도자에 입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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