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 기자] 여자 축구의 대들보 지소연(27, 첼시 레이디스)은 종종 대한축구협회를 향해 볼멘소리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축구협회가 여자 축구 환경 개선에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궁극적으로는 여자축구연맹(KWFF)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축구협회를 움직여야 하지만, 물 흐르는 대로 지내다 A대표팀 선전으로 떨어지는 낙수만 받아먹고 있다. 지소연의 모교 한양여대나 여자 대학 축구 강호였던 여주대는 해체됐다. WK리그 최강 대교도 소리 없이 사라졌다. 창녕FC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부족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WK리그를 겨우 운영하는 상황에서 그 이상을 바라기에는 너무 버겁지만, 기본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매번 외쳐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A매치 하고 싶어요"
여자 축구 미래 세대가 줄어가지만, 표면적으로 무엇인가 해보겠다고 보여주는 대책도 없다. 윤덕여 여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어려움을 호소해도 그저 현실에 순응하고 있다. 당장 내년 프랑스 여자 월드컵도 걱정 투성이다. 황금 세대로 겨우 버텨 본선 진출을 이끌었지만, 그다음 준비에는 애를 먹고 있다.
마침, 런던 외곽 뉴몰든에서 지소연과 만났던 지난달 8일은 여자 축구 A매치 주간이었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브라질, 호주와 2연전이 잡혀 있었다. 옆 나라 중국은 포르투갈, 핀란드, 태국을 영천으로 불러 컵대회를 치렀다. 지소연은 "동료들 대다수는 A매치 치르러 갔다. 우리는 없으니까 그냥 팀에 남아서 운동하면서 쉬고 있다"며 멋쩍게 웃었다.
"A매치를 치러보고 싶다"는 외침은 지소연을 비롯해 여자 축구대표팀 선수들의 단골 메뉴다. 하지만,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축구협회도 남자 A대표팀 중심으로 정책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른 해라면 몰라도 내년 월드컵을 준비하는 여자대표팀에는 한 경기 경험이 소중하다.
109경기나 뛴 지소연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말해도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본 중국은 스태프가 선수만큼 있더라. 그만큼 관리하고 투자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A매치 하고 싶다고 외쳐도 메아리처럼 돌아온다"고 아쉬워했다.
A매치는 단순히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이거나 대표팀의 전력 강화 목적으로만 치르는 것은 아니다. 여자 축구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투자도 늘고 있다. 그만큼 해외 진출에 대한 길이 열리는 셈이다.
지소연이 뛰고 있는 잉글랜드 여자 프로축구리그인 WSL(WOMEN'S SUPER LEAGUE)은 초창기 연봉총액상한제(셀러리캡)가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졌다. 팀별로는 셀러리캡을 유지한다. 그러나 각종 옵션 등 수당을 포함해 거액을 챙기는 선수들도 있다.
잉글랜드 여자 대표팀 주장 스테파니 휴튼(맨체스터 시티)은 연봉이 2~3억원 선이지만 수당 등을 합쳐 10억을 받는다고 한다. 그만큼 선수들의 몸값이 많이 올랐다. 2011년 WSL 출범 당시 8개 구단이었지만 현재는 11개 구단으로 늘었다. 챔피언십(2부리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이디스가 들어와 거액의 투자로 승격에 불을 켰다. 토트넘 홋스퍼 레이디스도 이다. 지소연이 첼시 레이디스에서 리그 성장만큼 합당한 수준의 대우를 받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선수 영입도 활발하다. 한국 선수들이 충분히 유럽 무대에 발을 디딜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지소연은 "한국 선수를 찾는 편이다. 저 같은 스타일이 잉글랜드는 없으니 그렇다. 그런데 노출 기회가 없으니까 중국 선수들을 찾는 편이다. A매치도 잉글랜드와 한다. 스카우트도 많이 본다. 눈에 들어오니 말이다"며 A매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A매치를 통해 해외 진출을 하면 저절로 대표팀의 수준도 올라간다는 뜻이다. 아시안게임 기준으로 여자 대표팀에는 지소연과 노르웨이에서 뛰는 조소현(30, 아발드네스), 일본의 이민아(고베 아이낙) 정도다. A매치만 잘 치러도 더 많은 선수가 유럽 무대를 밟을 가능성이 있다.
"A매치 하면 새로운 유럽 진출 선수 나와…장슬기 등 가능성 충분"
후배들에게도 유럽 도전을 권유했다는 지소연은 "남자 선수들은 많이 (유럽에) 나오니 서로 이야기를 할 기회도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 후배들에게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나올 수 있다고 해줬다. 물론 집안의 가장이거나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도전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쇼케이스 성격인) A매치를 원정으로 치르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장슬기(24, 현대제철)는 WSL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는 자원이다. 측면 수비수지만 저돌적이고 골 결정력도 있다.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 여자 아시안컵 예선 북한전 1-1 무승부의 주역이다. 장슬기 덕분에 월드컵 진출권도 얻었다. 지소연은 "(장)슬기는 WSL에서도 매력적인 자원이다. 해외 무대 진출 생각을 해봤으면 싶다. 충분히 통한다"고 칭찬했다. 이 부분은 조이뉴스24도 100% 동의했다.
대표팀은 2015 캐나다 월드컵에서 브라질에 0-2로 지고도 코스타리카와 2-2로 비기고 스페인에 기적의 2-1 승리를 거두며 16강에 올랐다. 프랑스에 0-3으로 완패하며 8강 진출이 좌절됐다. 그 이후 브라질, 프랑스, 스페인은 만난 적도 없다. 내성을 키우지 못하고 다시 월드컵에 도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소연은 "대표팀에 런던에 한 번 왔으면 좋겠다. 팀 동료들을 통해 필 네빌(잉글랜드 여자대표팀 감독)에게 우리와 경기 한 번 하자고 하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들어준다는 보장은 없다. 한국보다 독일 등 강호들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할테니 말이다. 그래도 더 강한 상대를 찾아 나서야 한다. 한국이 유럽 원정만 온다면 충분히 A매치 성사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잉글랜드랑 해서 몇 대 맞고 독일, 프랑스에도 찾아가서 배워야 한다"며 다목적 A매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조이뉴스24와 만난 후에도 지소연은 WSL 3경기와 UWCL 피오렌티나(이탈리아)전 2경기에 꾸준히 선발로 출전해 자기 기량을 뽐내고 있다. 지소연은 가장 중요한 한마디를 남겼다.
"영국에서 계속 뛰며 버티고 있는 것은 우리 여자 축구 뒷세대를 위해서다. 그들이 올라와야 여자축구가 계속 간다. 그 연계를 위해 더 노력하려고 한다. 언젠가 꼭 잉글랜드와도 A매치를 하고 싶다. 남자처럼 매달 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3개월에 한 번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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