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가슴 떨리는 연애시절은 잊혀진 지 오래, 현실은 팍팍했다. 직장의 상사보다 더 무서운 아내였다. 마트에서 분노 게이지를 참지 못하고 집에선 '꽃게 다리'를 날렸다. 전쟁 같은 나날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과거로 간 남편은 새로운 선택을 했다.
'금수저' 첫사랑과 결혼했고 '든든한' 배경을 갖게 했다. 그런 그 앞에 과거의 아내가 나타났다. 후줄근한 옷과 분노조절장애의 주부 대신 당당하고 매력적인 커리어우먼으로, 날선 표정 아닌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래. 그녀는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었다. 미안하고 또 설렜다.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는 한 번의 선택으로 달라진 현재를 살게 된 운명적인 러브스토리를 그린다. 결혼 5년차 주혁(지성 분)과 우진(한지민)이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운명이 바뀌어, 180도 달라진 현재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게 된 인연들과 써내려가는 로맨스 판타지다.
드라마는 '한 번의 선택으로 달라진 현재'라는 판타지적 설정으로 시작되지만, 떨림과 설렘으로 가득찬 핑크빛 로맨스 드라마와는 거리가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부부의 모습은 흡사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보고 있는지 착각할 정도.
상사 비위 맞추랴 눈치 없는 신입의 뒤치다꺼리하랴 고달픈 은행원 주혁과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우진은 전쟁 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직장에서 점심 시간에도 홍보 전단지를 돌리던 주혁이나, 아이들 픽업을 앞두고 발을 동동 굴리는 워킹맘 우진이나 그 사정이 짠하고 안타깝다.
우진은 "쟤들은 나 혼자 낳았어. 왜 나 혼자 독박을 써야 하는거냐"며 윽박지르고, 주혁은 친구들에게 "괴물 하나와 침대를 같이 쓰는 것 같아"라며 이혼하고 싶다고 토로한다.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감당하지만, 팍팍한 현실에 정작 상대를 돌아보기 힘든 현실 부부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런 보통남자 주혁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정체불명의 남자를 돕고 건네받은 동전으로 과거로 돌아가는 톨게이트를 열게 된 것. 주원은 고등학생 우진과 버스 안에서 마주쳤지만 눈 질끈 감고, 첫사랑 혜원(강한나 분)을 선택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주혁의 현재는 바뀌어있었고, 침대 옆에 누운 그의 아내는 우진이 아닌 혜원이었다. 매일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 '비타민 같은' 뽀뽀로 배웅한다. 아내만 바뀐 건 아니었다. 장인 어른은 재벌그룹 총수에 대저택과 고급차까지, 그는 쾌재를 불렀다. VVIP 장인 어른의 도움 덕에 직장에서 그를 구박하는 상사도 없었다. 누구나 부러워하고 꿈꾸는 삶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해피엔딩'일리 없다. 바뀐 삶이 달콤하기만 한 건 아니다. '금수저 첫사랑' 아내와도 갈등은 있다. 재벌가 사위가 되는 대신 정작 자신의 부모와는 멀어졌다. 어머니는 "아들을 뺏긴 것 같다"고 토로하고, 아내는 불쑥 집에 찾아온 부모를 불편해하며 "호텔방을 잡아주겠다"고 했다. 말다툼 끝에 아내는 호텔 스위트룸으로 가출했다. 고부 갈등, 부부의 현실 이야기는 바뀐 삶에도 존재한다.
여기에 자신의 과거 아내였던 우진이 같은 지점으로 발령 받아 직장 동료가 되면서 평화는 지속되지 않았다. 우진이 낯설고 불편한 주혁은 지점일이 힘들다며 달래고, 쓸데없는 트집을 잡아 다른 지점으로 보내려고 애를 썼지만 그녀는 꿋꿋했다. 밝고 생기 넘치는 우진을 지켜보며 주혁은 과거의 그녀를 떠올리며 애틋한 감정과 함께 자책감이 들었다.
주혁은 아내 우진이 멜로 영화를 핑계로 자신 몰래 많이 울었음을 뒤늦게 알고 아팠고, 장인 어른의 기일에도 회사 생활이 먼저였던 자신을 반성했다. "네가 괴물이었던 게 아니라 내가 괴물로 만든 거였다. 미안해"라며 뒤늦게 후회했다.
드라마는 과거로 돌아간 남자의 선택과 반복되는 인연, 운명에 대한 이야기들을 속도감 있게 전개했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을 법한 'if 로맨스', 그리고 이로 인해 달라진 삶은 흥미롭다.
과거의 기억을 온전히 품고 현재를 마주하는 주인공 주혁과 그 주변 인물들의 관계는 반전의 연속이다. 웃기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예컨대 절친한 친구가 여동생의 남편이 됐음을 알고 분노하는 장면은 웃음으로 분위기를 환기 시켰다면, 팍팍한 현실에 지쳐가던 워킹맘 우진이 자기 일도 똑부러지게 하는 활기찬 커리어우먼으로 등장했을 때는 짜릿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선사했다. 자신의 절친이 (과거의) 아내에게 반해 하트시그널을 쏘아대는 썸남이 되어, 복잡한 삼각관계의 주인공이 될 줄도 몰랐다.
'판타지'적인 요소들, 곳곳에 숨겨진 물음표들도 스토리에 흥미로움을 더한다. 알 수 없는 꿈을 꾸고 주혁의 손길이 어색하지 않은 우진의 모습이나 주혁을 "차서방"이라고 부르는 우진 엄마(이정은 분)의 모습, 그리고 의문의 남자 재등장 등은 향후 이야기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높이는 대목들이다.
이에 반해 '운명적인 로맨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현실 부부에서 직장 동료로 두 사람의 인연이 계속 되면서 '운명 로맨스'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고, 현재의 삶도 충분히 소중하고 가치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진과의 추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고, 사소한 취향까지 기억하고 있는 주혁은 "우진이를 웃게 만들기 위해 기운 내 또 하루를 살아가던 시절"을 떠올리며 깊은 여운을 선사하고 있다. 외면하려 해도 그의 시선과 관심은 내내 우진을 쫓고, 우진에게 다가서는 직장 동료이자 친구 윤종후(장승조 분)에는 질투하고 방해 작전을 펼친다. 본격 로맨스 준비를 마친 것.
문제는 주혁과 우진의 현실 케미를 그리면서 일부 시청자들에 '밉상' 남편으로 낙인 찍혔다는 것. 드라마가 지극히 현실 부부의 삶을 그려놓은 탓에, 워킹맘 아내를 배려해주지 못하고 며느리와 시댁 사이의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하면서 남 탓(?)만 하는 구시대적 진상 캐릭터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자신은 첫사랑을 선택했으면서, 아내의 '썸'은 훼방하는 모습을 보고 '지질하다'고 느끼는 시청자도 적지 않다. 여기에 현재 첫사랑 아내가 있는 상태에서 과거 아내와 로맨스를 해야하기 위해선 '불륜'이라는 장치도 끌어들여야 한다는 숙제도 있다. 실제로 이혜원(강한나 분)의 마음을 흔드는 연하남이 등장, 쌍방 과실(?)의 분위기를 만들면서 부부의 로맨스를 정당화 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그럼에도 '아는 와이프'는 '부부'라는 존재에 대한 깊숙한 질문을 던지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이야기를 탄탄하게 만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잘 마쳤다. '믿고 보는 배우' 지성과 한지민의 만점 케미, 직장 생활의 애환과 공감,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이 잘 어우러지면서 기다려지는 드라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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