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 기자] 2018 러시아월드컵 준비 과정에 있는 축구대표팀이 지난 20일(이하 한국시간)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 입성했습니다. 아일랜드 축구대표팀 훈련장인 아일랜드 축구협회(FAI) 내셔널 트레이닝센터에서 담금질하고 있는데 훈련 환경이 나쁘지 않아서 24일 북아일랜드전에 대해 기대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북아일랜드와 경기를 치르는 장소는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입니다. 더블린에서는 육로를 통해 이동하면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됩니다. 나라는 다르지만 같은 아일랜드섬 안에 있으니 큰 문제가 될 일은 아닙니다. 다만,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의미하는 브렉시트(Brexit) 선언 이후 북아일랜드 내 민족주의자들이 아일랜드로의 편입을 요구하는 시위가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다고 하네요.
아일랜드는 한국의 역사와 매우 비슷합니다. 영국의 식민지로 12세기부터 700년간 지배를 받았죠. 농민 운동에서 시작된 치열한 독립운동으로 1921년 12월 독립에 성공합니다.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끝없이 독립 운동을 펼쳤던 한국의 저항 정신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아일랜드인들은 한국을 두고 '아시아의 아일랜드'라 부르더군요. 그만큼 동질감을 느끼는 모양입니다. 한국어와 게일어라는 고유의 언어도 있고요. 더블린 공항에는 게일어가 영어보다 앞서 안내합니다.
역사적인 인연을 안고 신태용호는 아일랜드 대표팀의 훈련장을 전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설도 꽤 좋습니다. 우리로 치면 태릉선수촌처럼 종합 스포츠 타운 내 훈련장이 있는데 아늑한 편이네요. 숙소도 아일랜드 대표팀에 홈에서 경기를 치르면 사용하는 곳이라고 하니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아일랜드 대표팀은 어디에 있을까요. 터키, 프랑스와 친선경기를 위해 집을 비웠다고 합니다. 24일 터키 안탈리아에서 터키와 만난 뒤 29일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와 2연전을 치른답니다.
아일랜드는 러시아월드컵 유럽 최종예선에서 세르비아, 웨일스, 오스트리아, 조지아, 몰도바와 D조에 묶였는데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1위 세르비아와 똑같이 1패를 했지만 1승이 부족했고 승점 2점 차이로 본선 직행과 PO가 갈리는 운명이었습니다.
PO에서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의 팀 동료 크리스티안 에릭센(토트넘 홋스퍼)이 이끄는 덴마크와 만났고 원정에서 0-0으로 비기며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지만 홈에서 1-5로 허망하게 무너졌습니다. 선제골을 넣고도 에릭센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며 무너졌죠.
아일랜드는 항상 월드컵 본선 문턱에서 넘어졌습니다. 축구팬들이라면 기억하는 티에리 앙리의 '신의 손' 사건이 대표적이죠. 2009년 11월 열린 2010 남아공월드컵 PO에서 프랑스와 만나 1차전을 0-1로 패하고 2차전을 1-0으로 앞서 1, 2차전 합계 1-1 동률로 연장전에 들어갔죠.
그런데 연장전에서 나온 윌리엄 갈라스의 결승골 직전 앙리가 명백한 핸드볼 파울을 범했지만, 주심이 외면했고 프랑스가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FAI가 국제축구연맹(FIFA)에 재경기를 요구했지만 수용하지 않았고요. 아일랜드인들은 불같이 들고 일어났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FIFA가 FAI에 500만 유로(당시 환율 기준 63억원)를 지급한 것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었죠.
아일랜드 축구가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은 2002 한일월드컵일겁니다. 당시 각조 2위 중 가장 승점이 높아 본선에 오른 뒤 독일, 카메룬, 사우디아라비아와 E조에 편성, 2위로 16강에 진출합니다.
경기력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죠. 특히 준우승했던 독일에는 종료 직전 로비 킨이 극적인 골을 넣으며 1-1 무승부를 이끈 뒤 권총 세리머니를 펼쳤고 스페인과 16강에서도 역시 후반 45분 페널티킥에 성공하며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습니다. 승부차기에서 2-3으로 패했지만, 쉽게 지는 팀이 아니라는 인상에 '다이하드(Die Hard)', '네버 다이(Never Die)' 등의 별명이 붙었습니다. 지더라도 물고 늘어지고 괴롭힌다는 것을 함축한 겁니다.
아일랜드 이야기를 장황하게 열거한 것은 뻔하지만 깊게 새겼으면 싶은 이야기를 하려는 겁니다. 신태용호가 아일랜드의 '저항 정신'을 이식해서 월드컵을 준비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월드컵 진출 과정과 몇 차례 평가전에서 떨어진 팬들의 실망이 지난해 11월 국내 평가전과 12월 동아시아 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올 1월 터키 안탈리아 전지훈련 평가전을 거치면서 조금은 회복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제대로 된 상대와 악조건을 안고 싸워 봤느냐는 물음에 확실한 대답을 하기 어려운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북아일랜드, 폴란드전은 우리의 위치를 냉정하게 확인하는 무대입니다.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가 잠시 주춤한 사이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16강에 오르고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스위스에 1무1패로 아깝게 밀려 본선에 오르지 못했지만 분명 경쟁력 있는 상대입니다.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 1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바이에른 뮌헨)를 앞세운 폴란드야 말을 할 필요가 없고요.
사실상 현재 선수단 80%가 본선에 그대로 간다고 본다면 지금부터 정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일랜드의 저항 정신과 같은 것이 우리의 '투혼'입니다. "31개국은 우리보다 축구 실력이 나은 국가"라는 신태용 감독의 말처럼 한국은 철저한 도전자입니다.
신 감독도 선수들의 투혼을 기대했습니다. 22일 훈련장에서 만난 신 감독은 "결과는 어떻게 되든, 아무도 알 수 없다.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스스로 알 수 있다. 나 하나가 그라운드에서 쓰러질 정도로 뛰면 세계 1위 독일이 오더라도 쉽게, 만만하게 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 번 해볼 만 하다. 강인한 정신만 살아있으면 팬들이 승패를 떠나서 좋아하고 응원해줄 것으로 본다"며 끈끈한 팀을 강조했습니다.
올해 첫 완전체로 시작하는 만큼 저항 정신이 깃든 땅에서 단단한 자신감 무장과 단합으로 월드컵 준비의 전환점을 마련하기를 기대합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