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오늘 우리는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시위대가 와도 절대로 밀리지 않으며, 동료가 맞아도 구하지 않는다."
"오늘 난 진압 나갔어. 열라 맞는거야. 이유는 나도 몰라. 경찰이 무슨 짓을 하면 그게 큰일 나는 거야. 그래서 오늘 우리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동기놈이 짓밟히고 열라 아파도, 시키는 대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시위대와 맞선 예비 경찰들에게 주어진 명령. 무거운 눈빛으로, 복잡한 마음으로 복창했다. 그리고 시위대에 짓밟히고, 동료가 쓰러져도 명령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섰다. 어제는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그들이, 자신들이 갖고 있는 가치를 내려놓고 상관의 말을 따른다. 경찰 제복 뒤 애환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노희경 작가는 말했다. "촛불집회 나갔을 때 생각했어요. 내 앞에 선 경찰들이 막지도 못하고 참여하지도 못하고 해서 의문스러웠어요. (촛불집회를) 몇 번 가면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차 뒤편에서 찬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 우리 시위대의 눈을 못 쳐다보는 황망한 눈빛을 봤어요. '이들은 자발적으로 나왔나' 질문이 들었죠." 노희경 작가의 시선, 어쩌면 우리 모두 한번쯤은 지켜봤을 경찰의 모습이 드라마에 녹아들었다. '라이브'는 사건을 해결하는 멋들어진 영웅이 아닌,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이고 이웃의 이야기로 시작됐다.
tvN 드라마 '라이브'는 전국에서 제일 바쁜 홍일 지구대에 근무하며 일상의 소소한 가치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밤낮없이 바쁘게 뛰며 사건을 해결하는 지구대 경찰들의 이야기다.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경찰들의 애환과 제복 뒤 숨겨진 인간적인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1,2회 방송에서는 경찰이 되고자 하는 청춘들의 이야기, 지구대에 근무하게 된 주인공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한정오(정유미 분)와 염상수(이광수 분)는 나름의 삶을 치열하게 살았지만, 현실은 팍팍했다. 한정오는 지방대 출신에 여자라는 이유로 번번이 취업에 실패했다. 면접관의 불합리한 질문에도 '모범 답안'을 쏟아냈지만, 무시 당하자 "꼰대 같은 새끼"라며 맞받아치는 당돌함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염상수(이광수 분)는 정직원이 되기 위해 밤을 새고, 가족들의 돈까지 털어 회사 주식까지 사며 회사에 충성하지만 다단계 회사임을 알고 허망해했다. 하나 있는 형은 현실도피성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그런 두 청춘의 눈에 띈 '경찰 공무원'은 스펙 없이 오직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고, 여자도 승진되고, 절대 잘릴 일 없는 안정된 직업이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랬다.
공시생에서 경찰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더 혹독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 공무원만 되면 끝난거 아냐"라는 들뜬 예비 경찰들 앞에, 상관 오양촌(배성우 분)의 독설이 날아들었다. "국민 혈세 날로 빨아먹는 사람은 절대로 경찰이 될 수 없다. 내 후배가 멋진 경찰이길 간절히 희망한다"라며 경찰의 사명감을 주입 시키고, 신입들을 독하게 훈련 시켰다. 온몸에 멍이 들고, 눈물이 쏟아지는 날들, 그렇게 퇴소하는 동기들이 나타났다. 오양촌은 부당하다고 떠나는 그들을 보며 "이 바닥도 나도 좀 부당하지. 잘~ 그만뒀다. 그런데 네가 경찰되면 있어야 할 현장은 더 불합리하다. 그런데 여기 말고 다른 사회는 합리적이라디?"라며 날카롭게 지적했다.
"살아남자"를 버릇처럼 외치던 교육생들은 현장실습으로 시위현장에 투입됐다. 긴장된 표정으로 버스에 오른 상관은 "오늘 우리는 현장에서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라는 구호를 반복해서 외치게 했다.
베테랑 경찰들의 삶도 팍팍하고 불완전한 것은 마찬가지. '강력계 전설'이었던 오양촌은 공권력에 대항하는 정의로운 인물이자 사명감이 투철한 경찰이었다. 경찰청장의 비리를 고발하려던 탓일까. 오양촌은 바다에 빠진 시민을 구하고도 되려 '음주경찰'로 몰렸다. 가장 정의로워야 할 조직에서, 부당한 비리 권력의 희생양이 됐다. 오양촌의 아내 안장미(배종옥 분)는 같은 경찰이었지만, 가족들과 집안 대소사들을 챙기느라 바빴고 결국 이혼을 선언했다.
'라이브'는 한정오와 염상수를 통해 대한민국 청춘들의 팍팍한 현실과 삶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취업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스펙을 쌓지만 부당한 이유로 좌절하고, 청춘의 순수한 열정을 이용하는 못된 어른들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삶의 안정만을 위해 '철밥통' 공무원을 꿈꾸는 현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노희경 작가는 무엇보다 경찰의 애환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지금껏 드라마에서 보아온 경찰 이야기와 달리, 그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총장실을 불법 점거한 대학생들의 시위대를 마주한 예비 경찰들은 "난 이거 아니라고 본다"라면서도 눈을 질끈 감고 그들을 끌어낼 수 밖에 없었다. 성범죄자를 붙잡고도 "피해자 아버지에게 욕 먹었다. 애도 죽었는데 범인 잡으면 뭐하냐고 하더라"라며 자조적인 대화를 나눴다. 부푼 꿈으로 발령 받은 지구대에서는 취객의 토사물을 손으로 치우는 일도 다반사였다.
경찰 이야기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라이브'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소재로, 2018년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촛불시위를, 이화여대 총장실 점거 사태를 쉽게 떠올릴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사회의 부조리와 만연한 비리, 제도권 공권력 남용 등 우리사회의 치부를 엿볼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리얼한 캐릭터들은 드라마에 생동감을 부여했다. 주인공들 뿐만 아니라 짧게 등장한 캐릭터까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남자가 여자보다 부려먹기 편하잖아"라면서도 남성 우월주의를 은근히 드러내놓는 인물부터 "20시간씩 일하기 지친다. 내가 떠나는 게 아니라 이 나라가 나를 떠나는 것 같아"라며 한국을 떠나는 인물까지, 곳곳에 현실감 넘치는 인물들과 대사들이 배치됐다. 공무원 아들의 차를 타고 자랑스럽게 퇴근하는 동료 직원을 바라보고는, 버스정류장에 말없이 앉는 엄마의 모습은 또 얼마나 먹먹하던지. 노희경 작가 특유의 삶에 대한 통찰력, 인간에 대한 애정들이 작품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끝까지 악랄하게 버텨준다"며 현실에 굴하지 않는 독종 정유미와 '보통사람' 이광수가 경찰로 성장하는 과정이, 뼛속까지 경찰인 배성우와 여경 배종옥이 보여줄 경찰의 소신과 가치가 어떠한 모습일지, 또 노희경 작가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어떻게 투영할지 궁금해졌다. '라이브', '살아있는' 드라마가 나타났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