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멜로퀸' 손예진은 건재했다. 데뷔 당시인 20대 초반 청순한 외모, 이미지를 한껏 살린 캐릭터들로 톱스타 반열에 올랐던 그는 이후 점점 농익어가는 연기력을 펼치며 충무로의 대체불가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어느덧 데뷔한지 17년이 지난 그는 세월이 안긴 노련한 연기력을 특기인 멜로 연기에 자유자재로 녹여낸다. 감정의 깊이는 깊어지고, 온도는 높아졌다. 오랜 경력을 가진 배우가 꾸준한 도전과 성장을 거듭해야 한다면, 손예진은 그 모범적 사례임이 분명하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감독 이장훈, 제작 (주)무비락)는 그런 손예진의 모습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1년 후 비가 오는 날 다시 돌아오겠다는 믿기 힘든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아내 수아(손예진 분)가 기억을 잃은 채 남편 우진(소지섭 분)과 아들 앞에 다시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일본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2001년 MBC 드라마 '맛있는 청혼'을 통해 안방에 눈도장을 찍었던 손예진은 데뷔 직후 청순한 이미지의 미모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20대를 대표하는 여성 배우로 활약했다. 쉴틈없이 연기 활동을 이어갔고, 특히 멜로 장르에서 보여준 연기력이 극찬을 이끌어냈다.
영화 '연애소설'(2002), '클래식'(2003)', 내 머리속의 지우개'(2004)는 아직도 멜로 영화 팬들 사이에서 명작으로 언급되는 작품들이다. 이에 더해 KBS 2TV 드라마 '여름향기'(2003)와 SBS 드라마 '연애시대'(2006)를 통해 브라운관에서도 흔들림 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물론 멜로는 손예진의 특기일 뿐, 그의 연기 스펙트럼을 제한하는 장르는 아니었다. 특히 비교적 최근 선보인 영화 '비밀은 없다'(2015)와 '덕혜옹주'(2016)에선 새로운 얼굴을 꺼내보이기도 했다. 손예진에게서 미처 기대하지 못한 표정들이 이 영화들을 통해 발굴됐고, 호평도 잇따랐다. '멜로퀸'이라는 수식어는 손예진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수식어였지만, 손예진은 분명 그 이상의 재능과 매력을 지닌 배우다.
새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손예진이 '가장 잘 하는' 멜로라는 장르에 그간 더욱 성장한 연기력이 더해진 작품이다. 극 중 손예진은 우진과의 아련한 기억을 품고 극적으로 재회에 성공하는 20대 대학생 수아의 모습부터 남편 우진, 아들 지호와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현재의 모습까지 다채로운 얼굴을 그려냈다.
과거 손예진이 그려낸 멜로가 주로 남성 주인공들과 나눈 깊은 감정들을 바탕으로 했다면, 이번 영화에선 남편 우진 역 소지섭, 아들 지호 역 아역 배우 김지환과 고른 연기 호흡을 나눴다.
수아가 극의 중반과 후반에 보여주는 서로 다른 분위기는 인물들이 품는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고도 성실하게 따라간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 과거의 시간들을 뒤늦게 알게 된 전후 수아의 심리 차이는 손예진의 탄탄한 연기력에 힘을 받아 완성된다.
기억을 잃은 수아가 아들을 마치 친구처럼 대하며 함께 게임을 즐기는 모습,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된 뒤 아들 지호를 향해 애끊는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은 영화의 전개와 함께 서서히 대조를 이루며 따뜻한 감흥을 안긴다. 다케우치 유코가 연기한 일본의 원작 영화 속 인물과는 꽤 다르면서도, 그 변화가 억지스럽거나 어색하지 않다.
지난 9일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손예진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수아 역을 준비했던 과정을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너무 다듬어지고 계산된 표정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며 "여백이 많은 이야기라 생각했고 '관객이 이 때 웃게, 이 때는 울게 할 거야'라는 계산을 하지 않았다. '너무 연기처럼 보이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랜 경험과 노력이 빚어낸 여유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최근 충무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멜로 장르'를 기다린 관객들에게, '손예진의 영화'를 기다린 팬들에게, 그리고 누구보다 '손예진의 멜로'를 기다린 이들에게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가슴뛰는 선물이 될 법하다. 영화는 오는 1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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