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 기자] "평창 올림픽만 바라봤습니다."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국가대표 김(金)보름(25, 강원도청)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의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다. 평창 대회에서 매스스타트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김보름에게는 적격이었다.
김보름은 대구 문성초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스케이팅과 인연을 맺었다. 쇼트트랙으로 시작했지만, 고교 졸업까지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쇼트트랙 강국 한국에서 특별한 기술이 없다면 성적이 내기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김보름의 전환점은 2010년 밴쿠버올림픽이었다. 당시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해 남자 1만m에서 금메달을 딴 이승훈을 보면서 도전 의식이 폭발했다. 이승훈의 레이스 영상을 자주 확인하며 실력 향상에 주력했다.
2010년 스피드스케이팅으로 바꿔 나선 김보름은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여자 3000m에서 은메달을 따며 존재감을 알렸다. 이후 매스스타트에서 재능을 보였고 특화된 훈련을 했다. 매스스타트는 쇼트트랙처럼 여러 선수가 출전해 4, 8, 12바퀴를 돌 때 1~3위는 각각 5, 3, 1점을 받는다. 점수가 필요한 바퀴에서 폭발적인 스피드가 중요하다.
지난해 2월 강원도 강릉 오벌(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6~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당연히 시즌 랭킹도 1위였다. 김보름이 대한 기대감은 이상무였다. "'금(金)보름'이 되겠다"는 다짐을 할 정도로 집착을 보였다.
긴장하게 만든 상황도 있었다. 같은 달 열린 일본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에 머물렀다. 바퀴 수에 따라 점수가 주어지는 매스스타트의 특성을 고려하는 등 복합적인 요소가 많다. 그만큼 요령을 피워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위기도 찾아왔다. 1차 월드컵에서 허리 부상을 당했다. 2차 월드컵을 거르고 나선 3차 월드컵은 11위에 그쳤다. 하지만, 4차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얻으며 올림픽 출전권을 얻었다. 허리 통증을 안고서 승부수를 던진 결과였다. 직선 주로에서 스퍼트를 위해 500m를 전력 질주하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는 김보름을 알리기에 적격이었다. 정월 대보름에 태어나 '보름'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꽉 찬 보름달처럼 평창에서 자신의 올림픽 소원 중 하나인 금메달을 품에 안겠다는 목표도 있었다. "금보름이 되겠다"는 재치 있는 출사표로 분명한 마음을 전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집에도 가지 않고 훈련에만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지난 19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평창 올림픽 여자 팀 추월 마지막 바퀴에서 노선영을 멀리 두고 박지우와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레이스 과정이 비정상적인데 방송 인터뷰에서 책임을 노선영에게 전가하는 것처럼 말을 하면서 더욱 분노를 키웠다.
김보름은 20일 사과 기자회견에 나섰지만, 해명이 부족했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노선영이 입을 다물면서 모든 화살은 김보름이 맞았다. 일부에서는 청와대 청원을 통해 김보름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매스스타트에 집중하기 위한 환경은 좋지 않았다.
출전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던 김보름은 심리 상담을 받는 등 스스로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국민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떤 결과를 내더라도 당장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을 김보름도 알고 있었다.
김보름은 준결선에서 영리한 레이스로 힘을 들이지 않고 결선에 올랐다. 결선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기 위한 전략이었다. 정신력으로 극복하며 레이스를 운영했고 마지막 바퀴에서 있는 힘을 다해 스퍼트, 2위로 40점을 얻으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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