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K리그 클래식 3위와 FA컵 결승에 오르며 순항하고 있는 울산 현대의 힘은 로테이션에 있다. 대부분 포지션에 특정 자원이 빠져도 대체자가 충분히 역할을 해내고 있다.
27일 FA컵 4강전이 좋은 예다. 이날 실업축구 내셔널리그 목포시청을 상대로 고전하다 후반 교체로 나선 김인성이 결승골을 터뜨리며 1-0으로 승리, 결승에 진출했다.
김도훈 감독은 "선수들이 현재의 팀 분위기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서로가 출전 욕심을 줄이면서 해내려 한다. 감독 입장에서도 출전 명단을 짜는 것이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가능성 있는 어린 선수들을 투입하는 것도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김 감독의 깊은 고민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구단 입장에서도 현 상황에서 우승만 한다면 그야말로 감사한 일이다. 울산의 FA컵 우승은 없다. K리그 우승도 2005년이 마지막이다. 2013년 홈에서 라이벌 포항 스틸러스에 승점 2점 차이로 앞선 1위를 달리고도 종료 직전에 골을 허용하며 순위가 뒤집혔던 아픔이 생생하다. 일단 무엇이든 해놓고 볼 일이다.
성인팀이 우승을 위해 도전 중이라면 유스팀은 최강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18세 이하(U-18) 팀 울산 현대고는 지난 8월 크로아티아에서 놀라운 성적을 냈다.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디나모 자그레브, HNK 리예카 (이상 크로아티아), 페예노르트(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비엔나(오스트리아), 페렌츠바로시(헝가리),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독일) 유스팀이 참가한 믈라덴 라믈랴크 인터내셔널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현대고는 페예노르트를 2-0, 프랑크푸르트를 3-1로 꺾으며 일찌감치 1위를 확정했다. HNK리예카전은 골키퍼를 측면 수비수로 내세우는 등 잇몸 작전을 펼쳐 1-2로 졌다. 그래도 결승전에서 자그레브를 4-0으로 완파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 우승은 크로아티아 현지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당시 자그레브에는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 유벤투스(이탈리아)의 관심을 받고 있던 공격수가 있었는데 측면 수비수로 나선 김재성(현 U-18 축구대표팀)이 완벽하게 봉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지에 16명만 가서 1명이 다치는 바람에 15명이 나흘 동안 4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을 견뎠다. 그래서 더 값진 우승이었다.
대회 참가를 계기로 울산은 유스팀 운영 목적에 대해 숙고 중이다. 그동안의 유스는 선수 육성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이는 울산 외의 다른 K리그 팀도 마찬가지였다. 성장시킨 선수 중 프로에서 활용 가능한 자원은 바로 프로팀으로 올리고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선수들은 대학에 진학시켜 추후 자유계약 선수로 선발해왔다.
그런데 이 대회 참가를 통해 육성과 활용은 기본, 해외 진출에 대한 시선을 조금 열어뒀다. 크로아티아 팀들은 물론 당시 관전 왔던 다수 팀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받았기 때문, 아직은 미확정이지만 페예노르트를 비롯해 일부 스카우트는 10월 충북 충주시 일원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을 찾아 현대고의 경기를 관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부평고와 첫 판에서 만나는데 이기면 개성고(부산 아이파크)-포항제철고(포항 스틸러스)와 8강에서 격돌한다. 4강까지 간다면 광양제철고(전남 드래곤즈) 또는 매탄고(수원 삼성)와 겨룬다. 충분히 관전 가능한 대진이다.
대회를 관전하던 일부 구단 스카우트들은 고교 3학년과 2학년생 일부로 구성된 현대고를 두고 프로 선수가 몇 명 있는지에 대해 문의했다고 한다. 한 명도 없다고 하자 이유를 물었고 관련 법으로 인해 '프로 계약'이 어렵다고 하자 놀랐다고 한다. 기량은 충분한데 고교에 계속 머물러서 경쟁력을 따져야 하는 상황 자체가 이상하다는 시선이다.
부상으로 이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던 선수 A의 경우 경기에 나섰다면 한 유럽 중소리그 구단에 임대를 가는 계획이 있었다. 대회 자체가 훌륭한 '쇼케이스'가 되는 것이다. 10대 선수들의 프로 데뷔가 어색하지 않은 유럽이니 한국 선수들도 충분히 도전의 문이 열려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현재 한국의 경우 미성년자 신분 선수는 프로 계약이 불가능하다.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고용노동부 등 관련 단체들이 머리를 맞대야 하지만 쉽게 풀기 어렵다. 준프로 계약을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찌감치 해외로 축구 유학을 떠나는 등 복잡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번 여름 독일 분데스리가 최강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하게 된 인천 유나이티드 U-18팀 대건고 출신 정우영이 비슷한 사례다. 구단의 허락을 받고 테스트를 받으러 가서 뮌헨의 눈을 사로잡았다. 구단과 선수, 학부모 사이에 이견이 생기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서로 도움이 되기 위해 임대 후 이적 등 복잡한 계약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어쨌든 두꺼운 선수층으로 인해 가능성 있는 선수가 사장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 울산의 생각이다. 김현희 사무국장은 "좋은 선수를 지명하고 썩히기 어려우니 다양한 창구를 만드는 것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대회에 참가해서 좋은 결과를 내고 선수들에 대한 호평도 있으니 정기적인 해외 대회 참가 검토를 하고 있다. 울산의 팀 분위기와 이미지를 올리는 차원에서도 참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일 년 기준 K리그 유스팀 리그인 주니어를 참가해야 하고 대한축구협회의 주말 리그도 소화해야 한다. 왕중왕전 등 정기적인 대회까지 있다. 해외 단일 대회 참가는 겨울, 여름 방학 기간을 활용해야 한다. 최대 2차례가 가능한 셈이다.
유럽에서 열리는 대회 참가가 더 매력적인 것은 직접 가서 실력에 물음표를 가진 이들에게 보여주며 편견을 깨는 데 있다. 믈라덴 토너먼트 측은 대회가 끝난 뒤 일찌감치 내년 대회에 나서달라고 프러포즈를 했다. 울산은 참가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항공료만 4천만원을 넘게 들여갔는데 현실적으로 1년 유스팀 운영 비용에서 상당한 지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향후 더 큰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지출이다. 일례로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미드필더 루카 모드리치(레알 마드리드)는 자신을 육성했던 자그레브에 400억원의 거액을 안겼다. 지금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를 뛰면 관련 기여금이 계속 자그레브에 들어온다. 이 역시 대회 참가가 결정적이었고 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를 거쳐 레알까지 입성하는 사례를 만들었다. 당장 거액을 얻기는 어렵지만, 선수단의 효율적 활용과 미래까지 고려하면 매력적인 참가다.
크로아티아 외에도 다른 국가에서도 좋은 팀들이 모여 대회를 치른다. 아시아에서도 유럽 팀들을 초대하고 있다. 특히 카타르가 자국 유스 강화를 위해 설립한 아스파이어 아카데미를 통해 정기적인 대회를 열고 거액을 들여 유럽, 남미, 아시아 유스팀을 초청하고 있다.
그래도 유럽 대회가 나은 것이 사실이다. 울산 관계자는 "만약 대회를 나간다면 유럽 대회에 가려고 한다. 선수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재능있는 선수를 살리면서 미래를 생각하는 울산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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