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영화 '동주'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배우 최희서의 얼굴은 쉽게 잊히지 않았을 법히다. 윤동주와 문학적 교감을 나누는 일본인 여성 쿠미 역으로 분했던 최희서는 원어민 못지 않은 일본어 실력과 정돈된 연기, 신선한 마스크로 관객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동주'를 통해 그를 기억할 관객들에게, '박열'(감독 이준익, 제작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은 또 한 편의 반가운 작품이다. 1923년 도쿄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6천 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이제훈 분)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최희서 분)의 실화를 그린다. '동주' 속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최희서는 새 영화 '박열'에서 타이틀롤 박열과 비등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인물 후미코를 연기했다. 일본인 여성인 후미코는 단지 조선의 독립열사들을 돕는 조력자가 아닌, 그 자신의 신념을 삶을 통해 실천한 아나키스트다. 일본제국주의와 천황제에 반대하며 항일운동을 하는 여성으로, 박열과 신념의 동지인 동시에 연인으로 관계를 맺는 주인공이다.
이준익 감독과는 '동주'에 이어 두 번째로 함께 영화 작업을 했다. 지하철에서 연기 연습을 하는 모습으로 '동주'의 제작자이자 각본가인 신연식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에 캐스팅됐던 최희서는 '동주'를 연출했던 이준익 감독과 새 영화로 재회하며 특별한 인연을 이어갔다. '동주'가 발굴한 실력파 배우가 '동주'의 인연으로 또 한 번 충무로의 뜨거운 주목을 받게 됐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조이뉴스24와 만난 최희서는 "이준익 감독과 두번째 작품이라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현장에서도 행복했다"며 "24회차로 끝났는데 '50회차 정도는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따뜻했던 촬영 현장을 돌이켰다.
"연기에는 부담감이 많았지만 현장 자체가 행복했어요. 하나의 영화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퍼즐을 맞추듯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것이 짜릿하고 좋았죠. 힘든 면도 있었어요. 하지만 분량이 많거나 촬영이 빨리 진행돼서는 아니었어요. '내가 과연 잘 한 걸까?'라는 의문 때문이었죠. 불안한 순간도 있었지만, 너무 좋은 현장이었어요."
최희서가 그려낸 후미코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지닌 인물이지만 의연하고 유쾌한 성정을 지닌 캐릭터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이기도 한 그는 아나키즘이라는 신념, 모든 권력을 향한 저항을 실천한 운동가이자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다.
"후미코가 불행을 그저 불행으로만 안고 살았다면 아마 그런 에너지도 없었을 것 같아요. 불행했던 유년기를 본인의 힘으로 살아낸 인물이죠. 후미코가 '우울한 검은 빛'이라 표현한 것처럼, 그는 아주 어릴 때 받은 상처들로 똘똘 뭉쳐있는 안타까운 여자 아이였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오로지 본인 힘으로 '공부를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탐구하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 거죠. 그 지점이 특히 멋있게 다가왔어요.
캐릭터의 다양한 모습을 연기하면서 너무 좋았어요. 더 입체적으로, '어딘가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죠."
이제훈과는 '박열'로 처음 연기 호흡을 나눴다. 주연 경험이 많은 이제훈과 함께 연기를 하며 밸런스를 맞출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는 그는 "누가 되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박열'에 임했다. "할 수 있다"며 스스로에게 건 주문, 그리고 최희서를 주연으로 파격 발탁한 이준익 감독의 든든한 격려는 그가 후미코를 완성할 수 있게 한 자양분이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주문을 계속 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너 말고 후미코를 연기할 사람이 없다'며 먼저 이야기해 주셨으니 제 자신을 의심하게 될 때에도 '아니야. 나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거야'라고 생각하려 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자신감이 떨어지니까요. 스스로를 달래가며 용기를 냈던 것 같아요."
도전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는 최희서의 성격도 '박열' 작업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큰 도전, 어려운 역할을 맡으면 신이 난다"며 "'어떻게 하지'라며 움츠러들기보다 '진짜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승부욕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누군가를 이기겠다는 승부욕이 아니라,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 사람들에게 내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는 것을 즐기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연극을 할 때부터 그런 면이 있어서, 연극 무대에서도 조용하거나 소극적인 역할보단 전사가 많고, 관계가 복잡하고, 큰 장애물이 있는, 그런 어려운 역을 늘 하고 싶어했죠."
'동주'와 '박열'에서 보여줬듯 최희서는 일본에 거주한 경험 덕에 매끄러운 일본어 실력을 자랑한다. 미국에서 지낸 시기도 있어 영어를 무리 없이 구사하는 것은 물론, 취미로 이탈리아어도 공부했다. 글 쓰는 것,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던 최희서는 다양한 장기를 숨긴 차세대 배우로 성장하고 있다. '박열'에서 보여준 후미코 역처럼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를 다시 연기하고 싶다는 그는 "그런 시나리오가 정말 없다면 내가 직접 쓰고 싶다"며 눈을 반짝이기도 했다.
"앞으로 다시 이런 역을 맡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저도 해요. 요즘 우리나라 영화에서 여자 캐릭터는 대부분 적극적이지 않고 그저 수동적인 캐릭터에 국한돼 있잖아요. 또 이런 배역을 만나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웃음) 만약 정 없다면 제가 직접 그런 시나리오를 써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글 쓰는 걸 좋아해 가끔 시나리오를 썼거든요. 우리나라에 다재다능한 여배우들이 정말 많잖아요. 다들 그런 작품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요."
'박열'은 오는 28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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