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늬 "장녹수 생각하면 눈물, 인생작 만났죠"(인터뷰①)

[조이뉴스24 이미영기자] "지금도 장녹수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깊은 감정선을 토해낼 수 있는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배우에게 축복입니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수없이 복제됐던 장녹수다. '역적' 이하늬표 장녹수는 또 달랐다. 국악을 전공했던 이하늬는 가장 소중한 패를 '역적'에서 꺼내들었고, 품격이 다른 장녹수를 만들어냈다. 이하늬는 장녹수를 인생 캐릭터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MBC 드라마 '역적'에서 장녹수로 열연을 펼친 배우 이하늬를 드라마 종영 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드라마가 끝난지 2주가 다 됐지만 여운 가득한 표정이다. 이하늬는 "아직 실감이 안 난다. 다들 너무 보고 싶다. 너무 힘들어서 '뒤도 안 돌아봐야지' 했는데 아쉽고 보고싶다"고 애정 가득한 소감을 전했다.

이하늬는 조선시대 기생 중 유일하게 후궁이 된 여인, 장녹수의 역할을 맡았다. 기구한 운명으로 기생이 됐고, 양반들의 괄시에도 기세를 꺾지 않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예인이다. 홍길동(윤균상 분)을 향한 여인의 연정, 야망을 위해 잔인해진 여인, 그리고 결국에는 연산의 고독과 광기를 이해하는 애달픔까지, 폭넓은 감정을 연기했다.

이하늬는 '역대급 장녹수'라는 평가에 "절대 그렇지 않다"고 겸손을 보이면서도 " 정말 신명나는 연기를 했다"고 말했다.

"홍길동에게 '네가 예인이라고 불러준 순간, 나는 예인이 되었다'는 대사를 보며 어떻게 이렇게 멋있는 대사를 써줄 수 있지 황송했어요.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정말 정신 차려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예요. 현장에서도 녹수가 길동의 손을 가만히 잡아서 담담하게 내려놓고 싶었는데, 감독님이 제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손을 카메라로 잡아주는 거예요. 정말 할 맛 나는 현장이었죠. 제가 아닌 다른 누가 들어왔어도 잘 했을 것 같아요. 이하늬가 가지고 있는 배우의 색깔에 따라 장녹수의 색깔이 나온 것 같아요. 호평도, 혹평도 연연해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순수 열정, 잘해내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역대급 장녹수' 평가에는 이하늬가 보여준 품격있는 예인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다. 이하늬는 전공인 국악과 전통무용을 십분 활용해 명장면을 만들어냈고, 승무 장면 등은 두고 두고 회자되기도 했다. 그는 출연을 확정 지은 후부터 창과 전통무용 수업을 다시 받았고, 제작진에 직접 아이디어를 내며 다양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승무신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드라마의 특성상 매번 준비할 수는 없어요. 수개월 전부터 준비했던 것을 보여줄 수 밖에 없기에, 녹수에게 맞는 신들을 부각 시킬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했고 적재적소에 잘 들어간 것 같아요. 사실 장구춤도 이미 4-5개월 전부터 들었던 이야기라 준비를 할 수 있었어요.정말 새롭게 한 것도 많고,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정적으로 연산이 녹수에게 반하는 장면이 춤 때문이었잖아요. 남자가 여자에게 반하는 것보다 예인인 녹수에게 반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었고, 작가님도 '이하늬 씨가 잘하는 것을 하세요'라고 믿어 주셨어요. 승무는 절제 됐지만 카타르시스가 있는 춤인데,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기 너무 어렵지 않을까 생각도 했죠. 발을 맞물리는 디딤새에 한국의 곡선이 내포되어 있다고들 하는데 감독님에서 첫 발컷을 따주셔서 '소오름'이 돋았죠. '아 하면 아'하는 현장이라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면 하나 하나에 기울인 열정과 노력이 스쳐지나갔다. 비단 춤과 노래 장면 뿐만이 아니다. 장녹수의 감정에도 오롯이 충실했다. 특히 장녹수가 죽음 직전 구슬픈 흥타령을 부르고, '백성들의 돌을 맞고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고.

"장녹수를 보면 먹먹해요. 공화였을 때부터 돌을 맞아죽을 때까지의 여정을 함께 했는데 지금도 녹수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조선시대 관기로 태어나 성적인 폭행부터 시작해서 아파도 아프다고 할 수 없는 일들을 겪잖아요. 지금 시대도 그런 일이 없다고 할 수 없는데, 그 시절에는 오죽 했을까요. 한 여자로서, 내가 조선시대 공하로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삶을 선택할까 생각해봤던 것 같아요."

홍길동과 민초들의 이야기는 '촛불집회'가 보여준 희망, 어지러운 정국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배우 이하늬의 책임감이 깃들었다. 여러모로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었어요. 이름 없는 배우가 엔딩을 맡은 적이 있는데., 그걸 막상 엔딩으로 보는데 감격스러웠어요. '역적' 자체가 그런 작품이예요. 5.18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있고, '역적'이 공교롭게도 5월19일에 끝났죠. 촛불시위가 열리고 새로운 역사가 쓰여질 때 우리는 이 드라마를 찍고 있었어요. 격변하는 이 시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뭘까, 모두의 책임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역적'은 창조적인 작품으로, 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드라마였죠. 그런 시국을 지났던 시기에 방영이 되서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하늬는 '인생 캐릭터' '인생작'을 묻는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정말 오랫동안 아꼈었던, 잘해내고 싶었던 캐릭터예요. 인간 이하늬가 갖고 있었던 재능 아닌 재능을 잘 녹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고. 인간으로서 고뇌할 수 있는 지점도 있었어요. 예컨대 돌 맞아 죽는 그런 '센' 감정들, 발바닥에 있는 모든 것과 감정선을 토해낼 수 있는 작품이 얼마나 될까요."

이하늬는 그렇게 한참 동안 '역적'과 장녹수에 대해 깊이있게 설명했다. 자신의 작품과 배역을 이렇게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 이하늬와 인생 캐릭터 '장녹수'는 필연적인 만남이었던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