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동현기자] SK 와이번스의 트레이 힐만 감독은 지난 2002년 11월부터 5년간 일본 프로야구(NPB)의 강호 니혼햄 파이터즈의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니혼햄 파이터즈는 현재의 연고지인 홋카이도 삿포로가 아닌, 도쿄돔을 연고지로 사용하고 있었다. 센트럴리그 소속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라는 전국구 팀과 같은 지역을 사용한 탓에 약소 팀의 이미지가 강했던 시절이다.
지금처럼 오타니 쇼헤이와 같은 슈퍼스타도 없었고 전국적인 인기 투표에서도 지바 롯데 마린스와 더불어 꼴찌를 다툴 정도로 인기없는 구단이었다. 미국 출신의 유능한 감독이 그런 약팀의 지휘봉을 잡은 것은 당시 일대 사건으로 회자됐다.
그러나 성적은 내지 못했다. 취임 1년차였던 2003시즌은 퍼시픽리그 5위의 성적으로 부진했던 그다. 타격을 중심으로 한 야구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투수진의 부진이 이어지며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그는 미국식 타격 야구를 버리고, 일본의 디테일한 야구를 스스로 접목시켰다. 타격에서 세밀한 플레이를 주문하게 된 것이다. 적극적으로 번트를 대게 하고 허를 찌르는 작전을 이때부터 구사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힐만식 야구'를 펼치며 매년 성장을 거듭했다.
결국 집권 4년차에 접어들던 2006년, 타격에 이어 다르빗슈 유(텍사스 레인저스)를 필두로 다케다 히사시, 마이클 나카무라 등 투수진의 호조까지 이끌어내면서 팀에 25년만의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이 시즌, 니혼햄은 주니치 드래곤즈와 재팬시리즈까지 4승 1패로 제압하며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2007년에도 리그 1위·재팬시리즈 준우승을 이끄는 그는 이듬해 미국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적을 옮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오늘날 SK의 지휘봉을 잡기에 이르렀다.
그가 미국에서 하던 '빅볼' 방식을 계속 해서 고수했다면 일본에서의 성공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당시 접목한 '스몰볼'을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다. 지난 주말, 두산과 3연전에서 대담한 스퀴즈번트로 모두를 놀라게 했던 그다.
그가 존중하는 것은 야구 스타일뿐만이 아니다. 자신에게 놓인 환경을 존중하는 자세는 그의 강점이다.
힐만 감독은 니혼햄 취임 2년차인 지난 2003년 일본 유력일간지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외국인 감독인 자신을 기용한 프런트에게 감사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힐만 감독은 "일본이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계속적으로 우승 경쟁을 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데 있어 자신을 굉장히 잘 이해해줬고 협력해줬다"고 감사의 이유를 설명했다.
1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25일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그의 태도는 그때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성숙된 모습이었다.
힐만 감독은 "프런트와 코치진의 존재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프런트와도 불협화음없이 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코치진은 선수들의 좋은 컨디션을 잘 유지해주고 있다. 칭찬해 마땅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염경엽 단장에 대한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불과 지난 시즌까지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이었던 만큼 힐만 감독의 심정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할 터. 힐만 감독은 "단장님이 감독이었을 당시 상대했던 SK에 대한 정보, 그리고 다른 팀의 정보를 많이 줬다"면서 "야구인 출신의 단장에게 좋은 정보를 받고 있다"고 웃었다.
힐만은 커리어 내내 도전을 이어왔다. 그 도전 안에서 선수, 프런트, 코치진 등 자신의 팀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물론 나라의 문화까지 '리스펙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존중이 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의 존중하는 자세가 한국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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