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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그림자와 칼 <3>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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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소설을 연재합니다. 작가의 단편소설을 매일 오전 업로드합니다. 독자님들께서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단편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처음 소개하는 작품은 정찬주 작가의 '그림자와 칼'입니다. 소설은 어느 날 사람들의 그림자가 사라진다는 충격적인 상상으로부터 시작됩니다.[편집자]

"이 부근에 아카시아 숲이 있군요." 남무는 아카시아 꽃향기에 구원받은 듯 좀 들뜬 소리로 말했다.

"글쎄요."

"제 집 부근은 온통 아카시아 향기투성이죠. 제 빈방에도 언제나 향기가 가득가득 괴어 있어요. 어찌나 지독한지 한동안 방문을 열어놓은 다음에야 들어가곤 하죠."

그녀는 남무 애기에 흥미를 못 느끼는 얼굴을 했다. 남무의 빗나가는 말들이 한심스러운지 벤치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팽팽한 그녀의 하체가 꿈틀 부풀었다. 앉자마자 그녀는 남무를 향해 '용건을 어서 말해보세요'라는 시선을 던졌다. 남무는 이제 더 이상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경계를 표시하듯 벤치 가운데 놓았던 핸드백을 드는 순간, 남무는 자신으로부터 이상스런 대담성을 발견했다.

"되도록이면 말이죠, 되도록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남무는 그림자가 사라진 날들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처음 전 가벼운 몸살쯤으로 여겼죠."

도회지는 온통 어디를 가나 독감 환자뿐이었다. 바다 건너 먼 나라로부터 유행성 독감이 들어온 것이었다. 증세는 온몸이 나른했고 악몽에 시달리듯 식은땀을 흘렸다. 좀 심한 사람은 매를 맞은 뒤처럼 뼈마디가 욱신욱신 쑤셨다. 남무가 근무하는 회사 지정병원 의사가 남무에게 물었다.

"정확히 말해보세요. 언제부터 그랬지요?"

"그림자가 사라진 날부터요."

"독감하고 그림자하고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지, 거참, 이상하군요."

"이번엔 좀 약한 약을 주세요. 한동안 머릿속이 얼얼해 아무 생각도 못 하게 되거든요."

경험이 부족한 젊은 의사는 자신의 이마를 짚기도 하였다.

"이젠 제 머리가 무거워지는군요."

할 수 없이 남무는 진료 시간을 무료하게 기다려야 되는 종합병원으로 바꾸어 찾아갔다. 남무가 찾아간 종합병원의 의사들은 그 개인병원 의사들보다 대부분 더 큰 목소리를 냈다.

"기운을 내야지요. 너무 지쳐 있어요. 그림자를 무시해 버리세요. 그것쯤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오기를 기르세요."

"전, 이대로 무너지긴 싫습니다. 이대로 무너지기엔 너무나 억울합니다. 새삼스러운 얘깁니다만 새벽이 돼도 남근마저 발기하지 않아요."

"마음이 또 약해지고 있어요. 창밖의 저 사람들을 보시오. 예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잖습니까? 물론 아직도 약간은 불안해하고 있지요. 하지만 그 정도의 불안은 정신위생에 이로운 것이죠. 더 큰 두려움에 대한 면역이 되어주니까요."

환자가 된 남무는 가끔 창밖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다. 남무의 눈에는 사람들이 어딘지 지쳐 보였고, 더러는 허망한 모습으로 비쳤다. 겉으로 드러난 활기에도 아랑곳없이 그런 구석을 감추지 못했다.

"부끄럽습니다. 저를 믿었던 친구들에게 부끄럽습니다. 전 강해지고 싶습니다. 이런 식으로 도태되고 싶진 않습니다."

"도태라니요? 당신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선질(善質)의 사람이지요. 무작정 순수할 뿐이지요. 무방비 상태의 정직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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