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이보다 더 신랄할 수 없다. 영화 '터널' 속 이야기는 재난 상황을 맞이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날카로운 풍자에 더해 리듬감과 속도감을 두루 장착한 김성훈 감독의 연출, 하모니를 이루는 데 성공한 배우들의 역량은 영화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 끌어올렸다.
3일 서울 강남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영화 '터널'(감독 김성훈, 제작 어나더썬데이, 하이스토리, 비에이 엔터테인먼트)의 언론 배급 시사가 진행됐다.
하정우는 터널에 갇힌 평범한 가장 정수 역을 맡았다. 배두나는 터널 밖에서 남편 정수가 돌아올 것이라 희망을 놓지 않는 아내 세현 역을, 오달수는 하도터널 붕괴사고대책반의 구조 대장 대경 역을 맡았다.
영화는 집으로 가는 길 갑자기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된 남자 정수(하정우 분)와 그의 구조를 둘러싸고 변해가는 터널 밖의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다. 영화의 줄거리에는 재난에 속수무책인 정부 관료들의 무능함과 사건을 대하는 언론의 무책임한 태도, 한 인간의 생명을 남은 터널 공사의 중대함과 대치시키는 자본의 반인본적 태도까지 녹아있다.
딸의 생일 케이크를 사 들고 집에 가는 길, 운전 중에도 영업 업무를 놓지 못하던 정수는 갑자기 무너진 터널 안에 갇히게 된다. 추락하는 콘크리트 조각과 돌덩이 사이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정수는 대경과의 통화를 통해 곧 구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얻고, 부서진 차 안에서 나름의 생존 환경을 꾸리게 된다. 직전에 들렀던 주유소에서 노인의 실수로 기름을 가득 채우고 생수까지 받아뒀던 것도 극적인 행운으로 작용한다.
트렁크 안의 축구동호회 유니폼을 입어 체온을 유지하고, 작은 생수 두 병을 일주일 간 마시기 위해 눈금을 표기해두는 정수는 배터리 전력을 아끼기 위해 하루 단 한 번 외부와 통화를 하며 불안을 이겨나간다. 하지만 외부 상황을 복합하게 만드는 여러 문제로 인해, 약속된 시일에도 구조의 손길은 정수에게 닿지 못한다.
'터널'은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터널 안 정수의 모습과 서로 다른 주체 간 힘들의 충돌이 벌어지는 터널 밖 상황을 대조적으로 비춘다. 전작 영화 '끝까지 간다'의 추격 서사를 통해 숨 막히는 박진감을 그려냈던 김성훈 감독이 이번엔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두 공간의 온도차와 서사의 리듬감까지 잡아내며 역량을 재입증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웃다, 울다, 기어코 분노하게 되는 일은 관객의 몫이다.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지만, 영화 '터널'에는 공교롭게도 또렷한 기시감이 묻어난다. 많은 관객들은 이 영화를 관람하며 지난 2014년의 세월호 참사 당시를 떠올릴 것이다. 퍼포먼스에 급급한 정부와 이들의 무능함이 읽히는 대목에서 특히 그럴 법하다.
영화에서 언급되는 이슈에 대한 피로도, 구조 작업에 따르는 경제적 손실, 구조 과정에서 발생한 인명 사고와 여론의 변화,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한 명의 사람보다는 국가 경제로 포장된 건설 경제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믿는 자본가들의 모습 등도 마찬가지다.
실화를 의도적으로 반영하지 않았음에도, 영화 속 상황들은 사건 당시의 참담함을 떠올리게 만들기 충분하다. "저기 사람이 갇혀 있습니다"라는 대경의 대사는 결정적이다. '터널'은 대경의 입을 통해 그 모든 핑계와 이유가 잘못도 없이 터널에 갇힌 한 사람의 생명을 놓아버릴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정우는 정수가 처한 비극적 상황을 더없이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배우가 지닌 특유의 능청스러운 매력은 캐릭터가 맞이한 극단적 상황과 만나 믿기지 않는 코믹함을 낳는다. 여러 영화들을 통해 소품을 맛깔나게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여줬던 하정우는 이번 영화에서 생수는 물론 개 사료까지 동원한 '먹방'을 펼친다.
많지 않은 분량에도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세현 역 배두나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터널에 갇힌 남편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터널 밖의 불안을 견뎌내는 세현의 모습을, 배두나는 민낯의 얼굴로 현실감 넘치게 그려냈다. 특히 생사를 알 수 없는 정수를 그리워하면서도 또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장면은 '역시 배두나'라는 찬사를 보내기 충분하다.
'천만 요정' 오달수는 이번에도 부침 없이 제 역할을 해냈다. '암살'에서 보여줬던 하정우와의 시너지는 대부분 통화 장면을 통해서만 호흡해야 했던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했다. 8월 오달수는 ’국가대표2’와 '터널' 두 작품으로 관객을 만난다.
'터널'은 오는 10일 개봉한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