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2015년, 한국 축구에 새롭게 등장한 희망의 아이콘은 단연 이정협(24, 부산 아이파크)이었다. 편견과 싸워왔던 무명의 공격수가 국내 축구팬들에게 무명에 가까웠던 독일인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을 만나 성장하는 과정은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인터넷 신문이라는 편견을 뚫고 11년을 달려온 조이뉴스24의 성장기와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창간 11년주년을 맞은 조이뉴스24가 그동안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이정협의 축구 성장기를 소개한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던 부산 강서구 강서체육공원의 부산 클럽하우스에는 쌀쌀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묵묵히 훈련에 집중하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K리그 클래식에서 11위에 머물며 챌린지(2부리그) 강등 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부산 아이파크의 풍경이다.
팀이 이렇게 어려운 와중에 이정기라는 이름으로 부산에서 뛰었던 이정협이 군필자이자 구세주가 되어 돌아왔다. 부산이 승강 플레이오프로 갈 지, 꼴찌로 떨어져 챌린지로 자동 강등이 될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마땅한 공격수가 없던 차에 이정협의 군 전역 후 복귀는 천군만마와 같았다. 변명기 사장은 이정협이 팀으로 돌아오던 날 '이정협의 복귀를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강등 위기 부산을 살려야 하는 이정협, 그의 마음은 무겁다
이정협의 위상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평범했던 공격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지난 1월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 8월 중국 우한 동아시안컵 우승의 한 가운데 있었으니 말이다.
이정협은 올 한 해를 돌아보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제가 잘 돼 가지고 돌아와서 큰 기대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 기대에 부응하고 싶기도 하다. 지금도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클럽하우스에 현수막까지 걸어놓고 환영을 해주실 지 정말 몰랐다"라고 입을 열었다.
현재 완벽한 몸 상태는 아니다. 8월 26일 경남FC전에서 배효성과 공중볼 경합을 하다가 안면 복합 골절 부상을 당했다. 중상이었지만 착실하고 꾸준한 재활로 생각보다 빨리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저는 괜찮은데 주변에서 부상 트라우마(외상 후 후유증)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 부산에서는 안면 마스크까지 제작해주신다고 했는데 괜찮다고 했다. 배효성 선배도 고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정말 잘 안다. 미안하다는 말을 30번도 더 하셨다. 내가 유스 시절 부산에서 뛰셨던 선배다. 자주 이야기를 나눠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괜찮다고 했다."
부산은 지난달 24일 35라운드에서 '최하위 경쟁팀' 대전 시티즌에 1-2로 패했다. 부산은 졌지만 이 경기에 이정협은 선발로 나서 한지호의 골에 도움을 기록하는 등 실력을 보여줬다. 도움 1개를 했을 뿐이지만 이정협이 부산을 구할 신이라도 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는 "팀이 패해 죄송하고 미안하다"라며 면목이 없다고 했지만, 팬들은 "당신이 무슨 잘못을 했느냐. 팀이 문제일 뿐이다"라며 군 전역 후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른 이정협을 감쌌다. 이정협은 어떤 마음일까.
"(입대 전) 부산은 팀 색깔이 끈끈하고 단단한 팀이었다. 돌아와서 보니 정말 열심히 뛴다. 훈련이든 뭐든 정말 노력한다. 경기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집중력이 조금 떨어진 것 같다. 조금만 더 잘하면 될 텐데,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많은 분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패해서 죄송스러웠다. 골 넣고 꼭 이길 수 있는 경기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챌린지에서 두 시즌을 뛰었던 이정협이다. 다시 챌린지에서 뛸 생각은 없다. 그래서 팀 성적에 대한 애착이 더 크다. 그는 "일단 플레이오프로 간 다음 열심히 해서 이겨 클래식에 잔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매 경기가 중요하다. 나는 입대 전 부산 선수였고 돌아와서도 부산 선수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영준 감독님도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도록 침착하게 지도하신다"라고 말했다.
배우고 따라가고…태극마크 달았지만, 이정협은 여전히 '미생'
이정협은 2010년 드래프트에서 부산에 우선 지명됐다. 숭실대에 진학했다가 2013년 프로에 입문했다. 유스팀 출신이라 그의 연봉은 3천600만원이다. 입단 후 1년을 채 뛰지 못하고 상주 상무에 입대했기 때문에 부산에 복귀해서도 내년까지 그의 연봉은 3천600만원이다.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번 돈이 연봉과 비슷하다. 아시안컵 준우승으로 2천만원, 동아시안컵 우승으로 1천500만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일부에서는 그가 국가대표가 된 후 큰돈을 번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미생'이다. 유스 시절부터 생활했던 클럽하우스에서 머물며 돈을 한푼이라도 아끼는 삶을 살고 있다.
'국가대표' 타이틀을 달고나서 이정협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인터뷰 당시에는 11월 A매치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이정협은 회복 기회를 더 주겠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배려'로 이번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됐다.) 장난치고 까불기를 좋아했던 이정협을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는 이정협의 국가대표스러운 변화가 어색할 수밖에 없다.
"고교 시절까지는 장난도 잘 치고 했는데 국가대표가 되면 모두가 알아보기 때문에 말이나 행동 모두 조심스럽게 되더라. 최근에서 어디를 갔는데 알아보셔서 놀랐다. 그래서 정말 하나하나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정협은 군 복무 기간 뛰었던 상주에서도 비주전이었다. 그가 입대했을 때 이근호(전북 현대), 하태균(옌볜)이라는 국가대표급 공격수들이 버티고 있었다. 부산에서 상주행을 결심할 당시에도 양동현(울산 현대)이 팀으로 복귀해 입지가 좁아져 있었다는 사연은 잘 알려져 있다.
"부산에서도 내게 출전 기회가 적게 와서 그냥 뛰는 것만 생각했었다. 상주에 가서도 마찬가지라 (이)근호 형, (하)태균이 형에게 배우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운동했다. 시간만 보내지 말고 하나라도 얻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힘도 키워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국가대표가 된 것이 내게는 더 의의가 있다."
공격수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뛰어야 하는지도 공부했다.
"최고의 공격수는 골로 말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아직은 최고의 공격수가 아니다. 연구하고 훈련하고 골 넣는 감각을 키우면서 날카로운 공격수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집중하고 있다. 갈 길이 정말 멀다."
대표팀 경험은 이정협에게 설렘이라는 단어를 일상으로 만들었다. 능력을 보고 발탁한 선수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슈틸리케 감독의 배려는 이정협을 1분이라도 더 뛰고 싶어하는, 집착하는 공격수로 탈바꿈시켰다. 자신의 장점을 봐주고 대표로 발탁해준 슈틸리케 감독에게 평생 절을 해도 모자랄 정도다.
"뛰는 게 그렇게 즐거울 줄 몰랐다. 빨리 경기에 나가고 싶더라. 감독님은 편안하게 뛰라고 배려를 하셨다. TV에 나왔던 형들과 대표팀에서 같이 뛰니까 정말 신기하더라. 대표팀에서 그나마 친밀감 있었던 사람은 (이)근호 형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다들 친해졌다. 안면 부상을 당한 뒤 (구)자철, (김)영권, (김)신욱이 형에게 연락이 와서 걱정을 해주시더라. 정말 고마웠다."
과거와 달리 국가대표라는 무게감이 조금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정협에게는 무의미한 이야기다. 대표로 발탁될 때마다 여전히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산 유스 출신의 국가대표 공격수라는 점에서 더 의미도 있다. 이정협은 "국가대표가 되면 부모님, 지인은 물론 함께 축구를 했던 유스 동기들도 좋아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기자와 얘기를 나누던 이정협이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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