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팬들이 강등 걱정하지 않는 강팀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선물 아닐까요."
프로축구 K리그에서 시도민구단은 항상 위기와 함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승강제가 도입된 뒤에는 겨울나기가 보릿고개처럼 힘들다. 예산 확보부터 스폰서 유치 등 해야 할 과제가 정말 많다. 구단을 이끄는 사장(또는 단장)은 해당 지자체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전문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외풍을 견뎌야 하는 숙제까지 있다.
이런 어려운 자리를 축구대표팀 감독까지 지냈던 조광래(61) 대구FC 사장이 과감하게 도전한 지 1년 2개월이 지났다. 지난 2014년 9월, 공석이던 대구FC 단장에 선임된 뒤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대표이사가 됐다.
현역 시절 국가대표를 지내고 대우 로얄즈, 안양 LG, 경남FC와 축구대표팀의 사령탑을 두루 지냈던 조 감독의 구단 행정가 변신은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경상남도 진주가 고향인 그가 2003년 창단해 딱히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대구를 택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아했다.
창간 11주년을 맞은 조이뉴스24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조광래 사장을 만나봤다.
시민구단 사장은 절대 가볍지 않은, 고독한 자리
대구 스타디움 내 구단 사무국에서 기자를 만난 조광래 사장은 "문디 자슥, 시골(조 사장 입장에서 시골은 기자의 거주지인 서울이다)에 있다고 얼굴도 안 보여주나. 뭐할라꼬 나를 인터뷰 할라고, 선수들이나 할 것이지"라며 그 특유의 친화력 있는 말투로 사장실로 이끌었다. 챌린지 강등이 확정되던 경기 이후 취재를 쉽게 오지 못하는 기자에 대한 가벼운 경고(?) 메시지인 셈이다.
머리숱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껄껄 웃으며 "사장 하고 나서 머리가 빠지고 배가 많이 나오더라. 큰일이다"라고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1년 2개월 동안 대구시의 각종 단체부터 기업까지 사람 만나는 일이 하루도 안 빠지고 계속됐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기자와의 인터뷰가 끝난 뒤 점심 식사 도중에도 구단 사무국으로 지역 인사가 찾아와 급히 헤어져야 했다.
조 사장은 "감독 시절부터 준비해왔던 자리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 많이 배우고 있다. 시민구단이라 해결해야 할 것도 한둘이 아니다. 성적, 인프라 구축, 재정 문제 등 산적한 과제가 많다. 그래도 늘 긍정적으로 생각해 하나씩 헤쳐나가고 있다. 돌아보니 내 인생에 또 다른 성찰을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라고 사장 부임 후의 시간들을 되돌아봤다.
'백수'였던 조 사장이 대구 사장 공모에 응모한 시점은 김재하 전 사장이 강등 등 복합적인 이유로 자리를 내려놓은 뒤였다. 대구 구단을 둘러싼 공기가 무거운 시점이었다. 2013년 챌린지로 강등 후 2014년 7위에 그치며 승격하지 못해 어려움도 가중됐다.
조 사장은 "오래 전부터 행정가의 꿈을 준비했지만, 막상 사장이 된다고 하니 부담이 된 것이 사실이었다. 사장이라는 자리는 선수단은 물론 구단 직원과 전체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최고 경영자 자리기 때문이다. 절대 가볍지 않은, 고독한 자리다"라고 말했다.
현역 시절 '컴퓨터 링커'로 불렸던 조 사장은 공부도 꽤 잘했다. 그는 "(공모 전) 어느 날 혼자 책상에 앉았는데 사각의 책상이 꼭 그라운드하고 닮았더라. 그 때 '딱 이거다' 싶었다. 그라운드도, 공부도 좋아했기에 경험을 잘 살리면 '책상'에서도 구단을 운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더군다나 대구 인구가 얼마인가, 250만 명이다. 축구 시장이 넓으니 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경영자로서 승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며 그만의 승리욕이 사장 자리 도전으로 이끌었다고 고백했다.
물론 쉬운 자리는 아니다. 기자는 시민구단 중 가장 시끄러웠던 대전 시티즌을 9년이나 담당하며 사장들이 어떻게 물러나는지를 지켜봤다. 노파심에서 조 사장에게 '외풍'에 관해 물었다. 유쾌한 조 사장은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부임 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신경이 쓰이지 않으면 거짓말이었지만 먼저 다가서려 노력했다. 막상 와서 직접 만나서 부딪히니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많은 분이 나와 축구에 대한 추억을 공유했고 반갑게 맞아주며 격려해주더라. (보수적이라는) 대구도 많이 바뀌었고 열려 있다. 지역 축구인과도 잘 소통하고 지낸다. 앞으로 더 다가가고 머리를 낮출 생각이다."
100년을 갈 수 있는 명문구단 만들고 싶은 계획 있어
지역과의 거리를 좁히더라도 그 다음 문제가 있다. 연고지 자지단체의 지원과 연대다. 대구는 강등 당시 김 전 사장과 일부 프런트가 책임을 지고 팀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한 직원은 울산 현대 사무국장이 됐고 다른 직원은 성남FC 부장이 됐다. 그만큼 인재가 있었다는 얘기지만 책임론이라는 파도에 쓸려 간 셈이다. 조 사장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구단주인 권영진 대구시장님은 축구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깊다. 축구가 시민을 하나로 모으고 지역 사회에도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응원도 자주 오는데 공교롭게도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구시와 구단이 생각하는 방향이 같다는 점이다. 챌린지 우승, 승격의 단기적 목표가 아니라 100년을 갈 수 있고 시민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명문구단을 만든다는 장기 계획이 있다."
권영진 시장은 생각 이상의 축구광이라고 한다. 경기장 방문 시 구단에서 의례적으로 제공하는 축구 유니폼, 축구화 등 모든 것을 스스로 갖추고 있어 조 사장에게도 부담이 없는 구단주였다. 구단주의 관심이 많으니 수동적인 공무원들도 구단의 발전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구 구단 관계자는 "1년 예산 중 30~40억원 정도를 시에서 지원하는데도 구단주는 티를 내지 않는다. 클래식에 있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라고 첨언했다.
대구는 이번 시즌 승격에 가까이 와 있다. 40라운드까지 승점 64점으로 챌린지 1위다. 남은 4경기를 잘 견디면 내년에는 클래식 무대로 복귀할 수 있다. 조 사장 역시 승격이 간절하다. 챌린지 1위는 우승컵은 없지만, 클래식 자동 승격이라는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조 감독 개인적으로도 2000년 안양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한 이후 우승이라는 단어 근처에 가보지 못했다.
그는 "우승은 누구나 꿈꾸고 대구에게도 절실하다. 하지만 챌린지라고 우승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리그 수준도 많이 올라왔고 경쟁자도 여전히 존재한다. 실력과 함께 운도 따라야 한다. 시즌 초에는 누구도 대구의 우승을 점치진 않았다. 우리도 우승이 아닌 재미와 감동을 주는 축구를 보여주자는 각오로만 뛰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대구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우승만큼 자신감을 주는 것도 없다. 실제로 대구시민들도 우승을 기원하고 있다"라고 간절함을 토로했다.
승격이 실현된다면 오래 기다려왔던 팬들에게 어떤 선물을 해주고 싶을까. 조 사장의 계획과 의지는 확고했다. 그는 "승격을 열망하는 팬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 '클래식 승격'이듯이 승격 후 강등되지 않는 팀이 가장 좋은 선물일 것 같다. 클래식에서도 통할 수 있는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그래서 팬들이 강등 걱정하지 않는 강팀을 갖게 해주고 싶다"라고 소리쳤다.
구단 예산은 좋은 '축구 상품'을 만드는데 먼저 투입해야
그의 말대로 1부리그 승격 후 오래 버티는 구단은 필요조건 중 하나다. 올해 승격한 광주FC가 처음으로 클래식 잔류에 성공했다. 반면 대전은 강등 직행 위기에 몰렸다. 두 구단의 차이는 외풍에서 버티는 능력이었다. 광주는 '기성용 아버지'로 잘 알려진 기영옥 단장 부임 후 남기일 감독과 선수단이 뭉쳐 어려운 고비를 넘겼지만 대전은 승격 1등 공신인 조진호 감독 경질 후 최문식 감독을 영입하는 등 혼란을 겪었다. 구단의 뿌리가 약하면 얼마든지 밖에서 흔들 수 있다.
조 사장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다. 도민구단 경남FC에서 감독으로 지내며 다 겪어봤던 일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생각은 확실하다. 그는 "시민구단의 어려움은 재정난→우수선수 확보 실패→경기력 저하→성적 부진→관중 감소→수입 하락→재정난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데 있다. 다수는 급한 대로 돈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다르다. '효율적인 투자'가 중요하다고 본다. 관중과 기업(스폰서)에 재미와 감동을 주는 좋은 축구 상품을 만들기 위해 어디서 써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조 사장이 생각하는 선순환 구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좋은 성적→관중 증가→수입 상승→재정자립→우수선수 확보→좋은 성적이 분명한 목표다.
대구 구단의 현실에 대한 진단도 냉정했다. 그는 "전임자들이 열심히 했다는 것은 다 알지만, 방향에는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이다. 창단 10년이 넘도록 클럽하우스와 전용구장 등 기본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다. 선수들은 원룸에서 생활하고 식사를 위해 10분 이상을 걸어 다녔다. 팬들은 대형 종합경기장에서 멀리 떨어진 선수를 전광판으로 봤다. 이래서는 좋은 축구 상품을 만들기 어렵다"고 안타까워했다.
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안정적이 재정 확보가 우선이다. 이를 위해 후원 기업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발적 소액 후원인인 '엔젤클럽'이 대표적이다. 시즌 말미로 오면서 후원자가 늘어가고 있다. 신규 스폰서도 20개 가까이 늘었다는 것이 조 사장의 설명이다.
"대구에는 대기업이 없다. 이 때문에 십시일반으로 후원 가능한 다수의 중소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대구시의 도움을 받아 직접 찾아다닌다. 쉬운 일은 아니다. 프로축구의 경쟁력이 프로야구에 비해 약해 후원이 쉽지 않다. 그래서 내 축구 철학과 해당 기업의 비전을 담은 사인볼을 제작해 직접 방문, 후원 요청을 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가면 반갑게 맞아 주신다. 후원은 물론 공장 견학도 시켜주고 직원들도 불러 모아 사진도 찍고 사인회도 한다. 내게 경영철학과 성공 비법도 전수해주는 데 보람도 느끼고 희망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지난해 부임 후 흑자를 기록했고 올해도 흑자가 예상된다."
<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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