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매일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던 중국 우한에 9일 비가 왔습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 마지막 날 비가 오다니요, 한국으로 떠나려고 하자 날씨가 좋아지니(?) 억울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영상 30℃에 습도 78%인데도 13호 태풍 사우델로르의 영향 때문인지 바람이 강하게 불어 한국-북한전이 열리던 순간에는 전혀 덥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우한의 배신'이라고나 할까요. 무더우려면 끝까지 일관되게 뜨거워야 하는 데 말입니다. 그래도 덕분에 한국은 북한과 0-0으로 비기고도 이어 열린 중국-일본전이 폭우 속에서 열려 1-1로 비기면서 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국의 동아시안컵 우승 효과는 상당할 겁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지도자 인생에 첫 우승으로 좀 더 자신있게 한국대표팀을 지도할 힘을 얻었습니다. 사실 슈틸리케 감독이 선임될 당시 현역 시절과는 비교도 안되게 떨어지는 감독으로서의 경력에 물음표가 붙었습니다. 그러나 부임 후 일관된 지도력으로 첫 우승을 만들었습니다.
K리거들에게도 희망을 안겼습니다. 누구든지 대표팀에 들어올 수 있다는 가능성이 다시 한 번 확인됐습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동아시안컵 내내 'K리그'를 입이 마르고 닳도록 언급했습니다. K리그의 경기 스타일이 변화해야 하고 선수들도 창의적으로 경기해야 한다며 자극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유럽, 중동에서 뛰는 선수들도 대표팀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재확인했습니다.
대회 참가와 우승을 통한 효과는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동아시안컵을 넓게 바라보면 한국이 마냥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 0-2로 패한 중국은 북한을 2-0으로 이긴 뒤 일본과 1-1로 비기며 2위로 대회를 마감했습니다.
중국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철저한 준비를 했죠. 스페인에 진출한 장청동(라요 바예카노)과 부상으로 빠진 장린펑(광저우 에버그란데)을 제외한 최강 전력이 안방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우승을 위해 전력을 다했습니다.
경기력으로만 본다면 중국의 준비는 불완전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한국과의 첫 경기에서 경험 부족을 숨기지 못하고 허망하게 패했죠. 나름대로 최강 전력을 꾸렸다고 자부했는데 말입니다. 승리를 위해 부상으로 몸 상태가 완전하지 않았던 가오린(광저우 에버그란데)을 원톱으로 내세웠다가 재미를 못봤고요.
승리한 북한전보다 일본전에서 중국의 아쉬움은 더 강하게 드러났습니다. 빌드업 과정에서 속도가 늦다 보니 일본의 압박에 어찌할 줄 모르더군요. 공격을 풀어주는 플레이메이커의 부재도 엿보였습니다. 자국 슈퍼리그의 거액 투자와 대표팀은 별개가 아니냐는 의견도 쏟아졌고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중국 축구의 투자 효과는 결실을 볼 것이라는 점입니다. 선수들의 기량은 2013년 대회보다 분명 더 나아졌습니다. 일본의 다무라 슈이치 프리랜서 기자는 "중국이 지금 당장보다는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 10년 뒤 한국을 따라잡겠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는 일본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이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다무라 기자를 통해 일본축구협회의 생각도 알 수 있었는데요, 그는 "일본은 중국의 부상을 심상치 않게 여기고 있다. 유럽파와 국내파의 차이가 꽤 큰데 이를 줄이지 않으면 조직력을 갖춘 중국에 추월당하지 말란 법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라며 아시아 팀들이 상향 평준화되는 때를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대회 기간 중 대표팀이 훈련했던 타지후 체육공원 훈련장은 6개의 축구장에 3개의 풋살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추가 증설을 목표로 하고 있고요. 우창으로 알려진 시내에도 4만석 규모의 축구전용경기장과 연습장을 조성하고 있더군요. 우한 말고도 전국적으로 축구장 조성 붐이 일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축구 굴기가 당장보다는 미래에 효과를 볼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도 확실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인프라 확충을 통해 성장하는 것은 사람이니까요.
북한 역시 김정은 노동당 제1 비서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유소년 축구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남북전은 경기력과는 별개의 정신력이 필요한데 북한은 박광룡(FC비엘-비엔네), 안병준(제프 유나이티드), 리용직(V바렌-나가사키) 등 다수의 공격진을 빼놓고도 숨막히는 수비와 역습 축구로 대항해 0-0 무승부를 이끌었습니다.
북한은 2010 남아공월드컵 3차, 최종예선에서 한국을 집요하게 괴롭혔습니다. 지면 손해가 크고 이겨도 본전인 북한이니 한국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상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좀 더 세련된 축구로 무장한 북한의 성장도 눈여겨 봐야 할 부분입니다.
일본은 한국에 밀리는 경기 내용을 보이고 북한에 완패했지만, 그들 특유의 패싱 플레이는 선수가 달라져도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중국전에서 0-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무토 유키가 일본식 공격 전개로 동점골을 넣은 뒤 패스로 점유율을 높여가며 주도권을 가져왔던 장면을 보면서 '역시 일본의 기본기는 괜찮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지난 3월 부임한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의 스타일이 녹아들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패스로 골지역까지 전진하고도 마무리 부족으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짧은 패스와 긴 패스가 이상하게 섞여 정체기를 지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무리 부족은 슈틸리케호와 조금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소속과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중국의 한 기자는 "일본의 경기력은 유럽파와 섞였을 때 완벽하게 나올 것 같다. 중국의 현재 전력으로 완전체 일본을 상대한다면 쉽게 이기지는 못한다고 본다. 이는 한국도 똑같다"라며 한국과 일본을 평가했습니다.
'우승은 어제 내린 눈과 같다'는 과거 선배 기자의 기사가 생각나는, 우한에서의 마지막 날입니다. 주변국의 성장과 추격을 절대로 가볍게 봐 넘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새 얼굴이 계속 나와 희망적인 슈틸리케호가 끊임없이 경쟁하고 발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를 위해 기자도 K리그에서 더 발전하기 위해 애쓰는 선수들과, 그들을 찾아 나서는 슈틸리케 감독 이하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움직임을 좀 더 면밀하게 살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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