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선수는 뛸 곳이 있으면 죽어라 달려야 해요."
지난해 10월 3일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에서 한국은 난적 이란을 79-77로 꺾고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12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한국의 우승 뒤 축승연에서 만난 울산 모비스 가드 양동근(34)은 시즌 시작 전 빡빡한 아시안게임 일정을 소화하고 힘을 빼고 소속팀으로 돌아가서 힘들지 않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단호하게 위와 같이 대답했다.
양동근의 나이는 30대 중반이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다. 이번 시즌을 길게 보면 지난해 여름은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안게임 준비로 쉴 틈이 없었다. 아시안게임 종료 후 곧바로 팀에 합류해 리더 역할을 했다. 정규리그 경기당 평균 34분 59초를 소화했다.
그야말로 철인이다. 백업 요원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양동근은 별 불만 없이 죽으라고 팀을 위해 희생했다. 유재학 감독은 정규리그 1위가 확정된 인천 전자랜드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양동근을 투입하는 냉정함을 보여줬다. 당시 양동근은 38분 34초를 뛰는 괴력을 과시했다.
양동근은 유재학 감독이 구사하는 수비와 체력을 앞세운 조직력 농구의 조율사다. 양동근이 물 흐르듯 패스를 넣어주면서 팀 전술이 돌아갔다. 모비스의 지역 방어를 깨기 어려운 이유는 양동근이 집중력 있는 수비를 보여주고 리바운드에도 적극 가담해 볼을 잡아낸 뒤 곧바로 속공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코트의 팔방미인이다.
농구 전문가들도 모비스가 1위를 한 것의 50%는 양동근의 힘이라고 평가한다. 함지훈이 군 전역 후 복귀하기 전까지 양동근이 거의 홀로 선수단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유 감독이 지시하면 군소리 없이 따르며 조직력을 깨트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나이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는 것이 양동근의 지론이다. 체력과 열정만 있다면 얼마든지 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나이 때문에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더 많이 훈련하며 버틸 뿐이다."
일관된 양동근의 생각과 솔선수범은 모비스의 챔피언전 3연속 우승에 밑거름이 됐다. 양동근은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원주 동부의 주요 타깃이었지만 그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김영만 동부 감독이 협력수비와 지역방어, 높이로 양동근을 봉쇄해 모비스 공격의 맥을 끊겠다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내외곽을 넘나드는 양동근의 부지런함을 느린 발과 체력 저하로는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부와의 챔피언결정 3차전에서는 양동근이 양 팀 최다인 23득점을 쏟아냈다. 오죽하면 한 동부 팬이 양동근을 향해 "도핑테스트 하라"라며 원망 섞인 말을 할 정도였다.
농구 생각에 밤잠을 설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것도 양동근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한 경기 지기라도 하면 후배들이 일찍 잠든 시간에도 그는 '왜 패했을까'에 대한 의문으로 시간을 보낸다. 결국, 다음날 동료와 후배들에게도 패배의 이유 등을 물으며 기어이 문제점을 찾아낸다. 이런 열정과 끈질김이 있었기에 유재학 감독도 늘 양동근을 믿고 맡기게 된다. 두 사람의 찰떡 호흡이 모비스를 다시 한 번 정상의 반석 위에 세웠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