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서울 삼성 선수대기실의 화이트보드에는 상대팀의 장, 단점이 압축되어 있었다. 동시에 상대의 스타일에 따른 대응법도 적혀 있었다. 이규섭, 박훈근 두 코치가 적었다고는 하나 모두 '산소같은 남자' 이상민(42) 서울 삼성 감독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꼼꼼한 상대 분석은 코치로 2년을 보냈던 초보 사령탑 이상민 감독이 진짜 감독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상민 감독은 15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 KCC 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전을 상기된 표정으로 기다렸다. 어차피 올 시즌 전력 예상에서 약체로 분류되어 있어 첫 승을 못 올렸어도 상대적으로 마음은 편하다.
서울 삼성은 지난 11일 고양 오리온스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72-79로 졌고, 12일 홈 개막전 서울 SK전에서는 78-93으로 패했다. 이 감독이 현역 시절 손쉽게 수확했던 1승이 그렇게 멀게 느껴진 것은 처음일 것이다.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이 감독은 여전히 선수로 뛰어도 될 정도로 균형잡힌 체격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감독이라는 아직 어색한 직책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2012∼2014 시즌 코치로 삼성과 함께하며 2012~2013 시즌 김동광 전 감독을 보좌해 6강 플레이오프을 이끄는 등 코치로서 나름 경험을 쌓았어도 전체를 복합적으로 봐야 하는 감독의 위치는 확실히 달랐다.
개막 후 두 번의 승리를 모두 놓친 상태에서 얄궂게도 나란히 2패를 기록 중인 KGC와 단두대 매치를 치르게 됐다. 이 감독은 "우리가 전체 속공 1위다"라고 팀의 강점을 내세우면서 "지난 2년간 3~4쿼터에 무너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점점 더 나아질 것이다"라며 희망섞인 전망을 했다.
상대 KGC의 이동남 감독대행은 이 감독의 홍대부중-홍대부고-연세대학교 3년 직계 후배다. 함께 농구를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연패를 끊어야 하는 심정이야 똑 같겠지만 상대적으로 유명세가 더 있는 이 감독의 마음이 급할 수 있었다.
이 감독도 "하도 언론에서 1승, 1승을 말하니 괜스레 더 부담된다"라며 특유의 미소를 살짝 보였다. 이어 "이 대행과는 거의 경기를 한 경험이 없다. 나보다는 마음이 더 편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물론 후배 이 대행도 여유롭지는 않았다. 그는 "중, 고, 대학 선배인데 이거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겠다"라며 묘한 상황에서의 만남을 다소 당황스러워했다. 그 역시 이 감독과 함께 농구대잔치 세대지만 지명도에서는 비할 바 아닌데다 팀 연패를 끊기 위한 선배와의 겨루기라는 점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대행은 "우리 홈이다.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하자고 정신 무장에 집중했다. 승패에 신경쓰면 좋지 않은 플레이가 나올 수도 있다"라며 냉정하게 경기에 나설 것이라며 당당하게 출사표를 던졌다.
상대 삼성에 대한 분석도 치밀하게 했다. 이 감독대행은 "삼성은 3번(스몰포워드)이 부족하지만 우리는 있다. 그걸 상쇄하기 위해 삼성은 3가드로 나설 수 있다. 속공은 삼성이 경기당 5~6개는 하는 것 같다"라며 기동력을 차단하고 높이와 힘으로 누르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결과는 이상민 감독이 이끈 삼성의 진땀승이었다. 이 감독의 지적대로 2쿼터 19점 차이까지 벌어졌던 점수는 4쿼터 중반 추격을 당해 결국 연장 승부를 벌여야 했다. 그렇지만 한시도 벤치에 앉지 않고 선수들을 격려하며 지시를 내린 이상민 감독이 끝내 승리를 일궈냈다. 약점이라고 지적됐던 3번의 김명훈도 좋은 활약을 해줬다. 이렇게 어렵게 이상민 감독의 사령탑 데뷔 첫 승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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