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새로운 축구(한국)와 세대교체(파라과이)라는 목적이 부딪힌 축구의 승자는 새로운 축구였다. 한국에는 승리와 함께 얻은 것도 많은 중요한 일전이었다.
한국은 10일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김민우(사간도스), 남태희(레퀴야)의 골로 2-0 승리를 거두며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한국대표팀 사령탑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부담스러운 데뷔전에서 내용과 결과를 다 얻어야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결말이다.
스쿼드의 폭 넓어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날 파격적인 선발진 구성을 했다. 남태희, 김민우, 김기희(전북 현대), 조영철(카타르SC), 홍철(수원 삼성) 등 그동안의 대표팀에서는 비주전급으로 활용됐던 이들을 대거 선발로 내세웠다. 새출발을 다짐하고 승리로 한국 축구에 대한 신뢰를 잃은 팬들을 설득하겠다는 슈틸리케의 데뷔전 구상을 감안할 때 놀라운 선수 기용술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스스로의 장기를 최대한 드러냈다. 드리블과 공간을 파고드는 능력이 좋은 남태희, 김민우는 이청용의 볼 배급을 착실하게 받아냈다.
이채로운 점은 이들 공격수 세 명의 평균 신장이 175.6㎝였다는 것이다. 공중볼 플레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철저하게 발밑 플레이를 펼쳤고 두 골을 합작해냈다. 공격 전개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홍철-김기희-곽태휘(알 힐랄)-이용(울산 현대)으로 구성된 플랫4를 후반 45분까지 가동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 소집 첫 날부터 수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비라인을 교체없이 시험하며 선수들이 기본에 충실한지 확인했는데 이 역시 나름 성공적이었다. 세트피스나 역습시 수비가 흔들리는 모습이 몇 차례 나오긴 했지만 낯선 조합의 성공은 어느 자원이 들어와도 활용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전술적 유연성 눈에 띄었다
플랫4, 플랫3 등 특정 전술에 기반을 둔 축구가 아닌 이기는 축구를 위한 전술 변화를 천명했던 슈틸리케 감독은 파라과이전에서 4-2-3-1의 기본 틀을 가지고 나왔다.
그러나 틀은 고정화되지 않았다. 포메이션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화를 일으켰다. 중앙 미드필더 기성용은 공격 출발시 플랫3의 스위퍼로 내려와 전체를 지휘하며 새롭게 시작했다. 좌우 윙어들은 중앙선을 넘었고 전방의 김민우, 남태희, 이청용은 위치에 얽매이지 않으며 스위칭 플레이를 펼쳤다.
스위칭플레이는 홍명보호 등 전 대표팀에서도 보여준 전술이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단순히 자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볼의 움직임과 주변 선수의 동선에 따른 위치 변화를 중요시 여겼다. 측면에서 중앙, 중앙에서 측면 등으로 폭넓은 움직임은 파라과이 수비 공간을 파괴하는 효과로 나타났다.
후반 선수들을 대거 교체하면서도 기본 틀은 흔들리지 않았다. 체력 저하로 인해 간격 유지에 애를 먹었을 뿐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9월) 우루과이전을 보면 우리가 볼을 소유하면 빨리 볼을 뺏겼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볼을 소유해 방향을 전환하는 플레이가 많았다"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볼 간수를 위한 공간 이동 등이 효과적으로 이뤄졌다는 뜻이다.
신뢰도 높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들의 피로도를 고려한 선발진을 짰다. 선수들의 현재 몸상태를 철저하게 고려했다. 그러면서도 기회를 줄 때는 확실히 준다는 의식도 심어줬다.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기를 바란다"는 감독의 의도를 출전 기회를 얻은 선수들은 충실하게 이행했다.
무엇보다 아직 여유가 많은 점을 활용해 고정된 주전 없이 새출발이라는 성격을 명확히 함으로써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했다.
한국 축구팬들에게도 자신이 보여주겠다던 새로운 축구를 데뷔전부터 선명히 드러내며 브라질월드컵에서의 실망감을 잠재웠다. 또, 이른바 '의리 논란'으로 얼룩졌던 대표팀 엔트리에 대한 회의감을 어느 정도 정화시켰다. 슈틸리케 감독은 데뷔전을 통해 신뢰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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