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임권택 감독의 신작 영화 '화장'(감독 임권택/제작 명필름)이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언론 시사를 통해 공개됐다. 두 여인 사이에서 고뇌에 빠진 중년 남성의 이야기가 노익장 감독의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졌다.
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화장'의 언론 시사가 진행됐다. '화장'은 올해 데뷔50주년을 맞은 영화계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이다.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 '화장'을 원작으로 했다. 제목인 '화장'은 '화장(火葬')'과 '화장(化粧)', 두 가지 뜻을 담아 중의성을 띤다.
영화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 오상무(안성기 분)는 화장품 회사의 임원이자 투병 중인 아내를 간호하는 남편이다. 아내(김호정 분)는 반복되는 투병에, 오상무는 오랜 간호에 각자 지친 가슴을 안고 산다. 아내가 처절하게 죽음과 사투를 벌일수록 오상무는 회사의 젊은 직원 추은주(김규리 분)의 싱그러운 매력에 빠져든다.
그러나 오상무를 비롯한 '화장' 속 캐릭터들을 짧은 요약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오상무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향해 욕망을 품는 중년 남성인 동시에 아내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과 연민을 간직한 인물이기도 하다. 추은주를 향한 그의 마음은 아내의 대소변을 익숙하게 받아내고 다시 수술을 받게 된 아내의 머리를 손수 깎아주는 사려깊은 행위들과는 별개의 것으로 그려진다.
아내는 오랜 투병으로 심신이 지쳐있지만 남편에게 여전히 여자이길 원한다.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남편에게 끝내 감추고 싶은 장면들이 있는, 온전치 않은 기운에도 다른 부부들처럼 다정히 사랑을 나누길 바라는 여인이다.
매력적인 외모에 패기와 꿈도 지닌 은주 역시 뭇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불륜녀'와는 거리가 멀다. 의도치 않게 오상무의 마음을 빼앗게 된 인물이지만 그를 향한 감정은 사랑보다 존경과 동경의 정서에 가까워보인다.
오상무의 상상 속 장면을 위해 전라 연기를 펼친 김규리, 거동이 어려운 암 환자로 분해 성기 노출을 소화한 김호정 등 주연 여배우들의 담담한 도전도 응원할 만하다. 그러나 두 여배우가 과감한 노출을 시도한 것, 두 여자 사이에서 고뇌하는 남성의 이야기가 줄거리라는 점과 별개로 영화는 결코 에로티시즘을 좇지 않는다.
전립선 비대증에 걸린 오상무가 아내의 장례를 치르던 중 소변팩을 비우며 본능적 안도와 쾌감을 느끼듯, 인물의 욕망은 상호적이기보다 자기 안으로 소멸한다.
안성기는 평온한 얼굴 뒤 삶의 피로와 고뇌를 감춘 오상무로 분해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지극히 간호하던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어딘지 홀가분해보이던 어투,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며 저도 모를 감정에 휩싸이던 표정을 비롯해 담담한 마지막 시퀀스까지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화장'은 제7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갈라 상영작으로 초청됐다. 올해 국내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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