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남미의 왕'으로 불리는 브라질, 브라질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다수는 '삼바의 나라', '축구의 나라' 등을 떠올린다. 또, 신흥 경제 대국으로 불리며 이른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맨 앞에 위치해 있는,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나라로 생각하기도 한다.
예측 불가능한 문화도 있다. 남미 대륙에서 가장 큰 땅덩어리를 자랑하는 나라답게 다양성이 존재하고 여유로움이 묻어 나오기 때문에 상상 이상의 장면들이 쉽게 연출되기도 한다.
기자는 그런 브라질에 한국 축구대표팀과 함께 와 있다. 한국이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과연 한 번이나 올 기회가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보며, 대표팀 전지훈련지였던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를 떠나 월드컵이 열리는 브라질로 왔다. 상파울루를 거쳐 대표팀의 베이스캠프인 포스 두 이구아수에 드디어 도착.
브라질에 오기까지는 정말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월드컵 취재를 위한 출장 준비부터 너무나 요란했다. 항공편 예약 과정에서 현지 사정에 따라 변동이 계속됐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부 한국 취재진은 기사를 작성중이던 바로 얼마 전에 브라질 항공 국내선 시간이 변경됐다는 놀라운(?) 통보를 받을 정도였다. 호텔 역시 월드컵 특수를 노린 상혼이 넘쳐나, 미리 예약을 해놓고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브라질의 불안한 정국과 치안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오죽하면 외교통상부가 이번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붉은악마 원정 응원단은 물론 국내 취재진에게 직접 브리핑까지 하며 안전 교육을 시킬 정도였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강도를 만나 돈을 달라고 요구하면 바지 주머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알아서 빼가라고 해야 한다든가, 주머니에는 꼭 미화 20달러 정도의 몸값(?)은 소지해야 강도를 맞더라도 폭행을 당하지 않는다는 등 놀라운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브라질 사람들은 성격이 느긋하니 절대로 앞에서 분노해서는 안된다는 충고도 있었다.
바짝 긴장의 끈을 조이고 나선 취재 길이었지만, 대표팀의 1차 전지훈련 캠프였던 미국 마이애미에서 12일간 머무르면서 긴장감은 확 떨어졌다. 아무래도 자유롭고 안전한 미국에서 여유롭게 대표팀을 취재하고 있었으니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11일 오전(한국시간) 마이애미를 출발해 8시간30여 분을 비행해 상파울루 과를류스 공항에 도착하면서 '진짜 브라질에 왔구나' 하는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 비행기 도착 후 기내를 나설 때 브라질인 승무원이 올라(Olá, 안녕)를 힘차게 외치는 소리는 정겨웠다.
그런데 브라질 땅에 첫 발을 떼는 순간부터 난관이었다. 탑승교에서 입국심사장까지 길게 늘어선 줄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확인해보니 입국심사장의 수속 카운터가 총 10개 정도로 워낙 적다보니 수속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한 번 긴 대열에 묶여버리면 무려 3시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실제 그렇게 오랜 기다림끝에 입국심사장을 통과한 취재진도 있었다. 평균 7분 꼴로 착륙하는 국제선 승객이 우르르 몰려나와 입국심사장이 시장판처럼 됐으니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를류스 공항은 월드컵을 앞두고 새 터미널 개장에 박차를 가했지만 워낙 여유만만인 건축 속도로 인해 이미 포화가 된 기존 터미널로 승객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놀라운 것은 신터미널을 국제선이 아닌 국내선이 임시로 활용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해외에서 온 축구팬 등 입국 승객들은 짐짝처럼 방치되는게 보통이었다.
2012년 브라질 항공국 조사에 따르면 브라질에는 4천300여 개의 크고 작은 공항이 있지만 200명 이상을 태워 나르는 중-대형 항공기가 이착륙이 가능한 공항은 10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 정보까지 머릿속에 들어 있는 채 긴 줄에 서 있으려니 더욱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오죽하면 축구 황제 펠레가 브라질의 관문인 과를류스 공항의 포화상태를 부끄러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빨리' 정신으로 투철하게 무장한 한국인이 멍하니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20여 분을 제자리에서 기다리다 기자는 결단을 내렸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신원보증을 해준 월드컵 취재 신청 문서가 있으니 이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FIFA의 은총에 힘입어, 월드컵의 나라를 취재 온 기자에게는 취재입국심사대까지 5분 만에 돌파하는 혜택이 주어졌다.
입국심사원은 기자를 보자 "환영한다. 이곳은 확실한 축구의 나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더니 지체 없이 입국 도장을 쾅하고 찍어줬다. 다른 카운터 뒤로 길게 늘어서 있는 여행객들에게 미안했지만, 어쨌든 느릿느릿 다가오던 브라질이 순식간에 기자 눈앞에 현실로 나타나 있었다.
<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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