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기자] 창의성이 결여된 아류작일까. 생존을 위한 진화일까.
안방극장에 '신선한' 예능이 실종됐다.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 그리고 케이블 채널까지 수십여 개의 예능이 넘쳐나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잘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 요소들을 반영하거나 비슷한 포맷을 차용한 프로그램이 많은 탓이다. 이른바 '베끼기 논란'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지만, 최근 예능은 그 정도가 심하다. 할아버지들이 여행을 떠나면 한쪽에서는 할머니가 여행을 떠나고, 군대 이야기가 화제를 모으니 소방서와 경찰 등 조직 이야기가 뜨는 식이다.
물론 방송계에도 트렌드가 있고, 그 트렌드를 쫓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슷한 소재를 갖고 다르게 요리를 하면, 전혀 새로운 음식이 나올 수도 있다. 과거 '베끼기 논란'에 휩싸였지만 모방에 그치지 않고 더 진화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경우도 여럿 있지 않은가. 그러나 모방의 정도가 지나쳐 '짝퉁'에 그치는 프로그램들이 수두룩하다. 2013년 안방극장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베껴도 되겠습니까"…짝퉁 예능이 넘쳐난다
2013년 방송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은 수십여 개에 이르는데 소재와 형식은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 그 모양새도 닮아있다. 몇 년새 광풍을 일으켰던 오디션과 서바이벌이 주춤하고 토크쇼가 사라진 자리를 리얼리티에서 가지를 뻗친 관찰 예능이 채웠다. 아이와 아빠, 노인, 가족, 조직 등이 예능의 주인공들이 됐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프로그램이 탄생할 수 밖에 없다.
KBS2 '마마도'는 tvN '꽃보다 할배' 베끼기 논란에 휩싸이며 집중포화의 대상이 됐다. '꽃보다 할배'가 70대 배우들의 해외 배낭여행으로 인기를 얻자 '마마도'는 중, 노년 여배우들의 여행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실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은 이전에도 많았건만, 왜 '마마도'는 질타의 대상이 됐을까.
지금껏 TV프로그램 속에서 여행이 청춘들의 전유물로 그려졌다면, '꽃보다 할배'는 시니어를 주인공으로 끌어들여 황혼의 꾸밈 없는 모습과 진정성을 보여줬다. 고정관념의 탈피이자 역발상이었다. '마마도'는 '꽃보다 남자'의 핵심이었던 노년 배우를 성별만 바꿔 여행이라는 틀 안에 가둬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프로그램만의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일밤'의 '아빠어디가'와 '진짜사나이'는 '모방 제조기' 예능이 됐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빠와 자녀가 엄마 없이 2박3일 간 집에서 지내는 내용으로, '아빠어디가'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을 받았다. 다만 아빠와 자녀의 이야기를 여행이 아닌 육아로 변주시키는 영리함(?)을 보였다. 내친 김에 '아빠어디가'와 같은 시간대에 편성,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정면대결을 예고했다. JTBC도 뒤늦게 스타 할배와 할매들이 아들, 딸, 며느리, 사위의 도움 없이 손주들과 함께 시골마을을 찾아 1박 2일 동안 여행을 하는 '오냐오냐'를 내놨다.
군 체험을 다룬 '진짜 사나이'가 인기를 끌자 각종 조직도 TV 안으로 들어왔다. SBS는 소방관 체험기인 '심장이 뛴다'를 방영 중이고 KBS는 경찰관 도전 프로그램인 '근무 중 이상 무'(가제)'를 11월 선보인다.
이밖에도 tvN '퍼펙트싱어 VS'는 JTBC '히든싱어'와 SBS '도전1000곡'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연예인 가족의 고민을 함께 해결하는 채널A '웰컴 투 시월드', JTBC의 '고부 스캔들' 등 비슷한 포맷의 가족예능도 넘쳐나고 있다. 어느 프로그램이 '원조'인지 따지기도 민망할 정도로 비슷한 예능이 범람하고 있다.
◆'불후의 명곡'에서 배워라…창의적인 재해석의 중요성
사실 방송계에서 모방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박2일'도 프로그램 초기에는 '무한도전'의 아류작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며, '아빠어디가'도 처음 기획안이 공개됐을 때는 '붕어빵'과 비교되기도 했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단언컨대 완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은 없다.
모방이 예능을 획일화시킨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트렌드를 쫓고 비슷한 포맷으로 시작했지만 '청출어람'의 결과를 낸 프로그램들도 많기 때문. 현재 방영중인 KBS2 '불후의 명곡'이 그 예다.
'불후의 명곡'은 MBC 경연 프로그램인 '나는가수다'가 한창 인기를 얻자 후발주자로 나선 탓에 '아류작'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아이돌판 나가수' '짝퉁 나가수'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가수다'는 반짝 인기를 얻다 사라진 프로그램이 됐고 '불후의 명곡'은 살아남았다. 경연이 주는 압박감은 줄고 듣는 재미를 높였다. 실력파 뮤지션들을 발굴해 내고 더 나아가 전설 가수와 아이돌이 어우러지는 '가요계 세대통합'에도 한몫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대놓고 베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닌 창의적인 재해석 작업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형식과 포맷이 비슷하더라도 차별화를 주는 지점이 있어야 하고, 소재에 가장 적합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찾아야 한다.
현재 새로운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는 관찰 예능의 틀 안에서도 이는 유효하다. '일밤'이 '아빠어디가'로 관찰 예능이라는 트렌드를 만들어내면서 파생되어 나온 또 다른 코너가 '진짜사나이'다. '진짜사나이'도 리얼리티를 강조한 관찰 예능이지만, 전혀 다른 소재를 차용해 개성 있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냈다.
현 방송계가 우려되는 것은, 창의성과 실험성이 사라진 채 손쉽게 만든 '짝퉁 예능'이 넘쳐난다는 데 있다. 요즘 시청자들은 똑똑하다. '눈 가리고 아웅' 할 수는 없다. '마마도'는 결국 '꽃보다 할매'가 되지 못했고, '심장이 뛴다'도 제2의 '진짜사나이'가 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소재의 변주에 실패했다.
각종 예능 프로의 타깃이 되고 있는 '일밤'의 권석 CP는 '짝퉁' 예능의 범람에 대해 "(우리 프로그램을) 베끼든 말든 상관 없다. 짝퉁 이라고 해서 무시할 필요도 없고 원조라고 텃세를 부릴 것도 없다. 결국 시청자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고, 선택은 시청자들의 몫이다"고 말했다.
지금의 이같은 변화는 그들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발견하기 위한 과도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아류작들의 혁명 실패기로 끝날 것인가. 제작진과 시청자들의 선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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