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지난 WBC 때요…"
노경은(29, 두산)은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가 한창이던 지난 9일. 목동 구장에서 만난 그와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던 중 '악플' 얘기가 나왔다. "지난해부터 부쩍 성장했으니 악플은 없었겠다"는 말에 그는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당시 악플에 적잖이 시달렸음을 털어놓았다. 국내 무대에선 좋은 성적과 아름다운 스토리만 뒤따랐지만 큰 무대에서 부진하자 쏟아진 비난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던 거다.
장소와 배경은 다르지만 노경은은 한 번 더 큰 경기에 나선다. 24일 대구에서 열리는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투수로 예고돼 '선봉장' 역할을 맡았다. 지난 16일 LG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 이어 2연속 '시리즈 1선발'로 낙점된 것이다.
노경은은 '가을 사나이'다. 날이 쌀쌀해지면 그의 공은 더욱 묵직해졌다. 지난해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 선발등판해 6.1이닝 6안타 1실점하면서 포스트시즌의 맛을 본 그는 이번 가을에도 기대에 걸맞는 투구로 힘을 내고 있다. 11일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6이닝 3실점 퀄리티스타로 제 몫을 한 뒤 16일 LG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6이닝 4피안타 2실점으로 팀 승리의 초석을 놓았다. 노경은의 역투에 힘입은 두산은 플레이오프 1차전서 4-2로 승리한 뒤 기세를 몰아 3승1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했다.
포스트시즌 통산 4경기에 나선 성적은 1승1패 평균자책점 3.00. 체력이 떨어지는 경기 후반 공이 몰려 주자를 내보낸 점을 제외하면 큰 흠을 잡기 어려운 피칭이었다. 특히 초반 5회까지는 '언히터블'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노경은은 삼성전을 앞두고 "가장 경계해야 할 타자는 박석민"이라고 했다. 스윙이 날카롭고 장타력이 좋아 방심하기 어려운 상대라는 것이다. 그는 "박석민과 함께 최형우, 채태인으로 구성된 중심타선을 경계해야 한다. 모두가 한 방을 가진 타자들"이라고 분석했다.
정규시즌서 노경은은 삼성을 상대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대구에서만 2차례 등판해 2패 평균자책점 4.97에 그쳤다. 12.2이닝 동안 14안타(4홈런)를 얻어맞고 8실점(7자책)했다. 가장 최근 상대한 지난 8월 22일 경기에선 6.1이닝 동안 4실점했다. 모두가 홈런으로 내준 점수였다. 진갑용에게 2개, 최형우에게 한 개를 얻어맞은 당시 경기는 그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가을 무대에선 다를 것으로 노경은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연속해서 예상을 뒤집고 올라선 두산의 기세가 남달라 한국시리즈서도 충분히 일을 낼 수 있다며 자신한다. '평소에는 잘 하면서도 큰 무대에서 약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이를 악문 노경은이다. 또 한 번 큰 경기에 나서는 그가 이번에는 악플의 악몽을 깨끗이 씻고 활짝 웃을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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