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경제 연예 스포츠 라이프& 피플 포토·영상 스페셜&기획 최신


엔터경제 연예 스포츠
라이프& 피플 포토·영상
스페셜&기획 조이뉴스TV

'명왕성' 김권 "1등이 뭐길래, 악역도 불쌍했다"(인터뷰)

본문 글자 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신수원 감독 '명왕성'서 성적 위해 악행 일삼는 명호 역

[권혜림기자] 스크린 밖에서 만난 김권의 얼굴에 '명왕성'의 명호는 없었다. 싸늘한 비소로 답 없는 이기심을 연기하던 김권은 그 대신 인터뷰룸 전체가 환해질 법한 미소와 진솔한 말씨로 대화의 곳곳을 메웠다. 지난 2011년 MBC 드라마 '나도, 꽃!'으로 데뷔한 그는 신수원 감독의 영화 '명왕성'에서 성적을 위해서라면 끔찍한 악행도 서슴치 않는 고교생 명호로 분했다.

'명왕성'은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하는 사립고에서 1% 상위권 학생들의 비밀 스터디 그룹에 가입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천문학도를 꿈꾸며 살아온 준(이다윗 분)은 명문 사립고에 편입한 후 모든 것이 완벽한 유진 테일러(성준 분)를 보고 열등감을 느껴 비밀 스터디에 가입하려 한다. 그러나 준은 스터디 그룹을 둘러싼 충격적 진실을 알게 되며 점차 괴물이 되어간다.

이런 이야기의 중심에 또 하나의 인물 명호가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온 명호지만 천재 유진 테일러에게는 말 못할 열등감을 느낀다. 누군가 자신의 자리를 침범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상위권 학생들의 그룹 진학재, 그리고 그 안의 비밀스런 소수 클럽 토끼사냥에서 자신의 성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 바로 명호다.

스크린 속 김권은 꼬집을 곳 없이 명호 그 자체로 분했다. 2:8 가르마로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은테 안경은 흰 피부, 큰 키와 어우러져 인물의 외양을 완성했다. 신수원 감독은 "명호 역에는 애초 마네킹의 느낌이 있는 배우를 원했다"며 "김권이 연기에 욕심이 있었고 잘 따라와줬다"고 캐스팅에 대한 만족감을 표한 바 있다.

조이뉴스24와 만난 김권은 영화 속 명호의 외양을 완성하게 된 배경을 알렸다. 그는 "고민을 하며 노트에 명호의 모습을 그려봤었다"며 "2:8 가르마가 떠올랐고 영화 '리치 리치' 속 맥컬리 컬킨의 모습을 상상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 미용실에 가서 스타일링을 하고 사진을 찍어 인물팀에 보냈더니 감독님도 '내가 생각했던 머리'라고 하시더라"고 웃으며 덧붙였다.

김권은 고교 시절부터 연극영화과 진학을 준비했고 애초 목표했던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다. 연극영화과 입시에 수능 못지 않게 실기 성적이 중요한 만큼 그는 다수의 고3 학생들과는 다른 입시 시스템을 경험했다. 반영 과목이나 부문은 달랐지만 경쟁 구도만은 같았다. 그가 입학할 당시 동국대 연극영화과의 입시 경쟁률은 140:1. '명왕성'이 이야기하는 무한 경쟁 시스템, 그 치열함은 무엇을 꿈꾸든 견뎌야 하는 현실이었다.

"입시 경쟁의 현실을 더 잘 알고 싶어서 다큐멘터리를 많이 참고했어요. 고3 수험생들의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들이요. 물론 연극영화과 입시 역시 치열한 경쟁이 있는 곳이죠. 운도 잘 따라야 하고요. 살아남기 힘든 과정이었어요. 실기가 중요하니 밤을 새며 연습했죠. 극 중 명호와 제 성격은 많이 다르지만, 처음 배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의 마음은 저 역시 간절했어요."

'명왕성'의 명호가 어둡고 이기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면, 스크린 밖 김권의 눈빛은 한없이 장난스럽고 해맑았다. 그는 "실제론 유쾌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며 "영화 속 분위기는 매번 진지하고 치밀했기 떄문에 여러 캐릭터들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의 불행은 개의치 않는 명호의 모습은 종종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곤 하는 소시오패스(sociopath)를 연상시킨다.

"명호에겐 소시오패스의 경향,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악인처럼 그려졌지만 사실 우리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이죠. 친구를 죽이거나 다치게 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잖아요. 저 역시 고3 시절 치열하게 입시 경쟁을 했고, 그 때 입시를 위해 무엇 하나 잘못된 행동을 한 적은 없었을까 기억해내려고 애를 썼어요. 결국 제가 만든 연기니 제 안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영화를 이끄는 것은 제목인 '명왕성'으로 은유되는 인물 준이다. 다른 동급생들에 비해 넉넉치 않은 준의 가정 환경은 유진을 향한 열등감과 만나 진학재의 비밀 클럽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비밀 클럽의 중심에서 명호는 준으로 하여금 가혹한 지령을 실행하게 만든다.

그래서 준과 유진에 비해 명호는 인물의 전사(前史)가 제거된 채 악행 자체로 관객을 만났다. 나름대로 명호의 삶을 상상하고 그에게 연민을 품은 김권이기에 명호의 또 다른 이야기가 다뤄지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할 법도 했다.

"명호의 과거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저도 아쉬웠어요. 하지만 만약 명호가 인간적으로 보였다면, 메시지는 또 다르게 흘러갔겠죠. 제가 상상한 명호는 어떤 부분에서나 상위1%의 집안에서 자란 아이에요. 부모님은 아마도 정치계에 있지 않을까 상상했어요. 1천만원 짜리 과외를 하는 아이인데, 집안의 투자와 기대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겠죠. 사실 마지막 장면에선 명호가 자신의 상황에 대해 더 극적으로 발악하는 대사도 있었어요. 편집이 됐지만 그 연기를 하며 이 아이가 이렇게까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뭘까 딱하고 불쌍했어요. '대체 어떻게 자랐길래, 부모님이 바라는 것은 뭐길래, 1등이 뭐길래, 입시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싶었죠."

그가 상상한대로 극 중 명호가 상위 1%의 집안에서 성장했다면, 김권은 그저 무난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학창 시절 용돈을 벌기 위해 부모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그는 "새벽 3시 신문 배달을 하다 학교 생활을 못 하겠다는 생각에 포기한 적도 있다"며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으니 제 실제 성장 과정은 준과 더 가까웠던 것 같다"고 돌이켰다.

어린 시절 육상과 수영, 복싱 등 다양한 운동을 배웠던 그는 운동 선수 외에도 레스토랑 사장을 꿈꾸는 등 유독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였다.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중학생 시절 복싱 선수가 되고 싶다던 그를 말린 아버지 덕분이었다. 과거 복싱을 했던 아버지는 아들이 운동 선수가 되길 원치 않았고, TV를 보던 아들에게 "차라리 연기를 하라"고 조언했다. 당시 딱히 하고 싶었던 일도, 호기심이 가는 분야도 없었던 그는 친구와 함께 공연을 보러 다니다 연극영화과 입시를 목표로 삼게 됐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1지망으로 삼았던 것은 너무나 좋아하는 최민식 선배님 때문이었어요. '올드보이'를 15번 볼 정도로 좋아했죠. '꽃피는 봄이 오면'과 '파이란'도 수 없이 많이 봤어요. 어디서 어떻게 공부하신 건지 알아봤더니 동국대학교를 다니셨더라고요.(웃음)"

해사하고 순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꼭 출연하고 싶은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김권은 뻔뻔해보일만큼 적극적인 배우가 된다. 그는 "좋은 작품을 봤을 때는 그 캐릭터의 옷을 너무나 입고 싶다"며 "앞으로도 많은 오디션에서 떨어지겠지만 늘 그런 생각을 한다"고 단단한 열망을 내비쳤다.

"정말 너무 하고 싶은 배역이었을 땐 '이 역할 저 주십시오'라고 말해본 적도 있어요. 건방져보일 수도 있지만, '감독님 어깨에 제가 힘을 실어드리겠습니다' 한 적도 있고요. 배역을 놓칠 때에도 희망을 품어요. 지금의 상황을 역전해버리는 꿈을 꾸죠. 그런 마음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 당찬 신인 덕에 어깨에 힘을 얻을 사람들, 앞으로 꽤나 많아지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영화 '명왕성'은 지난 11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주요뉴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 해주세요.
alert

댓글 쓰기 제목 '명왕성' 김권 "1등이 뭐길래, 악역도 불쌍했다"(인터뷰)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댓글 바로가기

뉴스톡톡 인기 댓글을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