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혜림기자] 지난 2012년, 19세였던 배우 이다윗은 영화 '명왕성'에서 같은 나이의 주인공 준을 연기했다. 아역 출신으로 그간 숱한 작품들 속에서 쟁쟁한 배우들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그지만 이번 영화에선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주인공으로 분했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조이뉴스24와 만난 이다윗의 얼굴은 소년과 남자의 중간 쯤 될 법한 분위기를 풍겼다. 천진한 눈매에는 아직 때묻지 않은 10대의 에너지가 묻어났지만 이야기의 중간 중간 텀을 두며 말을 고르는 모습에선 제법 진중한 청년의 고민이 느껴졌다.
신수원 감독의 영화 '명왕성'은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하는 사립고에서 1% 상위권 학생들의 비밀 스터디 그룹에 가입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천문학도를 꿈꾸며 살아온 준(이다윗 분)은 명문 사립고에 편입한 후 모든 것이 완벽한 유진(성준 분)을 보고 열등감을 느껴 비밀 스터디에 가입하려 한다. 그러나 준은 현실을 둘러싼 충격적 진실을 알게 되며 점차 괴물이 되어 간다.
마냥 순수하고 호기심 많던 소년 준은 비밀 스터디 그룹의 비밀을 알게 되며 변모한다. 이다윗은 결국 파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준의 변화무쌍한 눈빛을 특유의 영특함으로 표현해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영화의 시점은 준이 느끼는 감정의 파고를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인물의 변화하는 심리를 연기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순서대로 촬영하지 못했으니 수시로 감정을 오가야 했거든요. 그나마 준의 과거 모습은 착하게 연기하면 됐지만 바뀌었을 땐 매 신 감정의 강도가 달라 쉽지 않았죠. 어느 부분에서 어느 정도의 감정을 표현해야 할 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영화 '명왕성'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재분류 끝에 현재 15세이상관람가로 상영 중이지만 애초 심의 과정에서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아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영등위는 모방 폭력에 대한 우려를 '청불' 등급 판정의 이유로 밝힌 바 있다. 극 중 천문학을 비롯한 과학 과목에 특별한 재능을 지닌 준이 사제 폭탄을 제조하고 터뜨리는 장면, 비밀 스터디 그룹 학생들의 집단 성추행 장면 등이 이에 해당한 셈이다.

영화의 언론·배급 시사 후 이뤄진 간담회에서 이다윗은 "영화를 찍을 때 제가 19세였다"는 말로 등급 판정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고3들의 이야기를 실제 고3의 나이에 연기한 이다윗은 "학생들의 이야기인 만큼, 감독님 역시 '명왕성'을 학생들이 많이 보길 바라셨다"며 "폭탄이라는 소재가 과격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폭발 장면을 보여주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명왕성'의 메시지는 폭력성을 연상시키는 스펙타클보단 되려 인물들 간 정적인 대사 혹은 주요 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통해 전달된다. "별들은 자전할 때 노래를 해"로 시작하는 유진 테일러의 대사는 영화의 말미 준의 입에서 전유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다윗 역시 성준과 자신이 모두 연기한 이 대사에 "꽂혔다"고 고백했다.
"몽환적인 대사에요. 감독님이 촬영 전에 우주 기구에서 녹음했다는 별이 내는 소리를 찾아 들려주셨어요. 정말 기묘한 소리였고, 너무 신기했어요. 별들이 정말로 노래를 하며 자전을 할까 괜히 궁금했었는데, 그 뒤로 영화에서 그 대사가 나올 때마다 그 소리가 듣고 싶어지더라고요."
채 성인이 되기도 전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현실은 준의 또 다른 대사를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100미터 달리기에 입시 경쟁을 비유해 "달릴 때마다 지는 기분을 알아?"라고 묻는 자조적인 대사다.
같은 학교 동급생들과 비교해 부모의 사회 경제적 층위가 낮은 만큼 준은 출발부터 저만치 뒤쳐져 있다. 한참을 앞서 가는 경쟁자들 사이에서 정직과 성실 따위는 우습게도 빛바란 덕목이 된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간신히 아들을 뒷바라지하는 준의 어머니에겐 쪽집게 과외 선생을 찾아가는 일조차 여의치 않다.
"100미터를 달릴 때마다 지는 기분을 아냐는 대사는, 사실 준이가 자신의 상황을 두고 한 말이라기보다 엄마를 생각하며 한 말인 것 같아요. 단지 학교 학생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나이대의 사람들이 공감할 여지가 있는 대사랄까요. 물론 심각하고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야 하는 학생들 역시 그렇게 느낄 수 있고요."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 재미를 붙인 이다윗은 대체로 공부에만 매진했을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입시 경쟁 시스템에 갇힌 '대한민국 고3'의 보편적인 고민에 그가 공감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명왕성'에 등장하는 진학재, 상위 1% 비밀 그룹의 끔찍한 장난은 그 자체로 흔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눈에 불을 켜고 경쟁해야 우위에 올라서는 경쟁 구조만은 우리 현실과 맞닿아 있다.
"같은 고3이라 영화에 크게 공감했다고 말하기엔 '명왕성'의 에피소드는 생소하고 놀랄 만한 일들이죠. 하지만 주변 친구들이 수능을 위해 공부했으니 고3들의 마음은 이해가 갔어요. 악행을 저지른 진학재의 아이들도 이해는 가요. 이것저것을 다 알고 나쁜 짓을 하면 진짜 나쁜 사람들이지만,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안타깝기도 하죠. 그 아이들 역시 그렇게 자라고 싶지 않았을 거에요."
배우 이다윗의 고3 시절은 어땠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이다윗은 학업과 연기를 병행해왔다. 촬영이 있을 땐 학교 수업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지만 놓친 분량은 혼자 공부해야 했다. 그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기대치가 있었다"며 "학교에선 학생으로 본분을 다하길 원하셨다"고 돌이켰다.
"학창 시절 저는 나약한 학생이었어요. 연기 활동을 했지만 공부를 그만큼 더 해야 할 것 같은 환경이었고, 그게 때로는 짜증이 나기도 했죠.(웃음) 부모님께선 '잘 나야 한다'고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노력하길 바라셨어요."
현재 이다윗은 배우인 동시에 재수생의 신분이다. 지난 2012년 한 대학의 연극영화과에 지원했지만 '똑' 떨어졌단다. 재능과 꿈을 일찌감히 발견했는데 꼭 대학에 진학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에게 '캠퍼스 라이프'는 욕심 나는 경험이다. "좋은 시스템의 연극영화과를 둔 대학이 얼마나 많은데 한 군데만 지원했냐"고 묻자 멋쩍은 듯 웃어보인다. 다시 영락없는 소년의 표정이다.
"내년엔 대학에 가고싶어요.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고 싶거든요. 연극영화과에 지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과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에요. 기술이든, 현장 스태프든, 영화 현장의 일원으로 친구들과 함께 일해보고 싶어요. 시나리오부터 시작해 친구들과 영화를 만드는 일,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낯은 좀 가리지만 친구들과 있을 땐 까불까불한 성격이거든요.(웃음)"
아이에서 소년으로, 이젠 스무 살의 풋풋한 청년이 된 이다윗이 또 어떤 얼굴로 관객을 만날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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