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이승엽에게도 감회가 새롭다. 그는 지난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정확히 10년 만에 다시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무엇보다 오랜 일본 생활을 뒤로 하고 고국 무대 복귀 첫 해에 팀을 정상에 올려놓으면서 자신의 전성기는 여전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사실 이승엽에게 올 시즌은 부담스러웠던 한 해다. 부상과 부진으로 일본에서의 마지막 4년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을 정도였다. 마음 편한 고향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한국 컴백을 결정한 터라 '이름값'에 걸맞는 성적을 내야 했다.
팬들과 동료 선수들, 그리고 코칭스태프의 기대에 부응할 책임이 주어졌다. 이승엽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시즌 126경기에서 타율 3할7리 21홈런 85타점으로 제 몫을 100% 해냈다. 홈런 5위, 타점 3위에 올랐다. 특히 한일 통산 500홈런을 비롯해 최소 경기 1천타점, 10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 8년 연속 20홈런, 9년 연속 200루타 등 주요 기록들을 쉬지 않고 달성했다.
삼성이 2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시즌 내내 3번과 4번을 오가며 중심타선에 힘을 한껏 실어준 결과다. 이승엽이 합류하면서 삼성은 기존의 박한이와 박석민, 그리고 최형우의 부담이 한결 덜어지면서 팀 전력이 동반 상승하는 선순환이 이어졌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이승엽은 명불허전이었다. 한국시리즈 1차전 1회말 선제 스리런홈런으로 후배들의 기를 한껏 살렸다. 이승엽의 한 방으로 승기를 잡은 삼성은 SK를 상대로 1차전과 2차전을 내리 잡으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도 없진 않았다. 특히 2승1패로 쫓기던 4차전에선 4회초 무사 1,2루 득점찬스서 어설픈 주루플레이로 달아오르던 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최형우의 평범한 우익수 플라이를 보지도 않고 뛰다가 졸지에 아웃카운트 2개를 헌납했다. 결국 4차전을 패한 삼성은 시리즈를 내줄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본헤드플레이로 자책감에 시달린 이승엽은 칼을 갈았다. 실수를 반드시 만회하겠다며 다짐했다. 그리고 5차전에서 곧바로 팀 승리를 이끌어내는 책임감을 보여줬다.
3회말 우전안타로 출루한 이승엽은 후속 최형우의 안타 때 상대 우익수 임훈이 공을 놓치자 그 틈을 노려 3루까지 내달려 살았다. 순간적인 판단과 재빠른 주루플레이가 어우러진 진루였다.
5차전에서 이승엽은 4타수 2안타 1득점으로 맹활약했고, 수비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승엽의 투혼에 자극받은 삼성은 2-1로 신승하면서 우승의 9부 능선을 넘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맞은 1일 6차전. 이승엽은 이번에도 결정적인 한 방으로 팀 승리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박석민의 투런홈런 등으로 4-0으로 앞서가던 4회초 2사 만루 찬스에서 이승엽은 우익수 키를 넘겨 펜스 하단에 떨어지는 싹쓸이 3루타를 날려 7-0 리드를 이끌어냈다. 이날 승리로 삼성은 4승2패로 SK를 따돌리고 2년 연속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정확히 10년 전, 이승엽은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 주역이었다. 3승2패로 앞선 6차전, 6-9로 뒤진 9회말 극적인 동점 스리런홈런을 날려 삼성을 위기에서 구했다. 이어진 마해영의 굿바이 솔로홈런으로 삼성은 극적인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10년의 세월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새로운 야구팀이 창단했고, 미국과 일본에서 활약하던 많은 선수가 돌아왔다. 26살 한창 나이이던 이승엽도 어느새 36세 고참이 됐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한 가지. 이승엽의 변함없는 존재감이다. 성실한 준비와 책임감 있는 마음자세, 그리고 녹슬지 않은 기량으로 그라운드를 휘저었다.
삼성의 통산 6번째, 그리고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이승엽.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질주에 한국 야구도 함께 풍성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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