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아마추어 팀의 이변으로 화제를 모으곤 했던 FA컵이 올 시즌 32강전에서는 별다른 일 없이(?) 종료됐다. 23일 일제히 열린 32강전에서 작은 이변이라면 내셔널리그 고양 KB국민은행이 질식수비의 대명사 부산 아이파크를 1-0으로 물리치며 16강 티켓을 받아든 것이다.
그러나 고양은 종종 프로팀을 잡으며 준프로라는 소리를 들어온 강팀이다. 2006년에는 울산 현대, 광주 상무, 경남FC 등 프로팀들을 잇따라 꺾고 4강까지 진출했다. 2008년에도 전북 현대, FC서울 등을 이기며 역시 4강에 올랐고, 2009년에는 32강에서 울산 현대를 꺾었다.
프로들을 많이 꺾어본 화려한 전력 때문에 고양의 부산전 승리는 이변보다는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거 고양에 패했던 한 프로팀 관계자는 "고양은 말이 아마추어지 과거에 K리그 승강 논란을 만들 정도로 선수들의 실력은 괜찮지 않으냐"라고 반문했다.
고양 외에 다른 아마추어 팀들은 모두 주전급 전력을 내세운 프로팀들을 넘지 못하고 전멸했다. 무엇보다 우승팀에게 다음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이 주어지는 것 때문에 확실히 FA컵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런 변화는 지난해부터 감지됐다. 지난해 32강에서는 강원FC가 유일하게 충주 험멜과 승부차기까지 가서 신승한 것을 제외하면 모든 프로팀들이 무난하게 이겼다. 과거처럼 1.5군 내지는 2군급 선수 구성으로 어설프게 나섰다가 패하는 경우가 줄어든 것이다.
그래도 연장전까지 가거나 경기 막판이 돼서야 승부가 갈리는 팽팽한 경기는 여전히 있었다. 이번 32강전에서도 강원FC가 유일한 대학팀 고려대와 팽팽하게 맞서다 후반 41분에서야 정성민의 골로 1-0으로 이겼다. 전남 드래곤즈도 창원시청을 만나 연장 후반 코니의 결승골로 승리했고, 경남FC는 부산교통공사와 승부차기까지 벌여 간신히 이겼다.
프로팀들의 일방적 우세 현상이 강화되자 반란이 묘미인 FA컵의 흥미를 더 높이려면 무승부 시 재경기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후반 90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할 경우 한 번 더 경기를 치러 프로에는 긴장감을, 아마추어에는 꿈에 도전할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FA컵은 결승전을 제외하면 K리그 일정을 피해 주중에 치러진다. 때문에 관중 동원이 쉽지 않아 프로팀들은 '본전도 못 뽑는' 경기로 부르고는 한다. 열기가 적다 보니 선수들의 의욕은 떨어지고, 경기력에 영향을 미쳐 졸전을 펼치다 망신을 당하는 경우가 나오기도 한다.
FC서울 최용수 감독은 23일 목포시청전을 앞두고 "우리 선수들이 많은 관중 앞에서 뛰다 적은 관중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싶다"라며 우려했다. 실제 이날 서울은 목포시청전에서 전반 난조를 보이며 골을 넣지 못해 애를 먹다 후반에야 골이 터져나오며 3-0으로 이겼다.
'FA컵 반란'을 얘기할 때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리그) 소속 반슬리는 재경기의 최대 수혜자다. 1910년 결승에 올라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1차전에서 비겨 재경기를 치른 끝에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며 큰 화제가 됐다. 지난 2007~2008 시즌 FA컵에서도 강호 첼시를 꺾고 4강에 올라 상위리그 팀 킬러의 명성을 확인시켰다. 박지성의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지난 2005~2006 시즌 버튼 알비온(당시 5부리그)과 64강에서 0-0으로 비기는 망신을 당하며 재경기를 치른 적이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FA컵 재경기를 치르기에는 여건과 일정이 여의치 않다는 아쉬움이 있다. 아마추어팀들의 홈구장이 규정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도 걸림돌이다. 프로팀들은 일정과 선수단 관리, 구단 예산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한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K리그 일정에 A매치 데이 등 각종 일정이 빡빡해 어쩔 수 없이 승부차기까지 벌여 다음 라운드 진출팀을 가린다. 흥미를 끌 수 있는 점에서는 재경기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FA컵에 변화의 움직임은 보인다. 다음 시즌부터 K리그가 1, 2부 리그로 나눠 운영되는 것이다. 이 경우 기존처럼 내셔널리그, 챌린저스리그 등이 예선을 치러 32강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64강이나 48강처럼 프로팀들과 처음부터 섞여 경기를 치를 가능성이 생긴다.
이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유럽의 FA컵처럼 변화를 주기는 쉽지 않지만 흥미를 끌기 위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프로축구연맹과도 머리를 맞대고 더 이야기를 나눠 볼 것이다. 일단 K리그의 2부리그 구성이 확실해져야 골격을 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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