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에 참석한 선수들은 초긴장 상태였다. 텅 빈 관중석이 익숙한 이들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은 무명의 세월을 오래 보낸 탓에 스포트라이트가 영 어색하고 낯설기만 했다. 많은 언론 매체의 취재 열기를 바라보며 놀라는 기색이 완연했다. 김성근 감독이 등장하는 순서에서는 자신이 소속 선수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팬의 입장이 되어 존경어린 눈빛으로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12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개최된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 창단식 관경이었다. 고양 원더스 유니폼을 단체로 입고 이날 참석한 선수는 총 43명. 물론 최종 합격자들은 아니다. 이들 가운데 5~8명 정도는 탈락 가능성을 안고 있다.
지난달 말 트라이아웃을 통해 선발된 선수들은 훈련캠프 참가 자격을 얻어 2일부터 전주에서 맹훈련 중이다. 창당식 당일에도 이른 아침 버스로 전주에서 고양시로 출발했고, 행사를 모두 마친 뒤엔 곧장 다시 캠프지로 향했다.
이들은 아직 같은 팀이라는 의식이 없다. 나이, 최종 학력, 프로 경험 유무를 떠나 오로지 최종 합격자로 이름을 올리기 위한 테스트를 치르고 있는 과정에 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선수가 아직도 있어요. 다들 자기 할 것만 하느라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죠."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아직 통성명을 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했다. 누군가를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현실로 인해 철저히 개인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아내가 임신 6개월인데 떨어져 지내는 것이 가장 마음 아파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야구를 계속 하려면…" 유난히 밝은 미소로 행사를 지켜보던 서창만(29. 포수)은 본인의 과거 경력에 대한 질문에 표정이 굳어졌다. 190cm 105kg의 당당한 체격인 서창만은 유신고-중앙대 출신으로 2006년 SK 신고선수로 활약하다 1년 만에 방출되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포수에서 투수로 전향을 했는데 실패했어요. 야구를 접고 군대 다녀온 후엔 지역 스포츠 센터에서 연식야구를 가르치는 일을 했죠. 그러면서 마음 한 켠엔 늘 내 야구에 대한 미련이 남았어요. 마지막 도전입니다."
그는 두고 온 아내, 그리고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 자신의 선택은 지극히 이기적이라고 인정했다. "아내에게 미안하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미루고 왔으니까요. 다른 어린 선수들에 비해 절실함이 훨씬 크고 깊죠."
사실 트라이아웃 테스트 현장에서 그는 실망스러운 송구 능력을 보인 바 있다. 도루 저지 사인을 받고 던진 볼이 2루에 크게 미치지 못한 채 패대기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합격은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수비력보다는 화끈한 방망이 실력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치면 넘기는 거포'라며 어린 선수들은 그의 타격에 혀를 내두른다. 실제로 평가전 내내 시원스러운 장타력을 과시하며 '저 선수가 누구냐?'라는 추임새가 여기저기에서 나온 바 있다. 포수로서의 한계보다는 타격의 재능을 높게 평가받고 있는 셈이다.
"감독님은 절 기억하시지 못할 걸요? 이렇게 다시 인연을 맺게 되어 설레고 기대됩니다." 서창만이 SK 선수로 잠시 뛰던 당시엔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지 않은 상태였고, 방출되기 직전 마무리 캠프 때 잠깐 함께 했던 적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원더스의 포수 자원은 현재 총 6명이 경쟁을 치르고 있다. 그 중 최연장자이자 내년이면 서른이 되는 나이지만 서창만은 후회하지 않기 위해 도전장을 던졌다. 어쩌겠나, 야구가 좋은 걸. 인생을 건 거의 도전이 모쪼록 좋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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