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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기현 더비', 그 냉정과 열정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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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재기자] 2011 K리그 플레이오프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 현대가 만난 26일 포항스틸야드.

포항의 홈구장인 이곳에서 울산 선수들은 적이다. 포항스틸야드를 가득 채운 포항팬들은 울산이 공을 잡으면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그리고 야유 소리가 특히나 커질 때가 있었다. 야유가 지속되는 시간이 다른 울산 선수들이 공을 잡을 때보다 길 때가 있었다.

바로 울산의 설기현이 공을 잡을 때면 포항스틸야드는 경기장이 떠나갈 정도의 웅장한 야유가 터져 나왔다. 포항팬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설기현이 공을 잡을 때마다 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과 섭섭함을 실어 야유로 표현했다. 너무나 차가운 냉정함이 묻어있는 소리였다.

포항스틸야드에서 설기현은 '공공의 적'이었다. 공을 잡을 때, 크로스를 올릴 때, 슈팅을 때릴 때, 심지어 설기현이 공을 잡으러 달려갈 때에도 감정이 섞인 야유 소리가 터저냐왔다.

포항팬들이 설기현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있다. 지난 시즌 포항의 유니폼을 입고 포항스틸야드에서 포항팬들을 위해 뛰었던 설기현. 올 시즌 설기현은 울산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포항은 설기현이 남아주기를 바랐지만 설기현은 여러 가지 논란을 일으키며 냉정하게 고개를 돌렸고 울산으로 이적했다.

이런 설기현에 대한 포항팬들의 감정이 이른바 '설기현 더비'를 탄생시켰다. 울산과 포항의 이번 대결은 그래서 '설기현 더비'라 불리웠다. 포항팬들은 설기현 더비에서 설기현이 침묵하기를 바랐다. 설기현이 포항을 떠난 것에 대한 대가를 울산 패배와 함께 몸으로 느끼기를 기대했다. 그렇기에 설기현을 향한 야유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포항팬들이 설기현을 향해 야유만을 보낸 것이 아니다. 후반 10분 포항팬들은 설기현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설기현의 오른발 슈팅이 빗맞아 골대를 한참 벗어나자 이에 반응한 것이다. 설기현의 실수를 조롱하는 박수였다.

후반 16분 설기현을 향한 야유는 절정에 이르렀다. 0-0으로 팽팽히 맞서던 상황에서 설기현은 페널티킥을 유도해냈고, 직접 키커로 나섰다. 당연히 포항팬들의 야유는 하늘을 찔렀다. 설기현은 그 야유를 뚫고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켰다.

냉정함 그 자체로 설기현을 바라보는 포항팬들이었다. 반면 울산팬들은 열정으로 설기현에 환호를 보내줬다. 이날 포항스틸야드에는 약 600여 명의 울산 원정응원단이 자리했다. 설기현의 플래카드를 지니고 온 여성팬들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포항팬에게는 설기현이 공공의 적이지만 울산팬들에게는 영웅이었다.

울산팬들은 소수였지만 응원 열정만큼은 절대 다수의 포항팬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또 설기현을 연호하며 설기현이 포항을 무너뜨려주기를 바랐다. 이적생이 전 소속팀을 상대로 멋진 활약을 펼치는 그 짜릿함을 울산팬들은 포항스틸야드에서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설기현을 응원하는 열정적인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설기현이 페널티킥을 골로 성공시키자 일제히 설기현을 연호했다.

설기현이라는 한국 축구 스타가 만들어낸 설기현 더비. 설기현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포항팬, 그리고 설기현을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울산팬. 이런 감정들이 그라운드에 표출되고 뒤엉키면서 '설기현 더비'의 가치와 재미는 배가됐다.

설기현이 가진 영향력만큼이나 '설기현 더비'는 경기 결과를 떠나 K리그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이번 설기현 더비는 설기현의 활약으로 1-0 울산의 승리로 끝났지만 벌써부터 K리그 팬들은 또 다음 설기현 더비를 기다리고 있다.

조이뉴스24 포항=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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