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기자] 탄탄대로를 걷던 성악인이었다. 치열하게 노래했다. 그의 가슴을 울린 건 조영남의 디너쇼였다. 자유롭고 친숙한 관객들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신도 많은 이들과 음악 공유하고 싶었다. 그게 카이의 새로운 음악, 새 인생의 출발점이었다.
팝페라 가수, 클라드(클래식+발라드) 1호 가수, 크로스오버 음악인... 카이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내 음악을 들었을 때 팝페라나 크로스오버라는 구분없이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카이의 바람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카이는 음악 장르에 대한 규정과 편견을 내려놓고, 음악을 들어달라고 말한다. 정규 1집 앨범 '아이 엠 카이(I am Kai'). 그가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음악에 대한 열쇠다.
◆조영남 디너쇼가 인생을 바꿨다
성악을 좋아하던 어머니가 카이의 음악 인생을 열어줬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초등학교 때 KBS 어린이 합창단 활동을 시작했다. 남들이 TV 속 대중가수에 열광하던 학창시절, 그의 우상은 조수미와 신영옥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성악에 입문했다. 서울예고 성악과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음대 성악과를 입학했다.
떠올려보면 그의 학창시절은 성악이 전부였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IMF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고, 어머니가 지병으로 병상에 누워계실 때도 그랬다. 더 악바리처럼 음악을 했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 성적은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졸업은 수석으로 했다. 카이는 "훌륭한 음악인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어느새 그의 음악 세계는 '음악=성악'으로 규정됐다. 카이는 "정통 성악만 최고라고 생각했다. 다른 음악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건 우연히 보게 된 조영남 디너쇼다. 조영남의 음악은 차치하고서라도 관객들의 표정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때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 표정이 제가 여태까지 보아오던 관객들의 표정과 달랐어요. 클래식 공연장에는 '너 어떻게 하나보자'라는 표정과 엄숙함이 있다면, 조영남의 디너쇼에서는 자유롭고 친숙한 모습의 관객들이 충격이었어요. 제가 처음에 노래를 하고 싶었던 이유가 사람들과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는데 성악이라는 매너리즘에 빠져서 스킬을 쫓느라고 그 마음을 잊게 된거죠. 조금 더 실질적으로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음악을 해보자는 생각을 그 때 하게 된 것 같아요."
카이는 "나는 성악가 출신이고 클래식이라는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을 기반으로, 21세기 조영남 스타일이 되어보자고 결심했다. 새로운 조영남 스타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클래식 바탕 위에 다양한 음악 담았어요"
먼저 뮤지컬 문을 두드렸다. 음악과 연기, 춤 삼박자가 완벽해야 하는 장르였다. 깨어있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크로스오버 가수 결로 싱글 데뷔를 했다. 줄곧 성악을 하며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그의 생애 첫 일탈(?)이었다. 주변에서는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어머니가 가장 큰 걱정을 했죠. '성악가가 되서 남들 보기에 뒤처지지 않는 실력을 지녔고, 나름 탄탄대로를 걸어왔지 않느냐'고 설득시키려고 했죠. 교수님들도 처음에 반대했어요. 마치 제가 죄라도 짓는것 마냥 걱정하셨어요. 스스로도 고민은 됐지만 내가 하고 싶은, 나다운 음악을 찾는 과정이었기에 후회는 없어요."
프로듀서 김형석에 발탁된 그는 가수 노영심과 함께 작업한 '이별이 먼저 와 있다'로 대중적인 호감을 끌어냈다. 클래식과 발라드를 합성한 '클라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크로스오버 장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번에 출시한 그의 1집 정규앨범 '아이 엠 카이(I am Kai)'는 그런 음악적 색깔을 집대성한 앨범이다. 뮤지컬 '십계'의 대표곡 '랑비 데메'를 번안한 타이틀곡 '사랑이란 이름'을 비롯해 보첼리의 '아이 빌리브'(I Believe)의 한국어 버전인 '나는 믿어요',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 등 우리 귀에도 친숙한 음악들이 수록됐다. 프로듀서 김형석과 작업한 노래 '벌’, 노영심이 작곡한 노래 '이별이 먼저 와 있다' 등 다양한 창작곡도 있다.
"카이라는 사람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체성은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클래식의 바탕 위에 제작된 다양한 카이의 모습을 담겨있어요."
◆"선입견 뛰어넘어 빅뱅, 조용필과도 작업해보고 싶다"
카이 음악의 가장 큰 벽은 선입견이다. "방송 제작자들도 그렇고 저라는 사람을 소개했을 때도 그렇지만 팝페라라고 하면 무조건 덮어두는 사람들이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카이는 "대중 가요와 다른 부분도 있지만 듣기에 어려운 건 아니다. 좋은 가사, 좋은 멜로디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데 선입견이 강해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정성껏 만든 음악을 들려줄 창구가 없다는 건 아쉽다. "조금의 무리는 있겠지만 제 음악을 들고 '인기가요'에 나가도 이상하지는 않은 것 같다. 저는 준비가 되어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음악은 이 무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규정을 해놓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최근 '듣는 음악'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높아졌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오페라 스타'나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인기를 얻는 건 이에 대한 반증이다.
"조수미 선생님이 '넬라 판타지아'를 불렀으면 별일 없었을 건데 개그맨들이 불렀더니 '성악이 어려운 음악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고 즐겨 들었잖아요. 그것 자체가 선입견이라는 게 입증된 것 같아요. 누가, 그 노래를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친숙하게.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카이는 다양한 채널로 대중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KBS 라디오 '생생 클래식'의 DJ를 맡고 있고 푸드TV의 '싱글즈 키친'도 진행한다. 예능프로그램 '세바퀴'에도 출연했다. 대중들과 친숙해지기 위한 노력이다.
음악적인 실험도 계속할 예정이다. 평소 빅뱅 멤버들과 음악 이야기를 즐겨할 정도로 다양한 음악에 관심이 많다. 카이는 YG의 인기 프로듀서 테디에게 곡 작업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고 귀띔했다. 조용필과 함께 세기에 남는 곡을 해보겠다는 꿈도 있다. 장르를 뛰어넘어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있는 음악 작업을 언제나 꿈꾼다.
"크로스오버는 장르가 아닙니다. 그건 서로 다른 뭔가가 합쳐졌다는 말이기 때문에 음악적 소재가 무제한이에요. 한정된 기계음에서는 닮아가지 않을 수가 없어요. 다른 특성의 것들이 조우하지 않으면 새로운 길이 터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작업들을 많이 했으면, 21세기의 새로운 클래식의 형태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