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의 축구축제 '2011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이 한창 무르익고 있다.
51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조별예선 1차전에서 바레인에 2-1 승리를 거두며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태극전사들은 오는 14일(한국시간) 호주와의 2차전 승리를 위해 지금 카타르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제 겨우 한 경기를 치렀지만 한국 축구 스타가 등장했다. 바로 1차전에서 빼어난 몸놀림으로 2골을 뽑아낸 구자철(22, 제주 유나이티드)이다. 구자철은 단 한 경기로 전문가들과 팬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지동원, 손흥민 등 신예들 역시 아시안컵이 낳은 스타로 발돋움하려고 한다.
아시안컵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축구 대회다. 대회의 중요성만큼 대회를 빛낼 스타가 필요하다. 그래서 매 대회마다 아시아 각 참가국들은 스타 탄생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특히나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에게 아시안컵은 스타 배출의 산실이었다. 아시아 최강국이라는 자존심을 대변하듯 아시안컵에서 최고의 스타들이 탄생했다. 지난 51년 동안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시안컵에 나서는 한국 대표팀의 스타 배출 퍼레이드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역대 아시안컵 최고의 스타는 누구였을까. 한국 대표팀의 아시안컵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2명으로 압축된다. 많은 스타들이 있었지만 이 2명의 존재감 및 영향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국을 상대하는 팀의 모든 수비수들을 긴장시켰던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
그 첫 번째 선수는 바로 최순호였다. 현 강원FC 감독이다. 큰 키에 유연성을 가진 '천재' 스트라이커였다. 최순호는 1980년 쿠웨이트 대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시안컵에 참가했다. 그가 남긴 처음이자 마지막 발자취는 너무나 화려했다.
최순호는 조별예선 1차전 말레이시아전에서 1골을 쏘아올리며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2차전 카타르전에서도 1골을 추가했고 3차전 쿠웨이트전에서는 멀티골을 터뜨렸다. 4차전 UAE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났다.
4강 북한전에서 득점포가 멈춘 최순호는 결승전에서도 아쉽게 골을 기록하지 못했다. 결국 한국은 결승에서 쿠웨이트에 0-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최순호가 남긴 업적은 빛났다. 6경기에서 7골을 폭발시켰다. 최순호는 한국 선수 중 한 대회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 7골은 역대 아시안컵 한국 선수 득점랭킹 2위다. 한국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로서의 위용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대회였다.
최순호의 발자취가 있은 후 20년이 흐른 2000년 레바논 대회. 꼭 최순호를 보고 있는 듯한 또 한 명의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아시안컵에서 배출됐다. 바로 이동국(31, 전북 현대)이었다.
2000년 대회는 이동국의 첫 번째 아시안컵 무대다. 이후 2004년, 2007년 대회에도 이동국은 참가했지만 2000년 대회만큼의 폭발력은 보이지 못했다. 2000년 아시안컵에서 이동국의 플레이는 가히 '아시아의 황제'다운 모습이었다. 최순호의 '계보'를 잇는 대형 스트라이커가 등장했다며 열광했다.
1차전 중국전, 2차전 쿠웨이트전에서 침묵한 이동국은 3차전 인도네시아전에서 하늘 높이 비상했다. 이동국은 해트트릭을 쏘아올리며 한국의 8강행을 이끌었다. 8강 이란전에서는 결승골을 넣었고, 4강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도 1골을 추가했다. 3~4위 중국전에서도 결승골을 뽑아내며 한국의 3위를 이끌었다.
이동국은 2000년 대회에서 6골을 터뜨리며 최순호에 이어 한 대회 최다 득점 2위에 올라있다. 2004, 2007년 대회까지 참가한 이동국은 2004년 대회에서 4골을 추가해 총 10골로 아시안컵 최다득점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총 15경기 출장으로 이운재와 함께 최다출장 기록도 가지고 있다.
이동국의 발자취가 지나간 지 11년이 흘렀다. 이동국의 계보를 이을 스트라이커가 탄생할 때가 된 것이다. 2011년 카타르 대회에서 최순호와 이동국의 발자취를 따라갈 슈퍼스타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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