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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ML 데뷔부터 亞 최고기록 '124승'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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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의 17년이었다. 199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2010년에 이르기까지 대박 계약을 터뜨려 스포츠 재벌 반열에 오르기도 했고, 이적 후의 부진으로 한동안 '먹튀' 소리를 감내해야 하기도 했다..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시절도 있었고, 쫓겨나듯 방출당하며 세월의 무게를 체감하던 때도 있었다.

박찬호(37, 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한국 야구계의 선구자였다. 대한민국에선 생소하던 메이저리그를 친숙하게 만들었다. 한국 국민들은 누군지도 모르던 마이크 피아자, 에릭 캐로스, 라울 몬데시, 숀 그린, 토드 질 등 박찬호의 승리에 힘을 보태줄 다저스 타자들을 응원했고 페드로 아스타시오, 이스마엘 발데스 등 박찬호와 선발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다저스 투수들의 부진을 내심 바랐다.

박찬호는 후배들의 미국행에 물꼬를 트기도 했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이후, 많은 한국 야구 유망주들이 태평양을 건넜다. 김병현, 김선우, 서재응, 최희섭 등은 박찬호가 닦아놓은 길이 없었다면 메이저리거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런 박찬호가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세웠다. 통산 124승(10완투 3완봉승 포함)으로 아시아인 메이저리그 최다승 신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박찬호는 2일 플로리다전에서 3이닝 퍼펙트 피칭으로 구원승을 챙기며 마침내 개인통산 124승 고지에 올라섰다.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와 스스로가 보유하고 있던 통산 123승을 뛰어 넘어, 지난 9월13일 123승째를 따낸 지 19일만에 승리를 보태며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박찬호의 동양인 최다승 기록은 당분간 깨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박찬호의 기록에 가장 근접해 있는 대만 출신 왕첸밍(워싱턴)이 54승에 그치고 있고 일본 출신 마쓰자카(보스턴)는 46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벌써 17년이 지난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도전기. 데뷔 초부터 대기록이 수립된 지금까지,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인생을 돌아보자.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 다저스의 에이스

1994년, 한양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찬호는 계약금 120만 달러의 당시로선 거액을 받고 LA 다저스에 입단했다. 1994~1995년 대부분을 마이너리그에서 뛰며 경험을 쌓은 박찬호는 1996년부터 본격적인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활약하게 된다.

1996년 5승 5패, 3.64의 평균자책점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박찬호는 1997년부터 기량을 폭발시켰다. 그 해 선발투수로 14승 8패 3.38의 평균자책점에 166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코리안 특급'의 탄생을 전세계에 알렸다.

이후 1998년 15승9패 평균자책점 3.71 탈삼진 191개, 1999년 13승11패 평균자책점 5.23 탈삼진 174개, 2000년 18승10패 평균자책점 3.27 탈삼진 217개, 2001년 15승11패 평균자책점 3.50 탈삼진 218개 등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하며 LA 다저스의 에이스로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일명 '라이징 패스트볼'이라 불린 최고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와 힘있게 꺾이는 파워커브를 주무기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다는 메이저리그에서 박찬호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던 것이다.

◆FA 대박 계약, 그리고 '먹튀'라는 그림자가...

다저스에서의 빛나는 활약을 한 박찬호에게 당시 만년 하위팀 텍사스 레인저스가 구애의 손길을 뻗쳤다. 박찬호는 5년간 6천5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에 텍사스와 장기 계약을 맺으며 FA(자유계약선수) 대박계약을 터뜨렸다.

그러나 박찬호는 다저스에서의 화려했던 모습을 더 이상 보여주지 못했다. 입단 첫 해인 2002년 기록한 9승 8패 5.75의 평균자책점이 텍사스에서 낸 최고의 성적이다. 허리와 햄스트링 부상에 시달리며 제 구위를 찾지 못한 박찬호는 텍사스에서의 4년 동안 22승23패 평균자책점 5.79의 초라한 성적을 거둔다. 그리고 계약기간 5년을 다 채우지 못한 2005년, 시즌 중에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를 당했다.

텍사스에서의 4년은 '코리안 특급'에서 '먹튀'로 전락한,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인생 가운데 가장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운 시기였다.

◆시련 이겨낸 대기록, 동양인 최다 124승

2005년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된 박찬호는 이후 떠돌이가 됐다. 2007년 뉴욕 메츠로 이적했다 2008년 다저스로 복귀했고, 2009년 필라델피아, 2010년 양키스를 거쳐 다시 시즌 중에 피츠버그로 둥지를 옮겼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 간 총 7개 구단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옮겨다닌 것이다.

2005년에는 텍사스에서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되는 와중에도 시즌 12승을 거뒀고, 2006년에는 피츠버그를 상대로 통산 3번째 완봉승을 따내는 등 부활의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장출혈 등의 악재로 팀에서 확실히 자리잡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보직도 선발에서 밀려나 불펜으로 변경된다.

선발투수로 계속 뛰길 원했던 박찬호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불펜투수로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 그리고 2009년엔 필라델피아 유니폼을 입고 생애 최초로 꿈의 무대인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오른다. 한국인으로는 2001년 애리조나 소속이던 김병현에 이은 두 번째 월드시리즈 출전이었다.

2009년 좋은 활약으로 박찬호는 필라델피아로부터 재개약을 제시받았지만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월드시리즈 우승'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다. 그러나 부상 등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결국 올 시즌 도중 방출당한 뒤 통산 7번째 팀인 피츠버그에 둥지를 튼다.

그리고 10월 2일, 3-1로 피츠버그가 리드하던 5회말부터 마운드에 올라 3이닝을 무안타 무실점 역투(피츠버그 5-1 승리), 역사적인 통산 124번째 승리를 따내기에 이른다.

◆영광의 뒤안길...양복 사건, 이단옆차기, 기록의 희생양

17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면서 박찬호는 인상 깊은 에피소드도 남기고 기록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1995년 박찬호가 첫 승을 거둔 날, 다저스 라커룸에는 가위로 난도질 당한 박찬호의 양복이 걸려 있었다. 이를 발견한 박찬호는 동양인 출신 투수에 대한 차별로 받아들이고 의자를 집어던지는 등 격분했다. 나중에야 그것이 첫 승을 축하하는 구단의 전통적인 신고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상대팀 타자 주자를 태그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생겨 태권도식 2단 옆차기로 응징(?)했던 에피소드도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초기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이 밖에 박찬호는 한 이닝 한 타자에게 만루홈런 2개를 허용하는 진기록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고, 배리본즈의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의 제물이 되기도 했다. 은퇴를 결정한 칼 립켄 주니어에게 올스타전에서 홈런을 허용한 투수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기록들은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전쟁터에서 기어코 승리를 쟁취해낸 백전노장의 몸에 난 자랑스런 흉터처럼, 하나하나가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경력과 함께 영원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조이뉴스24 정명의 기자 doctorj@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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