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엔 출퇴근 했는데요, 올해는 숙소에서 지냅니다. 운동에 전념하는데 이만한 장소가 없죠. 야구 이외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아~주 좋은 곳이죠."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긴 세월을 보낸 탓이었을까? 프로 데뷔 4년차에 접어든 두산 내야수 이두환(22)은 '아~주 좋은 곳'이라는 마지막 말에서 지극히 염세(厭世)적인 뉘앙스를 풍겼다. 마치 '오랜 기다림과 지겨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는 극단적인 표현의 한 방법인 것 같았다.
◆ 잘 나가던 고교시절
2006년, 이두환의 모교 장충고는 황금사자기와 대통령기를 석권하면서 단숨에 야구명문고 반열에 올랐다. 당시 팀내 거포 4번타자로 활약했던 이두환은 2kg이 모자란 0.1톤 무게의 체구로 유연한 스윙 폼과 힘 있는 배팅능력을 자랑했다.
이두환은 대통령배에서는 타격 타점 홈런 최다안타 부문 1위를 석권했고 황금사자기 대회에서도 최다안타상을 받는 등 고교타자 최대어로 손꼽혔다. 청소년대표에도 발탁돼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끌었고 김광현(투수 부문, 현 SK)과 나란히 베스트 9(1루수 부문)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검증된 거포라는 평가 속에서 결국 이두환은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두산에 2차 2순위(전체 10번) 지명돼 계약금 1억원을 받고 입단했다.
"그 때 대학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죠. 당연히 (프로에) 갈 수 있고, 가면 잘 해낼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죠."
◆ 김동주 -최준석 계보 이을 차세대 거포
두산 입단 이후 2군에서 기량을 키우던 이두환은 우수타자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야구저변 확대를 위해 2군 인터리그를 2007년 첫 도입해 5월 중순 엿새간 경남 남해에서 개최했다. 여기서 이두환은 3홈런 5타점 타율 4할2푼9리(21타수 9안타)의 맹타를 휘두르며 신인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시즌 중반엔 꿈에 그리던 1군 무대에도 나섰다. 하지만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사직에서 열린 롯데전이었어요. 관중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대타로 타석에 섰는데 너무 긴장을 했는지 투수만 겨우 눈에 들어왔어요. 주변은 온통 까만색이었고...(웃음) 순식간에 스트라이크를 두 개 먹고 나니까 겨우 정신이 들었는데, 그 땐 이미 늦었죠."
단 한 타석에 들어서 송승준(롯데)에게 삼진으로 물러난 것이 2007년 9월 9일. 그 날 이후 이두환은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다.

◆ 수술과 재활
이두환은 서울 수유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줄곧 포수 마스크를 썼지만 고교시절 무릎 부상을 당해 통증을 달고 지냈고, 프로 입단 뒤엔 내야수로 전향했다. 3루와 1루를 병행했는데 익숙하지 못한 수비에 대한 부담감이 결국 타격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쳐 밸런스도 무너지고 파워도 신통치 않았다.
"자꾸 무릎이 신경 쓰인다고 코치님께 털어놓았죠. 덜렁덜렁 하는 무릎을 가지고 제대로 타격이 될 리 만무했죠. 수술하지 않아도 나아질 수 있다는 의사 소견도 받았지만 제가 너무 불안해 하니까 박종훈 감독님(당시 두산 2군감독, 현 LG 감독)이 구단과 의논을 하시더니 수술을 권유했어요."
두 시즌을 보낸 뒤인 2008년 11월, 이두환은 마침내 수술대에 올랐고 이후 의욕을 불태우며 새 시즌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것이 화를 불렀다.
"두세 달 정도는 무리하지 말라고 했는데 마음이 다급했죠. 팀에서도 괜찮은 것 같으면 훈련에 참가하라는 입장이었고. 그 때 좀 느긋하게 재활을 했어야 했는데..."
트레이너의 권유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훈련에 나섰던 지난해 이두환은 데뷔 이래 가장 저조한 성적을 남기고 말았다.

◆ 아프지 않아 좋다
그러나 이제 이두환은 웃는다. 더 이상 통증도 없고 프로 입단 이후 처음으로 동계훈련 기간 동안 만족할 만한 성과를 올렸다.
"1루를 볼 예정인데요, 이제 수비도 많이 나아졌어요.(웃음) 지금은 잔류군에서 훈련 중이지만 한 번 불러주시겠죠?"
데뷔 4년차지만 스스로 이뤄놓은 것 없이 세월만 보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는 이두환은 요즘도 자신의 야구인생에서 가장 화려했고 감격스러웠던 고교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장충고 유영준 감독님 이하 학교 선생님들이 '우리 두환이 언제 시합 뛰는 거 보냐'는 말씀을 하실 때면 정말 면목이 없어요. 그분들의 기대에 부응해야죠."
1군 경기에 나섰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이두환은 스스로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가 바로 지금이라고 강조했다.
"올라갔다가 경기를 뛰지 못해도 좋으니까 다시 한 번 (1군 무대에) 서보고 싶어요. 한 번쯤은 그런 날이 있어야 의욕도 나고 보람도 느끼죠. 이젠 떨지 않고 제 스윙 한 번 제대로 하고 싶어요."
지난해 경찰청 입단이 마지막에 무산되면서 상처도 컸지만 오히려 2010년 1군 진입을 위한 하늘의 배려라고 여기며 희망을 쫓는다. 지긋지긋했던 부상과 재활의 고통을 딛고 지루했던 2군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싶은 이두환의 바람이 그리 큰 욕심은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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