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6월15일. 한국 축구대표팀은 '2010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을 준비하기 위해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파주NFC)에서 연신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모든 훈련이 끝난 후 땀범벅이 된 얼굴을 훔치면서 선수들은 하나 둘씩 숙소로 들어갔다. 그런데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아직 훈련장에 남아 있었다. 아리따운 3명의 여성에 둘러싸인 채로. 그 여성들은 박지성의 팬이었다. 한국 최고의 축구스타 박지성이 여성팬들에게 둘러싸이는 장면은 드문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 3명의 여성들은 조금은 특별한 팬이었다.
이 여성들은 멀리 일본에서 건너온 팬이었다. 이들은 교토 퍼플상가 시절 박지성을 기억하며, 박지성을 만나러 한국으로 왔고, 파주까지 찾아왔다. 박지성은 따뜻하게 이들을 맞이했다.
팬들이 교토 시절 박지성을 잊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2002 한일월드컵을 통해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박지성은 당시 2002년 12월31일까지 교토와 계약돼 있었다. 교토는 박지성을 잡고 싶었지만 박지성의 미래를 위해 PSV 아인트호벤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그리고 2003년 1월1일 교토는 가시마 앤틀러스와 일왕배 결승에서 만나게 됐다.
박지성은 계약상 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교토와의 의리를 위해, 팬들과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계약기간을 넘겨 열린 경기에 출전했다(비록 계약기간은 지났지만 박지성은 교토선수로 등록돼 있어 출전에 문제는 없었다). 박지성은 동점골을 작렬시켰고,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교토를 일왕배 우승으로 이끌었다. 박지성은 교토와 교토팬들에게 잊지못할 감동을 선사했다. 박지성은 그렇게 '아름다운 마지막'을 장식했다. 아직도 일본팬들의 기억 속에서 '스타 박지성'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반면, 이천수(27)에 '아름다운 마지막'이란 없었다. 이천수는 거짓말까지 하며 다른 팀으로 이적하려 했다. 모든 것을 희생하며 자신을 받아준 박항서 감독과 등을 돌렸고, 구단과는 불화를 일으켰다. 결국 전남은 28일 코칭스태프와 언쟁을 벌이고 오후 훈련 불참, 감독 지시불이행 등은 물론 선수단이 통제할 수 없는 범위로 무단이탈한 이천수를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 요청을 했다.
이천수에게 임의 탈퇴 공시 요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원 삼성은 지난해 12월24일 '훈련 불참 및 코칭스태프의 지시 불이행' 등을 사유로 당시 소속팀 선수였던 이천수를 프로축구연맹에 임의탈퇴 공시를 요청했고, 프로연맹은 이를 받아들여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했다.
이천수는 2시즌 연속 임의 탈퇴 공시 요청을 받은 '전무후무'한 선수가 됐다. 이제 K리그에 이천수를 받아들일 팀은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남팬들 역시 이천수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 이천수의 마지막 모습은 찝찝했고, 주위 사람들을 화나게 했다.
박항서 감독은 '유종의 미'를 강조했다. 다른 팀으로 가는 것은 이해해 줄 테니 아름다운 마지막을 함께 하자고 했다. 그래서 박항서 감독은 지난 28일, 어쩌면 함께 하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포항전에 이천수를 데려가려고 했다. 떠날 땐 떠나더라도 그라운드에서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포항전이 열리기 전 기자가 만난 박항서 감독은 "이천수가 갑자기 사타구니가 아프다고 해서 데리고 오지 못했다.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는데 안타깝다. 남아있는 시간이 단 5분이든 10분이든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어려운 시점에 구단에 왔으니 구단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헤어지는 부분도 중요하다. 이천수가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의 마지막 기대도 날아가고 말았다. 아름다운 마지막은 결국 볼 수 없었다. 이천수는 구단 코칭스태프와 불화를 일으키며 무단이탈하고,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될 처지에 이르렀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의 대표 시절 이천수는 잠재력 면에서 박지성보다 더욱 인정을 받았던 선수다. 또 박지성이 수원공고 시절을 회상하며 "정말 그렇게 잘하는 선수는 처음 봤다"며 감탄하게 만든 선수가 바로 부평고 이천수였다.
비슷하게 시작했고 비슷하게 스타로 각광받았지만, 현재 이천수가 박지성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이유가 가슴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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